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佛法(불법)은 철학이요 동시에 과학이란 말씀이 압도적으로 종교 내지 철학세계를 주름잡고 있구먼 그랴. 佛敎(불교)가 종교인지 아닌지를 왈가왈부하기 전에 그것이 힌두교에서 출발한 또하나의 뭐라고 할까... 마~ 철학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이런 책들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넘어가야 할것 같다. 그 책이름은 the Upanishads가 그 하나요, 또 하나는 Bhagavad Gita 이다.
미국의 현대철학자요 Mythology란 학문(神話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Professor Joseph Cambell 교수(Sarah Lawrence College)로 재직하면서 많은 책을 발간했었던 그 일부에서 오래 전에 앞에 언급한 인도의 유명한 經典(경전)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이 두 책은 힌두교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철학이며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 지혜의 본원지에 해당한다. 불교가 탄생되기 훨씬 전에 이러한 古典이 이들 인도의 성현들의 지침서로 존숭받았다. 이것이 18세기 이전에 西洋 사상계에 소개되어 유명한 철학자들이 감탄을 금치 못하는 존재로 부각되기도 했다. 위키페디아에서 간추린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With the translation of the Upanishads in the early 19th century they also started to attract attention from a western audience. Schopenhauer was deeply impressed by the Upanishads and called it "the production of the highest human wisdom".
The 19th century transcendentalists, like Emerson and Thoreau, noted similarities between the doctrine of Upanishads and those of Plato and Kant.
The Bhagavad Gita is often regarded as the greatest of all the "Hindu Upanishads". The Bhagavad Gita presents a synthesis of the Brahmanical concept of Dharma, theistic bhakti,the yogic ideals[5] of moksha[5] through jnana, bhakti, karma, and Raja Yoga (spoken of in the 6th chapter). and Samkhya philosophy.
Numerous commentaries have been written on the Bhagavad Gita with widely differing views on the essentials. Vedanta commentators read varying relations between Self and Brahman in the text: Advaita Vedanta sees the non-dualism of Atman (soul) and Brahman as its essence,[8] whereas Bhedabheda and Vishishtadvaita see Atman and Brahman as both different and non-different, and Dvaita sees them as different. The setting of the Gita in a battlefield has been interpreted as an allegory for the ethical and moral struggles of the human life.
The Bhagavad Gita 's call for selfless action inspired many leaders of the Indian independence movement including Mohandas Karamchand Gandhi, who referred to the Gita as his "spiritual dictionary".
한국에서 내노라 하는 소위 지식인들, 그들이 문학평론을 하던 문예창작인으로 自他(자타)가 내로세 하는 분들... 이런 대단한 양반들이 凡(범)세계적 학문의 原泉(원천)이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지금까지 흘러내려왔는 가를 짐작하는 사람을 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앞에 인용한 영문의 서술에서, '쇼펜하우어'는 "the production of the highest human wisdom" 다시 말해서 인간의 지혜에서 가장 높은 창조물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푸라토나 칸트에 버금가는 그런 철학이란 얘기다.
한편 '마하트마 간디'가 말하기를 그의 정신적 사전 즉 his "spiritual dictionary"이라고 까지 평할 정도다. 그런데 한국인들 중에 이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십네까?
내가 어째서 이런 거창한 서두를 꺼내는고 하니, joe hong 이란 분이 한국의 문예계에서 크게 활략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동안의 그의 집필 역시 인간의 영혼의 문제, 즉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영적 고행에 관한 묵직한 글을 많이 올려왔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정신계를 풍미했던 인물로서 '니췌'니 '꺄뮤'니, '카푸카' 등등의 實存(실존)의 문제가 '쇼펜하우어'의 선구적 탐구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면 그가 그토록 높게 평가하는 인도철학의 大父(대부)의 이름 정도는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바가다 기타'를 읽어보면 the non-dualism of Atman (soul) 즉 진짜와 가짜, 아니 흑과 백의 논리에서 하나를 찾는 싸움을, 다시 말해서 "an allegory for the ethical and moral struggles of the human life" 즉 사람의 사는 삶에서 윤리적 아니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와 어떤 궁극적 진리와의 싸움을 Atman이란 戰士(전사)가 Brahman이란 절대자에게 묻고 또 대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쓰여젔더군.
