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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글쓴이 : wind 날짜 : 2016-03-25 (금) 14:35 조회 : 840

봄 나들이
(한국일보 김정수 칼럼)

1.
물 건너 또 물 건너 (渡水復渡水:도수부도수)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看花還看花:간화환간화)
봄바람 강뚝길을 걷다가 보니 (春風江上路:춘풍강상로)
어느 사이 그대 집에 이르렀구려 (不覺到君家:불각도군가 )

위는 중국 명나라 때 고계(高啓)라는 시인이 화창한 어느 봄날 호은군이라는 친구를 찾아가면서 읊은 시이다. 시의 제목은 <심호은군 尋胡隱君>인데 은군(隱君)은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심은 “찾을 심( 尋)” 이니까 시 제목은 호(胡)씨 성을 갖인 은군자를 찾아 간다는 뜻이 된다. 이 시는 원래 4절까지 있는데 위 첫 구절이 가장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보통 한시(漢詩)에서 같은 글자를 두번 쓰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인은 기(起)와 승(承)에서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 오히려 읽는 이의 감흥을 높인다. “물 건너 또 물을 건너,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며..” 하는 “도수부도수(渡水復渡水) 간화환간화(看花還看花)..” 표현이 나는 너무 좋아서 아름다운 이 봄날, 수선화와 철쭉꽃이 어울려 피어진 동네 좁다란 길을 걷으며 이 시를 외운다. 시인은 그렇게 강뚝길을 걷다보니 어느듯 벗의 집에 이르렀단다. 맘 가는대로 걸음 내키는대로 친구를 찾아가고, 친구는 이렇게 불쑥 찾아온 벗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반갑게 맞는다. 그래서 이어지는 다음 절,

“오늘 꽃 밭에서 술을 마시네 (今日花前飮)
즐거운 마음에 몇 잔 술로 취했네 (甘心醉數盃)
단연 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但然花有語)
이 늙은이 만을 위해 핀 것이 아니라고 말 할걸 (不爲老人開)”

그렇지! 아름다운 이 꽃들은 유독이 나 만 보라고 핀것이 아니고 세상 모두를 위해 피어난 것이다.

2.
중국 남북조 시대(439-589)에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인품이 좋은 사람이 있었다. 양(梁)나라 임금인 무제(武帝)가 여승진을 지방 장관으로 임명하였는데 그 임지가 바로 여승진의 고향인 남쇠주(南衰州)였다. 임지에 부임한 여승진은 행여 공무에 사(私)가 개입될가 염려하여 형제는 물론 친적들까지 관아에 얼씬하지도 못하게 하였고, 부패의 근원인 군역과 조세행정을 바로잡고, 마치 어버이가 자식을 돌보듯 백성들의 애로사항을 잘 처리하여 주었다. 참으로 여승진은 유능한 관리이면서도 깨끗하고 검소한 사생활에 교우 관계가 원만한 군자(君子)중에 군자였다.

당시 나라에는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은퇴한 다음 자기가 살 집을 찾다가 역시 고향으로 은퇴하여 살고 있는 여승진의 바로 옆집을 구입하였다. “얼마나 주고 그 집을 사셨습니까?” 여승진이 물으니 송계아 대답이 “천백만을 주었소” 한다. “아니 백만이면 충분할 집을 어떻게 천만이나 더주고 사셨습니까?” 하니 송계아 대답이 “백만은 집 값이고, 천만은 그대와 이웃하기 위한 값이요 (百萬買宅 千萬買隣)”했다. (출처: 南史 56券 呂僧珍傳). 사실 좋은 이웃과 벗하여 살 수 있다면 천만금이 어찌 아깝겠는가?

3.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주위를 보니까 돈이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학문이 높은 사람이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도 아니었다. 행복이란 뜻밖에도 평범하고 소소한 데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일상 보는 대로 포근한 가정에 좋은 친구와 벗 하는 사람이고, 따뜻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고 사는 사람, 그리고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우기가 이제 끄쳤는지 내가 사는 실버타운인 로스모아(Rossmoor)에 찾아온 봄이 한 층 더 싱그럽다. 봄길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이웃에 마실을 간다. 이렇게 불쑥 찾아 갈 수 있는 이웃이 있고 아무때나 부르면 나와서 만나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가고, 바다가 손짓하면 바다로 간다. 그러나 해 저물기 전에 꼭 집에 돌아와서 아내가 준비한 저녁을 먹고 사랑했던 책을 다시 꺼내 읽는다.

마음을 비워 짐을 내려 놓으니 봄길 나들이가 더 더욱 가볍고 즐겁구나.


이태백 2016-03-25 (금) 17:37
시원시원란 내용에 서글서글하십니다.
심호은군이든 심호은자든 부도수, 환관화, 유독 늙은이만을 위해 핀 꽃은 아니지. 아주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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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2016-03-26 (토) 00:02
이거, 또 공자 앞에서 문자를 썼습니다.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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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 2016-03-26 (토) 11:20
아니지요. 
그 숯다리미가 넘어져 포자백택이 눌어 울고가는 여종에게 톡벤 깁에 수 놓아준 사임당 솜씨처럼 본문의 paragraph development. 

그 고계의 시에 '호'가 친구 이름인지 물 건너 또 건너 '먼 곳'이라는 의미인지, 한 없이 꽃 피운 길을 따라가는 어느 꽃동내 이름인지, 읊노라니 가상적인 이름인지 중요하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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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 2016-03-26 (토) 15:06
태백 선생의 코멘트를 읽으니 '호'가 꼭 사람 이름일 필요가 없겠군요. '물건너 먼곳?' 그렇다면 봄 나들이로 휘적휘적 다녀올 거리는 아니겠지요. 아마 강상적인 이름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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