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가르침의 목표는 잘 사는 평화, 목적은 사랑. 사랑은 기부하는 것.자본주의 결함을 보완하는 최선의 길(道). 모든 종교의 종속적 가치이기도 함.
자선함에 구세군 남비, 슬리핑 백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겠고, 대기업가가 통제적 기부정신이, 또는 민족을 사랑하기에 춘원 이광수처럼 대세를 인식하고 일본 천황에게, 랍비 요카난 벤 자카이 (Yochanan Ben Zakkai)가 로마 베스피언 장군에게 항복하는 정신이 있을 것 같음.
이 점에서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전제로 함이 마땅할진데, (이하 존칭 생략) 옥세철의 올바른 <그래도 결국은 선(善)이, 사랑이ㆍㆍㆍ>란 글과 같은 날(한국일보 12-9-15 A10)에 윤여춘의 <이름 없는 기부천사>, 정영근의 <이광수의 친일을 용서?>라는 제목으로 경륜이 적은 소견을 올렸기에 아래와 같이 이 나중 두 사람에게 반박하는 바입니다.
........................................... 아 ............. 래
1. 남의 의견과 사물을 가깝게, 처지를 바꾸고, 멀리, 조감적으로 내려다 보고 관측하지 않은 점. 한상균 노총위원장같지야 않겠지. ..
까닭은 빈곤층에게도 반면의 정의, 진리가 있기에 다른 데, 외국원조보다는 내국민, 회사직원에게 복지시혜를 더 요구하는 프에르토리칸의 주장, 근로자 말에 일리가 있기 때문.
그 기부행위를 가깝게 보면, 당장 절박한 곶감을 우선으로 하지만, 몇 십억달러를 번 기업인의 기업 정신으로 볼 때에는 앤드류 카네기의 생각이 맞을 겁니다.
그는 수 많은 개인이 그에게 자비를 요청했지만 그 부부는 공공 도서관, 예술의 전당에 투자공여.
예를 들어 열열한 사회주의자가 그를 찾아와 이윤의 공정한 분배를 요청했을 때에 그의 전 자산을 세계인구로 나눌 때 16센트임을 알고는 그에게 16센트를 주라고 비서에게 말했음(p. 102).
즉, 부자는 상대적이지 절대적으로 큰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욥(Job)의 항변.
2. 항복론에 대하여 춘원 이광수에게 매국노, 일본인 행세하는 친일파, 권도에 말린 민족 배덕자, 일본인 준사(巡査 policemen)에게 보다도 배반한 동족들에 의해 숱한 낭패, 곤혹을 당했다는 석오 이동영, 백범 김구의 촌평이 틀렸다는 것은 아님.
그러나 그 이광수가 그러한 기로에 빠져있는 분위기에 그를 도와준 인고의 지혜스러운 애국지사가 있섰느냐가 의문.
돈만 기부문화인가, 정신문화 유지로 기회를 엿보게 함 역시 기부가 아닌가?
준비되지 아니한 이에게 운이 따르기 어렵지 않은가?
3. 그 이스라엘이 로마에 재침으로 폐허될 조짐이 보일 때, 랍비 요카난 벤 자카이는 로마에 항쟁하는 무장봉기, 독립투사 압바 시크라(Abba Sikra)에게 사람을 보내어 '현 상황을 뚫고나가는 길을 찾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하자 그에게 송장냄새를 풍기게 하고 마치 점령군 사령관 베스파시안(Vespasian)에게 항복하려고 스스로 관을 지고 온 사람처럼 관(棺. 설친'卄熱'櫬)에 넣었습니다.
그 관의 앞 쪽을 랍비 Eliezer, 뒤에서 랍비 Joshua가 들고 시크라가 인도하여 성문을 향함.
예루살렘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그들이 말한대로 시체임을 확인하기 위하여 창으로 찌르려 하자, 시크라가 그들에게 '로마는 유대인의 지도자를 찔렀다'란 역사를 남길 것이라고 말하여 창에 찔림을 받지 않고 용케,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여 시체 자카이를 로마 군중(軍中)으로 호상(護喪)하고 되돌아감.
이에 그 자카이가 베스파니아누스 사령관에게 '당신은 황제가 될 관상입니다'라고 말함.
