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이 대장군 한신을 토사구팽한 것처럼 전두환에게 대통령 제조기 허삼수ㆍ허화평이 미국으로 쫓김을 받듯 권력쟁탈 후에 더 이상 민중의 정의와 인권이 필요 없음.
여인이 앞장 서, 혁명의 심볼인 프랑스 그 여권운동가들.
그 프랑스 혁명(1789-1799) 후 권력을 잡은 온건파 지롱드(Gironde)당(黨).
혁명정부의 국회, 최고위원회에서 남자의 권리를 위한 혁명과업으로 수정.
남자 사회 정치에 부당하게 코를 내밀어 걸리적거리는 여인을 척결.
그러나 이들이 혁명의 거사를 도운 여인들.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다며 토사구팽.
죄목은 이들이 자연발생적인 남권사회에서 여권운동을 한다고.
혁명재판소는 단두대 앞으로 올란프 데 고지즈(Olympe de Gouges)를 끌어내 처형.
그녀는 고디바 백작부인처럼 과감하게 몸을 내어놓고 깃발을 휘날리며 혁명전선에 나섰던 여성.
그녀가 마지막으로 단두대 앞에서 한 말:
"여인이 단두대로부터 고개를 돌릴 권리가 있다면, 역시 재판관들에게 고개를 돌릴 권리가 있지 않나요?"
그러나 허락되지 않았고, 아무도 그녀에게 답하지 않음.
다음으로 그 동안 지롱드당, 자기들의 아지트(headquarter)로 쓰였었던 파리의 살롱 여주인 마담 로란(Mme. Roland).- 잔 마논 플레폰(Jean Manon Phlipon, 1754-1793. 11. 6.)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
"오 자유! 당신의 이름 안에 무슨 죄가 있나요!"
그녀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소식을 듣고 충격받은 남편이 일주일만에 자살.
그는 그녀보다 스무살 위.
그는 지론드 당수(1791), 내무성 장관(1792)을 역임하고 재차 임명되어 장관으로 근무 중인 남편.- 잔 마리 로란 데 라 플라턀(Jean Marie Roland de La Platiere, 1734-1793. 11. 15.)
짐승들이 정권을 쥐게 되어 있다.
나머지 여인들을 정신병동에 수감.
그리고 데 렐(de Lisle) 대위가 지은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라인강 병사들을 이끌던 마셀 나(Michel Ney, 1769-1815) 장군.
그는 장군 술트(Soult), 수세(Suchet) 및 유젠 데 보아네(Eugene de Beauharnais)와 함께 나뽈레옹을 돕고 만일의 경우, 프랑스를 위하여 루이 18세의 왕정복고를 염두에 둠(1814).
그러다 다음 해 워터루 해전(6-18-1815)에서 영국 웰링턴에게 패전한 죄목으로 국사범으로 몰려, 같은 해 총살됨(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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