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목련(마그놀리아). '아-!'하는 감탄스러움, 봄맞이, 한 웅큼 꽃송이.
개나리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순결한 빛깔, 단아한 백목련, 자목련.
"아니 저렇게 연꽃만큼 클 수가 있겠는가!"
"그러게 '나무 연꽃'이라 하지."
꽃이 탐스럽게 클뿐만 아니라 그 꽃이 시들고 나면 석굴암에 나발로 안치된 영락없는 석가여래 곱술머리 도토리 꼭지모습으로 열매를 맺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 꽃이 겸연쩍어할 때가 있음.
2월에 눈서리 맞아 꽃봉오리에 고드름이 매달린 다음에 구질구질하게 모조리 떨어지기 때문.
이상난동의 겨울날씨 3~4일 동안의 날씨정도로 생각(思)하여 동(動)하지 않다가, 날씨가 일주일 따사하면 봄이 온줄로 착각하고 꽃망울을 터뜨렸다가 제 철 추위로 눈석임물에 사흘만에 고드름되어 떨어지고 남은 건 앙상한 검은 가지.
그 된서리, 며칠 사이의 찬 바람에 땅에 깔린 우중충한 밤색 시든 꽃잎.
이와 같이 목련, 개나리도 환경을 느긋이 생각하고 꽃을 피우려다 아차 실수하는데, 항차 사람이 되어 생각도 안 해보고 지망지망 말해놓고는 뒤돌아서서 말을 바꾸는 '아베 수상, 박근혜 대통령' 정치철학이 한심하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더구나 겸연쩍음이나 회개의 낯이 전혀 보이지 않음은, 봄을 환영해주는 그 목련, 개나리 꽃이 뒤늦은 7월에 절반 정도 꽃을 다시 피워 유종의 미를 거두는 생활철학만도 못하지 않은가?
조윤성 논설위원님 하프타임 <참 편리한 사고방식 11-6-15>을 읽은 후의 소감.
그러므로 시대착오의 늙은이 공자의 허튼 말이라고 비웃을 수 있겠지만 '계문자(季文子)처럼 세 번이나 생각하고 언행함보다는 (적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라'는 가르침을 잊을 수 없겠다고 하겠음.─ 자왈 재- 사가의(子曰 再- 斯可矣)
췌언하자면 '과학이 오만하다'고 하지만, 내리막 길에 접어든 차량 운전수가 마주오는 차량의 움직임을 살펴 안전하다 싶으면, 달리는 차의 기어를 아무 잡음 없이 브레익 밟지 말고, 중립('N'eutral)으로 변속시켜 에너지를 절약하듯(네이비게이터는 여전히 충전됨) 시대적 전자공학에서도 전진하는 'D' 차량을 중립으로, 중립에서 잡음 없이 'D'로 바꿀 수 있고 브레익이 여전히 말을 듣는 것처럼 구설수에 걸리지 말고 사물을 한 번 더 소리 없이 생각해보는 경영학적 탄력으로 처신하면 좋을성 싶다고 여김.
자신의 소신을 꺽는 것은 '그러나'라며 이미 했던 말을 무력화시키려고 브레익을 밟는 격이 아닌가?
일단 말을 바꾼다면, 그 브레익을 밟을 때마다 카브레이터를 경유한 엔진 시린더 안의 개스의 역학이 없서지는 것처럼 서투른 전략구현이 아니던가?
................................................................................................................. dkp. 1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