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은 갔지만 '세월을 기다린다'는 의미의 '사암(俟菴)' 정약용의 시절에 가뭄을 만나 굶어죽는 사람이 즐비하고, 살 길을 나서 정처없이 피난가는 주민이 길을 메울 때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라는 시를 남깁니다.
승냥이야 이리야
우리 송아지 채갔으니
우리 염소만은 물지말라.
장롱에는 속옷도 없고,..
항아리에 남은 소금도 없고
쌀독에는 남은 식량도 없다.
큰 솥, 작은 솥 다 빼앗아 가고
숟가락 젓가락까지 가져갔으니, ..
왜 그렇게 못된 짓만 하느냐. ..
우리의 논밭을 바라보세요.
얼마나 지독한 참상인가요.
백성들 시체가 메꿔지네요.
부모같은 사또님은 고기 쌀밥을 드시네요.
방 안에는 기생을 두어 연꽃처럼 이쁘네요.
'가정맹우호(苛政猛于虎)'라고 호랑이보다 혹독한 것이 관리들의 탐학질.
가뭄에 시달리는 사람이 이웃 마을 사람과 장난을 하다가 그만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관청에서 알고 관검(官檢)나오면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기에 사람들이 과실치사시킨 그 사람에게 자살하기를 권하여 그 사람이 자진(自盡. 자살)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관리들이 죄상을 캐면서 3만냥을 뜯어갔는데, 이 돈 마련때문에 두 마을에는 삼베 오라기 하나, 곡식 한 톨 남지 않아 그 지독함이 흉년보다 심했다는 것입니다.
더 기막힌 대목은 두 마을 사람들이 그 고향을 떠나 뿔뿔히 흩어지고 오직 부인 하나가 남아 군수에게 그 사정을 호소했더니 군수가 '네가 나가서 찾아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군수의 답변이 이조가 일본에게 망하기 전, 그 시절의 국민의 고통를 대변해 줍니다.
그러므로 공무원이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면 일본에게 점령당하던 시절이 생각나는 겁니다.
그 부정부패로 거두어드린 돈은 국민의 돈입니다.
豺狼三章시랑3장 憂國愛民우국애민 社會詩사회시 『豺兮狼兮 旣取我犢 毋噬我羊 笥旣無...』
.....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교수한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