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경남기업.- 기업가의 자살. 명복을 빕니다, 천국이 있다면 말입니다.
적절하게 살 것이지, 그 자살행위는 가재나 여우만도 못한 우주적 정서.
그 중간 크기 가재는 미끼를 적당히 뜯어 먹다 물러나고, 여우는 힘이 지치면 '신 포도'라며 물러가고, 앤드류 카네기는 자기 같으면 별 볼 일 출판사를 포기할 꺼라고 역군의 용사 그 프랭크 더블데이(Frank Doubleday) 사장에게 말합니다.
보통들은 절대자살대신에 죄의 대가로 벌금,구류생활, 희생재물로 대속합니다.
도대체 그 자살로 재난과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물질 숭배로 돈을 벌다가 실패하면 정신적으로 크게 실망스럽기에 고통을 끊으려고 목숨을 끊는 것.
이를 보면 정신이 물질보다 위대하고, 상위개념이라는 반증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느끼는 동안만 우리는 살아있는 것이며, 우리에게 죽음이 있는 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순간 절명자살이 그 고통을 잊는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악몽의 밤꿈을 성공적으로 빠져나가는 도구가 될 수 없는 것.
물론 英 형이상학적 시인 '존 돈'이 자살이란 본질적으로 죄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John Donne (1573-1631): "Bia-thanatos" 1644(사후 출판)
역시 佛 문인 '자랄 데 넬발'은 '일때문에 자살하는 걸 냅둘 수 밖에 없잖느냐'고 반문했지만, 낙담으로 인한 자살은 치명적인 사건에 대하여 영혼불멸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Ge'rald de Nerval(1808-1855):"Le Reve et la Vie(백일몽, 삶)" II (?1852)
그러나 God은 인격적이 아니고 인간 의지를 가지고 있는 신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아인슈타인은 말합니다.- 나의 세계관 187
그러므로 신에 의한 사랑에 의존하라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그 은 30끗에 그리스도가 있는 곳을 고자질한 유다가 목매어 자살합니다만 자책 또는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비평을 듣고 디오니소스的인 발작적 발산대신에;
'초인적 아폴로'(Uebermensch) 상(象)을 지향할 것을 니체는 권합니다. -
욕구해결은 자신을 초극(超克)하는 예술적, 환상적 승화의 삶이자 그 어딘가에 있을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야말로 우주적 정서라고 권하면서;
현실의 세계에 대한 안이하고 찬미하는 천박한 낙천가가 되지 말고, 현실을 멸시하고 이른 바 배후의 세계로 도피하는 창백한 관념론, 역시 최후의 인간, 기복사상을 증오하면서 우리 이성(理性), 지성으로;
절정이 있을 때에는 정화로, 충동이 있을 때에 절제로, 고통이 있을 때 희망으로, 파괴가 있을 때에는 재창조로, 죽음에 대하여 삶으로, 그 원초적인 죽음의 본능(thanatos 타나토스)을 자중할 것을 바랍니다.
그 시그문드 프로이드는 자손을 퍼뜨리려는 죽음의 본능(thanatos), 성 올가즘은 죽음의 작은 연습(petite morte)이자, .. 성본능(libido)을 쫒는 인간성이라지만;
인성을 통계적으로 해석하지 답을 제시하지 않았기에 니체가 제시한 인생철학이 마음에 와 닿을 때가 있겠습니다. .... dkp올림 4/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