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나쁜 버릇으로 부터 빼어내주거나 불행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의(義)로움으로 인하여 결백하게 되고 착한 행동을 하게 지도하는 협조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운 이가 50명, 45명, 40명, 30명.
행혀 20명만 있서도 폭음, 탐욕, 나태, 질투, 우상숭배, 남색(男色), 수간(獸姦), 항문성교, 비역(鄙役)하는 이상(異常) 성행위자, 어린아이에 대한 성도착자가 창궐한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창세 18장
그 의로운 사람이란 언행이 착하고 결백한 사람.
즉,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에베소 2:8에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 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의 행위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억설로 인하여 믿음과 행위, 신앙인과 의인이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침몰사건 전후에 선(善)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위를 하지 않은/못한 구원파가 종교의 자유에 의하여 혹독한 법적제제를 받지 않을 수 있겠끔 비호되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하여 신앙이라는 미명 아래 어떠한 비의리적인 행동을 해도 정신건강적으로 건전하다는 억지입니까?
이 억지는 십계명에도 어긋나고 사회윤리ㆍ공중도덕에 어긋나는 게 아닐까요?
주께서 '양같이 의로운 사람은 오른 편'에 갈라 놓을 꺼라는 말씀.
양같은 사람이 '오른 쪽(the right side)', '올바르다는 것'(Righteousness)입니다.
새끼 양을 羔(고), '의(義)'라는 뜻은 '양(羊)같은 나'라는 의미.
사랑과 어짐(仁)을 행함은 양같이 착하게 힘써 해내는 나로 말미암.
바울이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이 편지 내용은 궤변이 아니라 종교탄압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지하교회로 숨어 인고(忍苦)하며 아무 전교활동을 못하는 무위(無爲)의 그들에게 '하나님/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있기를 기도하면서 격려하는 편지'입니다.
따라서 믿음과 의로움을 분리하는 그 침례교 구원파의 행위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27권의 신약성경 중에 17권 가량의 바울의 신앙심에 분명히 어긋나는 겁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예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직접으로 받지 않은 비(非)주류라는 의미를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온갓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여 심지어 그리스 철학자 프라톤의 기본 7덕목을 고스란히 고린도 전서 13장에 인용했단 말도 없이 표절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유족과 회합할 신앙적인 의무를 충실히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