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Aleppo) 출신, 아랍 음유시인 아부알라알리알마리(Abu Ala Ali al-Ma'arri 973-1057).철학자이기도 함.
그는 무함마드 후계자들이 전통적 구전을 신봉하느냐 마냐로 수니파(Sunnite), 시아파(Shiites)로 박다드와 이집트 상호 증오로 번져 간신히 정복한 그 이스라엘에서 붕괴되면서 그들이 탈취한 예수의 무덤을 십자군에게 속절없이 뺐김을 보았음.
그 십자군 전쟁은 Mainz, 독일에서 시작.
유대인과 이들의 교회당을 모조리 없앰.
하지만 제 4차 원정단 중 하나도 살아 돌아온 군인이 없었음.
그 아부알라는 시리아에 돌 위에 돌 하나 없이 파괴되기 40년 전에 죽은 아랍사람.
이를 그가 예언:
이 땅의 두 부류의 사람들.
신앙이 없어보이는 두뇌층,
다른 쪽은 무뇌층의 신앙인
우리가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운명인 것 처럼,
깨어진 유리잔과 같아 결코 다시 합칠 수 없네.
이에 대하여 아랍인들이 "그는 장님이니까"라고 혹평.
사실 그는 어려서 아파 눈이 완전히 멀었음.
철학자인 그는 세상이 돌아감을 보고 비관론, 평화를 준다는 신앙에 회의를 품는 사람(skeptic)이었음.
그 후 아시스 프란시스(Francis of Assisi) 수사가 홀로 맨 발로 걸어 십자군에 의하여 정복당한 이집트의 방어거점 다미에타(Damietta)의 술탄 알카말(Al-Kamil)을 만나러 감.
평화협상.
그에 대한 크리스챤들의 반응은 '어리석은 미친 짓'이라고 평하는 사람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그를 '미련한 고집불통 당나귀'라고.
왜냐하면 그는 새와 이야기하고, 마당에 화초를 거꾸로 심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음유시인'이러고 불리워지기를 좋아했기 때문.
"그가 뿌리를 위로 하고 심은 그이기에 생각도 거꾸로"라고.
사람들이 그를 악평하는 이유는 그가 "전쟁이란 왕과 교황의 본분으로 부자가 되려는 욕구였지 영혼을 구원하려는 게 아니었고, 십자군은 무슬림을 개종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굴복시키려고 원정가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
그는 동료 수사들에게 "용서 없이 슬퍼 보이지 마라. 아니면 위선이거든."
그는 기여코 술탄을 만남(1219년).
그 곳에서 그는 "삶의 방식을 거꾸로 생각해야 평화가 온다고.
첫 생각의 반대 쪽에 위선이 없고 행복이 있기에 전통적 방법론적 규범인 그 고정관념 대신에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스리려 말아야 평화가 온다"고.
이는 노자 도덕경제 2장 말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이 크리스챤과 무슬림은 말을 나눴음. 칼은 없고.
타협은 나오지 않았고 서로의 말을 서로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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