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적당히 지워질 겁니다.
아래 글에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明治 17년
1844.4.4- 昭和 18년1943.4.18. 國葬) 일본해군 연합함대사령장관 이미지.25-knot, 12inch 砲, Dreadnought 전함으로는 안됀다는 걸 안 장군.
그에 대하여 왕휘지체-추사체로 내려 쓴 常生戰場 '상생전장'이란 휘호가 씌여있는 야마모토의 이미지를 댓글로 부탁해도 될까요? 常在戰場
고맙습니다.
^-^ dkp
1. 이소로쿠 사령장관의 시신을 확인하는데 참고가 된 그의 잘라진 두 손가락.
그의 손가락 두 개가 잘리워진 것으로 시신이 그 사령관임을 확인하는데 도왔음.
노일전쟁 전열 정비 때에 해군소위 후보생. 甲 순양함 제1戰隊 니씬(日進)함(艦)에 승선한 그가 포신과 포탄을 점검.
그 당시에 8인치, 12인치 대포. 포신에 한 번 장전(裝塡) 발사 후 30분 쉬었다 장전하기에 1시간에 2발밖에 발사 못함.
까닭은 한 번 발사하면 포신이 赤熱하여 포신이 통통하게 살이 찌는 당발('月唐'發) 시절이기에 포신을 식혀야 함.
해군은 해군대로 연구하는 시절이기에 그가 개량할 수 없나 생각하며 8인치 포 앞에서 궁리하다가 신관(信管)이 오작동 발작(發炸. '터짐')하여 손가락을 잃음. 그 잘라진 손가락으로 하버드에 유학을 갔고, 1924년 그가 무관 대좌(대령)로 미국에 파견되어 미해군 장관 커티스 D. 윌버(Curtis D. Wilbur)를 만났으며 그리고 윌버 부인의 후원으로 8인치 포를 탑재하는 '시스터 사라'라는 항공모함 USS SARATOGA (CV-3)가 진수됨(1942.1.12).
그 후 일본이 2분에 한 발 쏘는 포신을 개발함.
그 '시스터 사라'가 일본 잠수함 I-6의 공격을 받아 파손되자 수리 겸 강등되어 8인치 포를 5인치로 깍아내리고 진주만 피습때에 하와이에 없섰고, 후일 미드웨이 해전에 보급을 맡음.
2. 1943년 4월 18일.
그가 미군이 점령한 남위 5도, 동날 155도 지역에 직접 정찰을 나간 이유.
그 당시에 일본 군인을 사령하는 장군이 현지답사를 하는 제도.
파푸아 뉴 기니어(Papua New Guinea) 동쪽, 과달카날(Guadalcanal), 솔로몬 제도로 G4M 1식 육상공격기 편대를 이끌고 시찰하며 착륙하려고 고도를 낮추는 도중에, 이미 일본 군대 암호를 해독해온 미군이 사이퍼 해독능력을 감추기 위하여 모른 척하고 있다가 과달카날에서 출격한 육군 항공대 P-38 쌍동(雙童) 날개 전투기 16대가 접근.
그리고 이소로쿠 비행기의 아래 쪽에서 기관총 발사에 의한 파편을 이소로쿠, 동승한 참모장 우카키(宇垣纏¿)가 맞고 절명한 것으로 추측.
이어서 렉스 바버 중위가 격추시켜 機體가 부게인빌(Bougainville) 섬 정글에 추락하며 재차 분해됨. ^-^ dk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