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극 <사랑을 믿어요>에 낳기는 낳았지만 이모에게 맡겨져 장성한 아들이 친모에게 '내 엄마는 이모요'라는 말이 일리가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반일 정서 편견이 자신의 자존심일 수 있음은 제인 오스틴의 <자존심과 편견>에서 에리자베스 집안의 열등의식과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다고도 보겠음.
그러나 편견이 자존심이어서는 향기롭지 않은 것.
작가는 거기에서 시대적 속물근성(snobbery)을 해체하고 사랑과 자각으로 구축하는 내용.
그러므로 대통령이 덕이 있다면 일제치하에서의 징용된 위안부에 대한 원한의 매듭 해체구축은 피해자 가족 및 몇 안되는 생존자의 호소를 들어주어야 할 것임.
아니면 피해자 유족을 까뮤의 <에뜨랑제 1942>(박근혜의 이방인 2015)으로 만드는 것.
朝 女 海 .... 벽지의 작은 집 툇마루에서 햇빛 쪼이는 정신대 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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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 た
挺..........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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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잔원(殘寃)인 "소녀상 표상" 철거는 어불성설.
같은 시대 나치의 Himmler Final Solution(10-4-1943) ↔ Conrad Adenauer+Nahum Goldmann(1952) 합의 역사에 무식하기 때문.
답은 간단.
이스라엘과 독일의 선례를 롤 모델로 흉내만 내어도 된다.
피해국 이스라엘은 1billion달러 보상에 기념관(Yad Vashem. 手名館).
아니라면 한일간 여하한 합의는 국민적 무효이며, 역사에 기록될 굴욕자 윤병세 외무부 장관은 해임감, 대통령은 탄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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