소인은 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어느 왕이더라요?
'짐은 국가다'라던 절대군주 '태양왕' 루이 14세는 '짐이 다른 이와 융화하나 여러 사람과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좌우명을 가졌다고 전해집니다.-
Nee pluribus im par.-A match for many and not equal to several.
그는 불이 금을 시험하고 재난은 사람을 시험한다는 신조로서 나라 정책을 애인 맹뜨뇽과 의논하여 결정한 것이 아니랍니다.
이 왕에게 공식 애인 3명(메뜨레 상띠드르) 중에서 첫 여인을 왕비가 제일 싫어했지요.
그러지 않아도 루이 14세가 왕비를 학대하고 부패한 재무총감 푸케와 한 통속이 되어 독재를 강화하고 있는 중에 왕비 마리 테레즈는 왕의 총희 루이즈가 자기에게 '저는 천벌을 받을꺼에요'라고 그 미안한 마음을 표했지만 첫 번째 연적이기에 미운 표적감이었겠지요.
그 루이즈가 왕비와 비슷하게 임신했을 때에 재담을 잘하는 몽떼스빵을 참석시켜 왕과 식사를 하고 나더니 왕의 마음이 몽떼스빵에게 넘어갑니다(1667).
그 후부터 몽떼스빵이 루이즈를 모함하기 시작.
루이즈는 청순한 체하고 겸손한 척, 검소한 체하기에 왕비 마리 테레즈 역시 그녀를 싫어한다고 모함하여 왕의 사랑을 뺏어갑니다.
몽떼스빵은 왕비를 기만하고 루이 14세가 작은 키에 뚱뚱하고 주걱턱이지만 잘 살아보려는 욕망이 큰 여인으로서 왕실 고문 쥘 마지렝 추기경의 중매로, 왕의 모후 도트리슈의 희망으로 마리 테레즈와 결혼한 걸 잘 알고 있섰나 봅니다.
루이 14세 집안은 유전적 결함이 있는 집안.
루이 14세는 루이 13세의 아들이 아니라고도 하고 쌍둥이 형제 중에 하나는 철가면('벨빗 가면')을 씌워 가두어 놓았다는 소문도 있고 하여간 잘 모르는 왕실에 마리 테레즈가 시집온 것.
그리고나서 부터 간특한 몽떼스빵은 궁정에 오는 공작, 후작 부인이 어여쁘면 왕이 애첩으로 삼을까 이 것만 머리 싸매고 염려합니다.
자기 부인이 왕의 애첩이되면 한 여인을 왕과 공유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왕으로부터 은전이 내리던 시절.
그러나 몽떼스팡 남편인 몽떼스빵 후작이 이를 극구 반대하고 일을 벌리자 '기엔'으로 추방해버렸습니다.
그리고 10 여년간 잘 나가다가 결국 사건이 터졌지요.
어느 낙태수술하는 직업을 가진 '라부아쟁'이가 흑미사를 드리고 그 아이들의 재를 마법의 약으로 팔다가 붙잡힌 사건이 있섰지요.
그런데 몽떼스빵도 단골이라면서 갓난아이의 목을 따서 나체로 누운 몽떼스빵이 그 피를 몸에다 바르는 암흑미사를 행하고 그 아이들의 가루를 궁중으로 가져와 왕이 다른 여인에게 유혹당하지 못하게 왕의 음식에 몰래 섞는 무속이 발각되었습니다.
그 얼마 전에 그녀가 베르사이유 궁전 계단을 한 발 한 발 내려 올 때 그녀의 애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맹뜨뇽이 올라오고 있섰습니다.
그녀는 25세 연상의 남편이 죽고(1660) 살롱을 운영하며 귀부인과 교류하다가 몽떼스빵을 알게 되어 왕의 서왕자(庶王子) 궁중교사로 들어가 왕으로부터 후작부인이란 칭호를 내려받은 여인.
언제나 상복을 입고 십자가를 목에 걸고 로자리오 묵주를 들고 올라 오는 그녀가 궁상스럽기에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며 스쳐 내려가는데 맹뜨뇽이 '당신은 한 발 한 발 내려오지만 나는 한 발 한 발 올라갑니다'라고.