그 얘기는 그가 전투대열에 앞장서서 적군을 바라보자 하니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멈칫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군인으로서 그런 회의를 가지는 자신이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Dharma (군인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고자 죽어야 하는 쪽과 그 죽음의 결과가 과연 가치가 있는 가를 저울질하는 정신적싸움을 비유 즉 Metaphor의 형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joe hong선생이 이락전쟁에서 살기를 띄운 눈초리를 하고 돌아왔다고 하셨다. 몇달 전에 군인으로의 한 세상을 살고 지금은 민간인로 돌아서서 영혼의 전투에서 있는 힘을 다하고자 열린마당에 와계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戰場(전장)에서만 보고 느낄 수있는 본연의 實存(실존)문제를 지금 해결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다시 살려면 이러한 역경을 거쳐야 할 것이고, 그 본원적인 삶의 가치를 의미있게 재정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지요.
禪涅槃
2015-04-18 09:15:44
선열반2015-04-19 (일) 02:52
"Shen
Hsiu가
이끈
북방학파(Nothern
School)의
Gradual
Enlightment가
Hui-neng의
남방School의
Sudden
Enlightment에게
禪佛敎의
주도권을
양보하면서
생겨난
개념으로
석가의
마음(Buddha-mind)을
어떻게
달성하는
가의
방법론를
놓고
中道論을
취하는
모양인데...
결국
Southern
School이
궁국적으로
승리해서
누구나
세상에
사는
동안에
어느듯
뜻하지
않는
순간에
涅槃
즉
석가의
마음을
깨닯을
수가
있다고
한다."
중국에
불교가
소개되기는
기원전
2년,
즉
예수님
탄생의
시기에
인도로
갔던
중국사신을
통하여
불교경전의
짤막한
교지였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단다.
그것이
중국의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기원후
2-3세기에
불교경전이
번역되며
두가지
개념으로
받아졌다고
한다.
그
한
부류는
dhya`na,
즉
concentration
혹은
meditation을
통하여
無知(무지)와
환각을
극복하고
마음의
평정을
이루고자
한
움직임이
있었고,
또
한
운동은
prajn`a`
다시
말해서
wisdom을
통하여
no
self-nature(沒自身:svabha`va)의
경지로써
같은
극치에
도달하려고
했다고.
이
두개의
학파가
성립하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Taoism
즉
老-莊사상이었다.
불경에서
tathata`
즉
thusness,
다시
말해서
'ultimate
reality'를
老-莊의
개념으로
말해서
"original
non-being"이라고
번역했었다.
이
말은
純無(순무)라는
것으로
pure
being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노-장사상
자체가
New
Taoism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는데,
being 즉
존재하는
것과
non-being,
존재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불교에서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던
거라.
그것을
설명하는
학파가
작으만치
7개나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논난을
하다가
Hung-jen(601-674AD)란
고승이
金剛經(금강경:Diamond
scripture)을
가르치면서
오늘날의
禪佛敎로
낙착짓게
되었던
바다.
이
분이
나타나기
전에
Bodhidharma(fl.
460-534), 소위
'보살'로
알려진
분이
"부다가
Lan`ka로
들어가는
경전"이란
책을
전했다고
항간에
알려졌다만,
西歐(서구)에서는
그가
정말
실재인물이었나에
異見(이견)을
던지고
있다.
뒤에
것은
촞점을
'궁극적
현실'
즉
Ultimate
Reality에
둔데
비해서
앞의
금강경은
'달마'(dharmas:
elements of existence) 다시
말해서
存在(존재)의
진정한
성질(the
true nature of existence)이
무었이냐를
묻고
있다.
"부처의
마음을
이루는
涅槃"을
최종의
목표로
삼는
것은
같으나
어떠한
경로로
궁극적
현실의
깨닮음에
이르는가
하는
방법에서
북쪽학파는
"점진적"이라
했고
남쪽학파는
"즉석해탈"을
주장했었다.
한동안
북쪽이
왕성했다가
너무
오랜동안
苦行(고행)하는
수고
보다는
instant
satisfaction이
더
인간들에게
매력이
있는
바라,
결국
'맥도날드'의
선불교가
승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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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2015-04-19 (일) 16:33
감사합니다.
그 '버거버드 지타(Bhagavad Gita, 神의 아가雅歌)'. 간디같은 흰두교도들이 '예수의 산상수훈' 내용에 비유되는 구절을 포함 18장 700산문.
Song of the Lord(주님의 노래) 또는 Divine Song(신의 노래)로 영역.
Swami Nikhilananda 1944 영역본. 이 번역자 성(姓) 속의 아난다. 아난다는 부처의 4촌이자 석가의 제자 아난(阿難)
S. Radhakrishna 1948 영역본. 이 번역자 성(姓)에 크리쉬나(Krishna)는 힌두신(神)의 응화신(應化神). 즉, 힌두교 최고신의 아들. 힌두교에서는 예수와 비교하는 이유는 이 '신의 아가, 즉, 알주나(Arjuna)와의 대화에 산상수훈과 비슷한 내용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