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37절에 기록되어 있는 "강도 맞나 죽게된 사람이 路上(노상)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제사장 같은 신앙과 지체가 높은 한 제사장과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지파사람은 피해 지나갔으나 역사적으로 천대를 받아온 '사마리아人'은 정성을 다하여 그를 간호하고 심지어 여인숙에 투숙시켜서 병간호를 부탁했었다"는 예수님의 說話(설화)였다.
25절에서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었을 하여야 永生(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니, 27절에서 그 자가 대답하되 율법에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나이다. 28절에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실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셨다. 대화 끝에 30절 부터 위에 언급한 강도 맞난 사람을 구해준 '사마리아'사람을 예들어 仁情(인정)을 베푼 사건을 말씀하셨다.
이런 감동적인 경우를 '이웃사랑하기'의 표본으로 이해하고, 교회에서 자주 듣는 說敎(설교)의 제목으로 인용되며 우리들로 하여금 이같은 사랑을 남에게 페풀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랑의 교훈으로만 이해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전체의 의도가 아니었다. 거기에도 훨씬 깊은 뜻이 있음을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 우선 제사장이란 직책과 그런 세습적인 지위를 누리는 '레위'지파사람들은 누구길래 이런 가장 인간적인 동정을 필요로 하는 현장을 피해가야 하는 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 다음엔 '사마리아'사람은 어떤 민족이길래 이런 사랑의 손길을 서슴없이 내밀수 있었는 가를 고려하여야 한다.
유태인들이 에집트를 탈출하고 시나이 반도의 사막에서 생활하던 40년의 긴 세월 동안에 노예생활에 물든 1세대가 다 죽었다. 심지어 '모세'도 젓과 꿀이흐르는 요단강 건너편의 '팔레스타인'땅을 바라보는 산꼭대기에서 죽었었다. 그 2세들이 이땅을 정복하기 직전에 '야곱'의 12 아들의 후손을 12 지파로 정하고 進軍(진군)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12 지파는 땅을 배정받았으나, 모세의 형님되는 '아론'의 자손인 '레위'사람들에게는 이 12 지파사람들의 靈的(영적) 관리의 책임을 맡겨서 세습적으로 여호와 聖殿(성전)의 성직자로 정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12 지파에서 나오는 所出(소출)을 제물로 받치게 하고 이런 봉헌물을 성전의 수입과 그 종사자들의 생활비로 충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런 제도를 예수님 당시에 이르는 1,500년 동안 두번에 걸쳐서 구약을 대집성하는 과정 (1차는 BC640년경인 '요시아'왕 때, 2차는 BC444년 '느헤미아'총독)에서 성전을 중심한 종교 및 정치체제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제도를 경제적이며 동시에 유태인들의 정신적 주축으로 삼기 위하여 "순결주의" (Puritan System)를 확립하고, 12 지파의 供出(공출)이 반듯이 성전에 헌납되도록 律法化(율법화)하였던 것이다.
이런 체제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것은 그 聖潔(성결)한 順位(순위)에 따라 等級(등급)을 메겼다. 문론 자기네 성직자는 가장 순수한 계급이다. 그리고 병들고 피를 흘리는 사람은 下層(하층)에 속했다. 밭에서 막 타작한 곡물은 순결하지 않아서 성전에 바쳐서 깨끗하게 축복을 받아야 했고, 도살될 양과 비둘기 조차 흠이 없어야 했다. 사회에서 도태되고 경제력이 없는 사람은 이런 獻納(헌납)을 할 수 없음으로 해서 불결하게 취급받았다. 여자나 외국인들 특히 '사마리아'인들은 가장 不潔(불결)한 사람들이었다. 왜 '사마리아'인은 이런 대우를 받았나?