맹뜨뇽은 궁정 수장격인 왕의 며누리 '도핀느 마리 안 빅투아르'와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며누리가 왕의 눈 밖에 나자 자연스럽게 왕을 대동합니다.
3살 아래의 몽떼스빵을 대외적으로 공식 정부로 삼은 12년 동안에 루이 14세는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고, 또 그녀와 자주, 어떤 주일에는 두 번 다툼이 일어나던 중에 암흑미사 사건이 터져 '라브아쟁'을 화형에 처했고 그녀는 첫 번째 애첩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처럼 궁전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왕을 더 볼 수 없게 됐다지요(1680).
그러나 그녀가 수도원에서 죽을 때에 왕이 덤덤해 하면서 '나를 위해 이렇게 죽었구나'라며 그녀가 낳은 아들이 빈소와 장례식에 참석을 못하게 하면서 왕이 여인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졌답니다.
젊어서는 청순함과 겸손한 여인을, 장년에 들어서는 사치스럽고 명랑한 여인을 찾다가 이제는 지성과 영성, 해박한 지식을 가진 맹뜨뇽이 자꾸 그리워져 3살 위의 그녀에게 공식 정부가 되어달라고 요구합니다만 왕비에 대한 도리를 먼저 하라고 제안합니다.
이로서 그녀가 귀천상혼이라는 소문을 피할 수 있고 여러 사람과 화이부동하게에 그녀에게 소문이 생기지 않고 왕비가 죽을 때까지 왕비로서의 대접을 받으며 많은 애를 낳았지만 천연두로 사망하고 두 아들만 살아남.
왕은 왕비가 죽자 '그녀가 나를 처음으로 슬프게 한다'라고.
왕비가 죽고(1683. 10월) 2달 후에 왕이 맹뜨뇽과 비밀결혼.
왕이 죽고(1715) 나서 그녀는 궁궐을 나와 생시르에 있는 학교로 가서 가난한 귀족의 딸들을 가르치고 있섰는데 사령관, 외교관인 그 당시에 프랑스 정부대변인 테세 후룰레(Tesse', Rene de Froullay, Mirechal de, 1648-1725)가 그녀에게 연금 4만 8천 리브르(livre)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를 만나러온 검은 그림자.
거인(키가 6피트 8인치, 2.3m) 러시아 표트르(Πётр. 피터) 대제가 그녀를 방문.
그녀가 놀랐으나 금방 알아보고 어떤 일이냐고 물었더니 '프랑스의 가장 값진 것을 보기위해 왔다'고 말하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을 때에 그녀가 '나이 든 것'이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말씀을 올리는 까닭은 그 피터대제는 인정이 많은 사람.
句
그녀가 죽은지 6년 후에 피터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그 건설현장에 배를 타고 순시하던 중에 한 병사가 물에 빠진 걸 보고 물에 뛰어들었다가 폐렴에 걸려 그 다음 해(1725.2.8)에 아깝게 죽습니다.
본의든 본의 아니든 고종명하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뒤집지 않고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자(慈), 상대방의 고생을 제거해주는 행위를 비(悲)라지요? -법구경주 1장 예화, 민수기 22:22, 로마서 12:14
법구경 제 1장 대구(對句)에 '지각이 오염된 언행에는 고통이 뒤따라온다.
마치 멍에에 맨 소에 우마차가 따라 오듯'에 이어 법구경주 첫 장에 다음 말이 씌여있다는 군요.-
manasa ce padutthena bhasati... 몰라서 옮길 재주가 없습니다 생략.
"우다야나(Udayana)왕의 왕비 시아마바티(Syamavati)는 구중궁궐에 칩거하고 있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귀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의 둘째 비(妃)가 왕비에게 시기와 질투에 못 이겨 왕에게 참소하여 왕 앞에 끌려간 왕비는 말 없이 서 있섰다고 합니다.
이에 왕이 풀어주었으나 왕이 출궁한 사이에 그 둘째 비가 왕비의 처소에 불을 질렀다지요.
그러나 이를 알고도 왕비는 자심(compassionate spirit)으로 시녀와 함께 타 죽었습니다.
부처님은 재가(在家) 신자 중에 이 왕비 시아마바티와 시녀 우타라(Uttara)를 자심의 첫째로 쳐 주었다지요.
하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dkp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