이에 그의 항복과 고무함을 만족해하는 사령관이 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에게 야브네, 그 성현을 달라'고 함.─ Vespasianus, Titus Flavius Savinus(A.D. 9-황제 69-79)
"Give me Yavneh(야브네) and its sages."(탈무드 전당. p. 137).
이 요구로 말미암아 유대인의 야브네 지역에 유대인 아카데미가 세워졌고 이 학교가 예루살렘의 산헤드린(Sanhedrine).
4. 정치는 정치인에게.
백범 김구는 정치인. 정치하는 이에게 친일파 유무를 따져야 함.
춘원 이광수는 문인. 민초들의 할아버지의 권도를 이해해야 함.
살기 어려울 때에 쓰레기에서 먹을 거리, 등겨, 메뚜기를 볶아 먹는 것은 편법, 융통성 권도.
문인 이광수에게 정치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수.
나라를 잃게 한 것은 오히려 대한제국의 정치가.
가끔씩 밥을 주는 것보다, 학교를 더 세우게 하고, 몽매에서 깨어나 살 길을 아르쳐주는 춘원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준 기부문화임을 누가 부인하리요.
그 1941년 월간 신세대: <그들의 사랑>, 다음 해 국민문학지에 올린 <가가와(加川) 교장>의 내용에 나라를 포기한 그의 사념에 초점맞춤은 근시안적 기부문화 해석이라 하겠음.
5. 결어
역발상.
그 당시 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미군병사가 일본의 대미심리전 앞잡이가 되어 일본 침략성의 정당성과 우수한 군사력을 홍보하면서 '그 걸 말 탄 수병(水兵)에게 말하라'고 대미방송.─
"Tell that to the horse marines!= That will do for the marines! 거짓말 마라!
즉, 육당 최남선의 강건체 독립문서 초안에 앞서, 미려한 문장의 <조선청년독립단 2ㆍ8 선언서> 를 초안했던 춘원 이광수의 달필인데 그의 친일발언은 일본을 믿지말라는, '경상도 문디(a leper) 반어(反語 words in reverse)' 내용으로 여길 수는 없을까?
그 미군병사의 의미를 미국 조야에서 알아들었건만 한국인은 춘원을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까닭은 복지적으로 눈에 당장 보이는 물질적 기부행위가 없섰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시절에 가난해져야 할 도(道)가 없다면, 같은 기간에 부자가 된 이가 기부할 도(道)가 없는 것.
사랑의 도(道)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 것은 오리무중.
똑같은 전쟁 중에 토요토미는 출전하지 않으려는 24세 조카 히데추구(1568-'95)에게 자결하라고 했지만, 똑같은 곤궁에서 이순신 장군은 '노모를 거두어 먹이려고 탈영한 갑돌이'를 잡아와 효수하지 않았음.
그 히데추구는 3년 후에 삼촌 히데요시가 히데요리를 낳자 자결.
사랑은 기부. 기부는 물심양면으로 국민을 사랑함.
그 야당으로 출마, 전국구위원이 되고 싶을 민주투사 한상균 노총위원장처럼 근로자 편만을 들어서는 안될 겁니다.
그 F. D. 루즈벨트가 미국인이 존경하는 대통령이 된 까닭은 대법원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뉴딜 정책을 실현하려고 TVA의 공사장에서 등에 자갈을 짊어지고 축대 위로 날라가서가 아니고, 미국인에게 절망을 딛고 미국의 과업을 이루려는 신실한 격려였음.
그러므로 물질과 정신적 격려, 위로, 온후화사한 언변 역시 사랑의 종속적 가치.
* 흑백논리가 아닌 정상을 참작한 상쇄(相殺)론(countervail, an offset).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 이집트 콘수메스(Khonsumes) B 파피루스에도 죽은이의 마음(심장)과 죄를 저울에 다는 장면이 서너 번 나옴. 현 시국 인심이 이만큼도 못하단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혜와 원수진 것을 잘 잊는다고 개인적으로 말한 중국인과 미국인의 말, 그리고 기부자가 죽어도 뻔하게 우정과 의(義)가 변화무쌍할 세태를 읊은 두자미(杜子美)의 빈교행(貧交行)이 생각남.
................................................................................................................... dkp. 12-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