삽입: 따라서 구약의 율범에 입각해서는 남의 피로 자신을 더럽히려 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의 기독인들이 기복주의에 연연해서 교회당 안에서는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내게 복을 내려주시옵소서"하지만 실제로 사랑이 정말 무었인지 알지 못하고 설혹 알았다 해도 마음이 그곳으로 흘러가지를 않는다. 왜냐? 한국의 전통은 남과 담을 높이 쌓고, 동네와 동네끼리는 장승이란 경계표로서 서로를 멀리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겠다는 사람이 자네 말대로 "친한 친구니까 내가 동창들 모임에서 추방된 것은 잘된 일이고, 내가 뭐를 잘못했기 때문이란 입장이 아니었나? 그게 친구라는 녀석이 기독인의 사랑으로 나를 동정하는 말이냐?
이것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 한다. 12 지파 중에 북쪽의 땅을 분배받았던 사람이 '솔로몬'의 한 아들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의 왕국을 이어 받았다. 또 다른 아들이 맡은 남쪽의 나라를 '유대'라고 불렀다. 솔로몬이 기원전 약 1,000년에 죽었는데, BC722년에 앗시라아가 침범하여(Shalmaneser, 열왕기하 17장 6절)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하고 그 주민의 대부분을 노예로 잡아갔었다. 그리고 그 빈 땅에 다른 원근의 다른 종족으로 이주시켜서 살게하였었다. 이렇게 되면서 북쪽 사람들은 聖潔主義(성결주의)의 관점에서 不潔(불결)한 혼혈 유태인들이 되고 말았다.
기원전 539년에 페르샤의 Cyrus왕이 바빌론을 정복하고, BC586년과 BC582년에 끌려 갔던 유태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고 '느해미아'총독 시절인 BC466년에 그 城(성)의 재건을 22년 만에 완공하였다. 문론 聖殿(성전)도 새단장했을 때였다. 이런 때에 북쪽 혼혈지파였던 '사마리아'사람들이 자기들도 이런 성전 대건축에 참가하게 해달라고 여러번 부탁했었다. 그러나 번번히 거절 당했다. 너무나 분격한 남어지 어느날 밤에 '사마리아' 사람 몇이 그 새성전에 들어가 똥물을 처부어 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부터 두 민족은 철천지 원수로 살아오게 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이런 不潔(불결)한 버림받은 민족의 사람을 이런 善(선)한 일의 대표적인 例(예)로서 우리들에게 사랑의 정신을 설명하는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거기에 숨은 뜻이 무었인가를 바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사회정의를 바로 잡으려는 혁명가였으며, 진정한 의미로 하나님의 공평과 사랑을 靈的(영적)으로 깨닯은 사람으로서 이런 사회의 不公平(불공평)을 이 세상에서 바로 잡기 위하여 자기의 목슴조차 걸고 도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萬人平等(만인평등)과 博愛精神(박애정신)을 당시의 권력자들과 기존체제에서 "저희들만 잘 먹고 잘 살자"는 썩은 사회와 정치체제를 뒤집어 놓으려는 사상가였으며, 동시에 사회사업가였다. 물론 구태의연한 그들 세력가들의 생각까지 바꾸려 하다가 결국 십자가에서 죽는 脫利己主義(탈이기주의)의 정신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용기와 초지를 관철했던 분이다.
그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적당한 변명을 대고 도망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잡혀가기 전날밤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했었다. 자기가 과연 이 죽음의 순간에 내 목숨을 구해서 좀더 오래도록 이런 혁명의 길을 가야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 자기의 주장을 죽음으로써 관철할 것인지를 물었었다. 우리가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늘의 뜻을 깨닫고 몸으로 실천에 옮기셨으니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우리가 성경을 읽고 또 교회에 다닌다면서 수없이 이 '사마리아'人의 善行(선행)의 얘기를 읽고 또 듣고 살지만, 그 근본정신은 이런 得勢(득세)한 者(자)들이 자기들 만의 利益(이익)을 위하여 남어지 버림받고 살기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그런 制度(제도)와 그 썩은 사고방식을 깨우치려는 예수님의 가장 强力(강력)한 例話(예화)였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참고: 미국에서 新約聖經(신약선경)의 유명한 한 학자로서 'Marcus J. Borg'란 교수가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써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이란 책의 골짜를 추려서 이 글에서 반영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