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에 목동이 양을 지키면서 "늑대요!"를 외치자 동네사람들이 올라와 봤으나 천안함의 장비가 허술함을 알고 돌아들 갔지요.
그로부터 얼마있다 목동이 다시 "늑대요, 늑대요!"외치기에 주민들이 찾아와 보니 연평도에 불이 나고 목동이 들고 있는 작대기로 작은 불을 토닥토닥 끄지 못하고 양떼를 몰고 '어진 냇가'란 이름의 인천(仁川)으로 돌아 옵니다.
그가 다시 산에 올라 망대에서 내려다 보며 양떼를 지키고 있을 때, 정녕 이리, 늑대떼가 쳐들어 와 "늑대요, 늑대요, 늑대요!"라고 어지럽게 외쳐대도 진짜로 곧이 듣지 않아 마을사람들이 아예 올라오지 않을 수 있겠지요.
대저 사람이란 중론(衆論)이 많을 때는 대책이 나오지 않고, 배가 산으로 오른다는 장적(張籍)의 한 말이 있지요. 베풀만한 꾀가 없서 온갖 지혜 속에서도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쥐들의 '실용성이 없는 계책(계무소출計無所出)이라는 의미겠지요.
그런데(이 '그런데'가 중요하지요.) 대북정책은 북한을 늑대나 이리로 비유할 수 없고 야생마를 길들이는 로데오, 아니면 배고파 민가를 칩입한 스라소니를 길들이는 경우 중에서 로데오 게임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채칙과 꼴을 같이 써야할 겁니다요.
이 야생마로 비유하는 현실적 감각이야말로 북한이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유엔에 가입한 일개국의 형체(국체國體)를 제대로 본 것이요, 역시 남이(南怡) 장군이 "두만강 파도물 말 먹여 없애고, ..."랐다가 "남아 20대(代)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오"로 모함되어 죽는 경우도 나오겠지만,...
... 설령 군인의 종말이 남이장군, 이순신 장군같이 된다하드라도, 모름지기 국방담당하는 장성급이 살기를 원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로 싸우면 살 것이라는 우국충성으로 임해야 할 것이고, 정치지도자는 국민과 장병을 야생마의 발길에 채어 죽게 만들지 말고 이 것에게 적당한 꼴과 채칙으로 제 목숨을 살게 해줘야 하리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앞을 내다보고 살아야 한다는 한신(韓信)의 장계취계(將計取計)로 꼴을 먹이면서 욕설과 채칙질로 말을 노하게 하여 발광하는 그 야생마 사타구니로 빠져 나가 살아 남는 웃기는 짓 좀 하지 말고 말입니다.
좌우당간 국민에게 꾸민 시책을 펴지 말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솔직한 나라로 이끌어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