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랑이 무엇인가?
산악인 수잔, 남편 필 에슈러(Susan & Phil Ershler). "어디에서 그가 죽든 내가 기어가서라도 그이 옆에 가서 죽을꺼야. 영원히.
그는 내 영혼의 동료, 영웅, 가장 가까운 친구, 연인, 위로자, 응원단장 그리고 내 남편. 나는 그가 없으면 엉망이 될거야." 흐흠, 이 것이 사랑이지.
우리의 등반;
1992년 탄자니아 킬리만자로(Mt. Kilimanjaro. 19,339피트) 5,994.5m
1993년 유럽 러시아 엘브르스(Mt. Elbrus. 18,481피트) 5,633.0m
1996년 알라스카 맥킨리(Mt. McKinley. 20,320피트) 6,193.5m
1996년 알젠티나 세로 아콘카구아(Mt. Cerro Aconcagua. 22,841피트) 6,961.9m
1998년 남극대륙 빈손 맛시프(Mt. Vinson Massif. 16,067피트) 4,897.2m
1999년 오스트렐리아 코스키우스즈코(Mt. Kosciuszco. 7,308피트) 2,227.8m
2002년 네팔 에베레스트(Mt. Everest. 額菲爾士峰 珠穆郞瑪峰 29,035피트) 8,849.9m
우리 부부는 산악인으로서 1984년에 에베레스트 산을 중국을 통하여 창체(Changtse. 24,879피트) 아래 '북편 안부'(鞍部. North Col. 23,000피트)를 제 4 캠프로 Bivouac 능선으로 등정했다.
이 번 2002년에는 셰르파를 구할 수 있는 남쪽 루트 네팔을 경유.
셰르파(Sherpa)는 그냥 짐꾼(porter)이 아니고 그 곳에 익숙한 원주민.
그 중의 대장(隊長)을 설다(Sirdar), 즉 지휘관이라 부름.
Base Camp를 Khumbu Icefall(洶洶口 17,600피트)에 정한 다음 빙하 원뿔대(illuvial truncated cone)를 거쳐 19,800피트 위에 제 1캠프, 눈 골짜기로 올라가 21,300피트에 제 2캠프, 이어 위태하게 눈이 쌓인 요지(凹地 U trough).
빙하가 갈라진 틈(crevasse)이 있는 이 현곡(懸谷 Hanging Valley)을 왼 쪽으로 보고 23,900피트 롯세의 남 쪽 얼굴(Lhotse Face)에 제 3캠프, 주봉 에베레스트의 눈이 미끌어져 쌓인 원형협곡(crique)을 왼 쪽으로 보면서 위로 오르기로 했다.
우리가 제 3캠프를 친 이 곳의 지형은 롯세 아래 남쪽으로서, 오른 편 빙식첨봉(氷蝕尖峰 horns) 눕체(Nuptse. 25,898피트. 7,769.4m)와 롯세(세계 4위 27,939피트)봉 사이의 비탈을 타고 올라가 26,200피트의 남 쪽 안부(鞍部)의 제 4캠프를 칠 곳에 이른 셈.
여기에서 1,400피트 더 올라갔다 지난 2001년에 포기하고 내려온 능선(aretes) 발코니(Balcony. 27,600피트)를 거쳐 기어코 주봉 에베레스트 첨봉(尖峰)에 페난트를 꼽았다.
그는 언제나 나를 앞 세운다. 나를 위해서이고, 역시 내 마음이 든든하다.
누구나 오르겠지만 고봉준령에 올랐던 쾌감.
우리가 이 산을 내려오다 내가 뒤돌아 그를 보며 "헤이, 필! 킬리만자로가 7개 등반에서 첫 번째였지"라자 그가 "어-어-(Uh-huh)"라며 마치 새로운 것이 아니란 듯이 대꾸한다.
"아니, 그냥 생각 중이야. ... 우리가 킬리만자로를 두 번 올랐섰던가? 아마도 다시 쭉 돌아봐야 할 것 같지?"
이에 그가 "수(Sue. 수잔의 애칭)! 그냥 걷기나 해(Just keep walking)."
사랑의 권리는 세상과 독립된 고통.
기쁨과 함께 우리의 움직임에서 떼어낼 수 없는 언행의 널판지 위에서 고통과 그네를 뜀.
행복의 올가즘과 고통의 쓴 맛.
고통과 행복은 서로 약혼자.
그리고리 Y. 라스프틴(Grigorii Yefimovich Rasputin. Dec. 16, 1916);
"사랑은 그대의 즐거움.-Love is your solace.
사랑은 그대의 우울.- Love is your melancholy.
사랑은 그대의 고통.- Love is your pain.
사랑의 기쁨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 The joy of love is given to all.
사랑에 대한 이 패러다임을 희한하게 여겨야지 이 사람의 도덕적 표준과 영적 결합은 다를 것이라 여겨짐.
상대편이 인고하는 것이지 사랑을 독점할 수 없는 것. 사랑은 보편적 당위, 신의 섭리, 세상 평화.
신의 섭리는 이 양계면(兩界面)의 경계선, 알키메데스 지렛목.-
Max Scheler. <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Fueblem und Cefuehle. p. 267, 628, 913-916
translated by Manfred S. (188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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