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님께. 보라보라 물경치를 다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지난 번에 이어, 세 분을 정중히 모시려고 합니다.
이제는 불손한 사람이 어느 정도 정리된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 dkp가 '대화의 광장'에 독상(獨床)을 차린 것은 칼럼을 맡을 분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틀[型]일 뿐 준비하는 내용상 현재의 기고가일 뿐.
겸손하지 않고, 욕설하는 필진들이 저에게 너무 많은 글을 올렸다고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저라고 한 없이 이런 전체 구성(포맷format)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수제지건(首題之件) 화두(話頭)로 돌아와서, ..
아시는 대로 착한 분을 만나려는 착한 분의 삼고초려 개념은 어쩌면 강태공을 필두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도 있겠지요.
확인하시자면, 그 육도삼략을 지은 강태공이 착한 사람을 만나려고 미끼 없는 낚시를 하고 있던 곳은 서백 창(西伯 昌)이 지나가는 통로였던, 지금의 협서성(陜西省) 보계현(寶雞縣) 동남을 꺽어 북 쪽으로 흘러 위수(渭水)로 흘러들어가는 반계(磻溪) 봉상(鳳翔) 여울이란 말을 들었습니다만.
미끼 없이 빈 장대를 물가에 드리우고 있는 강여상(姜呂尙)을 희한하게 여기던, 할아버지 때부터 기산현(岐山縣)에 살아오는 서백이 수레에서 내려 몇 마디 나눠보고는 '아-하 바로 이 분이야말로 내 할아버님(古公亶父고공단보)가 말씀하신 우리를 도와줄 현인이로구나'라고 직감하고는, 모시고 가서 '나라를 일으킬 소망의 분',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호(號)를 드렸다지요.
그 후 서백의 큰 아들 발(發)이 강태공을 모시고 사악한 주(紂) 및 겸손하지 않은 자들을 평정하려할 때에 백이ㆍ숙제가 발(發)의 말고삐를 쥐고서 '부친상(喪)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반역하는 것은 의(義)가 아니라'며 질책하자 이에 부장(部將)들이 이 두 사람을 죽이려 했지만 강태공이 '아서라! 의(義)로 인하여 우리를 불의로 보는 겸손함이기에 살려주어라'고 명령하여 놓았주었다지요.
때가 되어 발(發. 무왕)이 죽고나서, 주변에 겸손하지 않은 자들을 소탕한 셋째 아들 주공단(周公旦).
그의 아들 백금(伯禽)이 노(魯)에 봉해졌을 때에 주공단은 애비로써 아들 백금에게 '나는 일어나서 선비를 모셨다'라고 다움의 말로 주의를 주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 나는 한 번 머리를 감을 때에 세 번이나 손님이 오셨다기에 매 번 머리카락을 움켜 쥐고 손님을 영접했고, 한 끼 밥 먹을 때에 입에 있는 밥을 세 번 뱉어내고 손님을 맞이한 걸 네가 알지 않느냐? 천하의 어진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했던 것처럼 네가 노나라에 가거든 사람들에게 교만하지 말아라.』
그 후 삼국시대에 유표의 객장이었던 49세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의 군사(軍師) 서서(徐庶)의 추천으로, 서주 낭야군(琅邪郡) 양도현(陽都縣) 남양땅을 찾아, 방덕공(龐德公) 제자였던 27세 제갈량을 세 번이나 뵙고 모셔내온 유비.
제갈량이 크게 느껴 유비를 모시게 되지만, 나오면서, '그대는 기여코 나를 수고로움은 많고 얻는 것은 적은 그대의 꿈 속으로 들이고 마는구려. 이제 나는 범증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 없게 됬소.'
그러나 이 대화의 광장에 윗 사람이 없기에 아래 사람이 모시려함입니다.
항우도 없고, 범증도 없고, 조조도 없고, 손권도 없으니 부디 왕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受任於難事之間dkp 올림 5-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