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역사화가였던 레뇨(Regnault. 1754-1829)의 제자였고 파리의 Ecole des Beaux-Arts 교수였던 바룬 피아르-나르서스 가렌(Baron Pierre-Narcisse Guerin. 1774-1883)을 최고라고 하겠읍니다.
그의 작품 중의 눈동자가 살아있어 내용을 짐작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에 경탄.
그 <디도의 운명. Ene'e et Didon. 1875>에서 떠나가야 하는 사정을 말하는 에네아스(Aeneas)에게 아들 아스카니우스(Ascanius)를 달래며 에네아스를 쳐다보는 칼타고 여왕 디도의 눈빛은 천하에 일품.
그 디도의 눈매는 사랑하는 그를 떠안고 떨며 우는 맵씨보다 낫고, 100마디의 말보다 나은 무언의 마음.
결국 장작불 위에 올라가 불타며 죽지만 그녀의 눈매는, 렘브란트가 "루가22:54-57"을 묘사한 <돌아온 탕자.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9>를 쓰다듬는 아버지 마음씨 묘사를 초월.
아드왈 마네(Edouard Manet)의 피크닉<Pastoral Nudes. 1863>, 구스타브 쿨베(Gustave Cour- bet)의 얼굴 없는 개벽<The Origin of the World. 1866>보다도 훨씬.
이러한 표정의 눈동자를 인공지능이 훙내내지 않기를 바람.
지능은 있서도, 지성과 영성은 나타내지 않기를 바람.
오스카 와일드도 잘못되고 불안전하고 비도덕적인 인간노예가 아니라 기계노예가 필요하다고 역설.- 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The Soul of Man Under Socialism> 1895.
즉, 자본주의 사회에 일꾼이 필요.
하지만 예민한 인간감성이 없는 기계가 필요.
즉, 디도의 오라버니 피그말리온(Pygmalion)이 조각한 여인상에 비언어적인 영혼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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