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는 극작가, 배우. 미리 준비한 듯이 대본을 써내려가고 고친 적이 없음.
그러나 폐가 약하고 의사는 그에게 소화불량, 비장병, 설사, 붓는 병, 우울증 약을 처방하고 어딘가 위선적(이 것이 일반 의사가 할 말인가)인 면이 있다고 말해줌.
사실 그는 건강에 대한 노이로제.
인간은 질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남과 마주치면 깨어진다는 전설을 믿었음.
동양에서도 인간을 질흙으로 빚는 조물주를 고패를 돌리는 홍균(洪鈞)*, 몰리에르보다 200년 후에 태어난 시인 로버트 브로우닝(Browning) 역시 인간은 토기(土器)라고 읊었음.
이 몰리에르는 동료 라센(Racine. 라신느)을 해임.
그가 배반하고 배우 두팍(Du Parc)을 빼어내가 정부(情婦)로 삼고, 트로이 왕자 헥터의 정숙한 부인 <안드로마케>로 데뷰시켜 크게 성공(1667).
이제 몰리에르(1622-'73. 51세)가 활동한 곳을 추억해주는 이는 화가 마네(Manet, Edouard).
"폴리-베르젤(Folies-Bergere)의 바(Bar)의 연구(1881)", 이 "바(Bar)의 모델(1881)", "폴리-베르젤 어느 바(Bar) (1881-'82)".
2014년에 제 26차 2회에 걸친 그 곳에서의 몰리에르* 추모식과 시상식.
몰리에르는 그의 최후의 걸작 <상상한 폐인(廢人) The Imaginary Invalid>의 대본을 직접 쓰고 감독하고 자신이 주연으로 나오는, 일신을 바치는 작품을 완성.
자신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 강박관념을 아낌없이 연출하여 청중의 폭소를 받음.
이 작품을 성공리에 끝낸 어느 날 오후에 출연진 모두가 51세인 그에게 연기를 그만하라고 권유.
그는 많이 아팠다. 연기 중의 상상한 병환자가 아니라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기침하여 말하기도 걷기도 어려웠음.
"연기를 취소하라고?"
그의 동료 배우들이 그에게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예술계를 저버리라'고.
그 날 밤, 여전히 <상상의 폐인>을 연출하여 시청자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환호를 받음.
주연인 그는 머리를 안락의자에 묻고 모피를 둘러 쓰고 모자를 그의 귀까지 내려 쓰고 연상 기침하며 피를 토하고 이를 닦아내고 있었음.
그가 고통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한 그 상황에서도 독백하는 대사를 하나도 잊지 않으며 피를 토하고 바닥으로 쓰러질 때에 늑골이 부러지는데 관중은 그가 죽는 체하는 연기를 기막히게 소화하는 줄로 알았음.
무대의 휘장이 내리고 기립박수 소리가 요란할 때(2-17-1673)에 그는 죽어있었다.
그는 <돈주안 1665>, <구두쇠 1669>, <사랑이 최고 닥터>, ..수 많은 걸작을 남겼음.
그는 극장가문과 협력했지만 <사랑이 최고 의사>라는 풍자극처럼 담당의사, 의사 친구가 없고, 적절한 식사, 운동과 휴식이 안되어 폐렴 또는 폐농양으로 생을 일찍 마친 것 같음.
몰리에르와 대본을 같이 만들고 <부르주아(중산층) 신사 The Would-Be Gentleman, "Le Bour- geois Gentilhomme>에서 협연했던 알만(Armande)은 1694년에 은퇴하여 연금 1,000파운드를 받음.
그가 죽은 후 그가 이용했던 곳은 프랑스 국가적 극장으로 성장하게 됨.
* 고패: 녹로(轆轤). 오지그릇 만들 때 발로 돌려서 모형과 균형 등을 잡는 물레(potter's wheel). 로버트 브로우닝 시 <(철학자, 작가) 랍비 벤 에즈라(1092-1167) 1864> 제 26句, 이사야 64:8, 예레미아 18:2-6, Rubaiyat of Omar Khayyam XXXVIII-IX, XL-XLI potter
* 예명 몰리에르(Moliere). 본명은 Jean Baptiste Poquelin(잔 바테스트 포클랜 1622-'73). 루이 14세가 젊었을 때의 왕을 위한 코미디언, 재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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