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서 마녀, 마술사로 낙인 찍힌 그녀의 학문은 페르샤로 넘어감.
그녀는 알렉산드리아의 수학교수 테온(Theon, 후일 총장)의 딸로 태어나다.
그녀가 아테네에 유학하자 小프루타크, 이의 딸 아스클레피게니아(Asclepigenia)와 동문수학.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와 유클릿이 창설하기 시작한 알렉산드리아 대학 수학 및 철학교수.
그녀의 저서는 2세기의 그리스 문법학자 <아폴로니우스의 원뿔>, 3세기의 <디오판투스의 천문학 목록>.
육분의(sextant. astrobe), 액체비중기(hydroscope) 발명.
그녀는 신학철학적으로 종교와 철학을 분리하고 동방 신비주의를 가미하는 세칭 네오플라토닉 학파.
이 강의를 들으려고 온 교수들, 행정장관, <신의 섭리 De Providentia>등 6권을 저술한 네오플라토니즘 철학자 시네시우스(Synesius, A.D. 410).
그녀(A.D. 370-415)는 유크릿(B.C. 306), 알키메데스(B.C. 287-'42)의 수수께끼같은 문제를 해설.
이어 인간의 생각할 권리를 주장하여 신과 인간을 떠난 맹목적인 믿음에 대하여 일단 의심하고 질문하지 않는 한 틀린 생각이 전혀 생각하지 않음보다 못하다고 주장.
그런데 그녀에게 있는 장점 겸 결점.
너무나 미모가 출중하여 더운 날 튜닉(tunic)을 입은 그녀의 몸매는 현혹적.
그 튜닉은 헬레니즘 복식.
그 예로서 팔테논 신전에 피디아스(Phidias)가 조각한 아테나 여신(Athena Lemnia), 운명의 3여신이 걸친 옷.
석굴암 관세음보살 조각상(像)에서 보여주는 여인의 곡선미를 야들야들하게 비쳐주는 그 의상.
그림으로 표현한 그녀와 조각으로 묘사한 아테나 여신의 이미지가 비슷함.
하지만 많은 구혼자를 자빡대고(퇴자), 학생들 염문 짙은 농담에 "나는 진리와 결혼했다"고 응수.
그러자 그녀와 동갑내기인 페루시움(Pelusium) 수도원장 이시도루스(Isidorus, 370-440)와 결혼한 게 분명하다고 소문남.
그러다 불행하게도 A.D. 415년 3월, 4순절에 유대인과 크리스챤의 종교갈등이 서로 죽이고 불태우는 폭도행동으로 변할 때에 교황청 소속 수사 500명이, 그녀와 같은 네오플라토니즘의, 이집트 담당 로마 치안관(Perfect. 집정관) 오레스테스(Orestes)를 공격하다가 수사 한 명이 죽음.
이에 오레스테스가 피신[잠적].
그러자 이들이 꿩 대신 닭 잡기.
오레스테스 대신에 히파샤 잡기.
그녀를 처결하는 폭도와 합류하고, 알렉산더를 뒤흔드는 이 여인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로마 교황청 소속 시릴(Cyril, 376-) 대주교(archbishop, 412-444)가 그녀를 아리안(Arian) 학문 이단으로 판정(415)하여 그녀를 자신이 대주교좌(大主敎座)인 성당(ecclesia cathedralis)에서 죽도록 방치.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오레스테스는 크리스챤의 순교를 더 원하지 않기에 더 이상 문제로 삼지 않음.
이로서 알렉산드리아의 학문의 전당은 파멸.
시릴 대주교는 격렬한 반 네스토리안(Nestorian), 반 유대주의, 유대인 추방, 반 네오플라토니즘, 반 노바스티안(Novatian).
그 후 카라파(Carafa) 추기경은 말한다.
"사람들은 속기를 좋아한다.- Populus vult decipi.
그 탈무드에서 지적하기를 바울이 크리스챠니즘을 열었다고 하지만 변질을 계속.
그 교황청은 이 시릴[치릴로] 대주교에게 세인트(聖)라고 시성했지만(축일 6월 27일), 객관적으로 볼 때에 사실은 예수님의 담백한 말씀을 교황청 사도신경 교리로 포장한 거짓에 속는, 속아주는 맹목적 추종이 신앙이 아님을 호소했던 그녀가 반(反)크리스쳔 성녀(聖女).
............................................................................................................................................ 7-3-16 ^-^ dk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