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아니, 뭐요, 뭐가요? 얼마큼 좋기에 그리도 행복스러워 합니까?"
"참! 남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별 꼴이네. 가서 하던 일이나 하세요. ㅊㅊ!"
"댁이 좋다고 해서 궁금해서 그런거지. 같이 좋아하자는게 아니고! 그런데 뭘 그리 이의가 많소. 혼자 사나? 차라리 조타는 말을 꺼내지나 말지."
"참 말도 많네 저 양반. 알고 싶은 거 많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겠네요?!"
"그래요? 나는 누릉지밥(rice toast and water) 먹을 때가 제일 조터구만. 이런 말도 하면 안되나, 제기랄, 그래 관두쇼!"
다음은 <행복한 사람>이란 제목으로 서양문명사를 다룬 (한국일보 객원편집위원) 김정수 석학의 칼럼이 이 글을 올리게 된 동기가 됩니다.
1. 행복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추녀 밑의 풍경(a wind-bell)처럼 움직이고 풍향계처럼 바람따라 방향을 바꾸는 것.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시간과 공간과 상관관계.
2. 행복감은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과 대립하고, 의존하고, 때에 따라 늘기도 하고 줄고, 내 몸이 아프거나 자손이 커가면 바뀌고, 행복의 가지수는 한정없이 늘어만 간다.
3. 돈과 권력, 지식의 탐욕으로 행복할 수 없는 것.
남의 재산을 내게로 수평적으로 이동시키거나 탐관오리처럼 남보다 많은 재물을 가져도 그 때 뿐 이러한 상대적 행복함이란 사실상 우물 안 개구리의 만족일 뿐.
그리고 안다고 촐삭거리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소동파가 말한 바 글자를 아는 것이 화(禍)가 될 수 있기에 행복은 지식으로 항상 유지될 수 없는 것.
4. 개인의 행복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통하여 실현되지만, 스트레스를 가진 공동체 속에서의 상호 비교로 절대적으로 행복하게 되는 것은 아닌 것.
5. 그러므로 절대적 행복의 결정판; 천상천하 유아독존, 독불장군 득도, 깨달음, 열반을 명상과 좌선, 요가를 통해 얻으려고 합니다.
이러한 철학을 감동적 윤리로 집약, 초월한 신앙을 통하려고도 합니다.
6. 그러나 사실은 행복이란 없으며, 좋아하는 순간이 바로 행복스러운 순간.
행복을 찾는 것이란 자신의 마음 중에서 찾는 것.
7. 그러므로 어디, 어디에 가서 자기 마음을 찾을 것이며, 전설에 나오는 그 히말라야 수미산(須彌山. 蘇迷盧소미로), 서방십만억토(西方十萬億土)의 또 저 쪽의 서방정토(西方淨土)에 있다는 극락, 3~7층천(天)에 있다는 천국.
8. 그 곳에 가서 찾았다할지라도 그 고물-폐물 정크 야드에서 행복한 사람 마음을 족집게로 꺼집어 낼 수는 힘들겁니다.
정담을 나누며 웃을 때가 오직 행복한 순간.
............................................................................................ 감사합니다. 올림 5-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