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시는 말씀이 역사인가, 신화인가? 불가한가, 확실성에 대한 증거가 있는가─어느 쪽인가? 현실적인가? 헌신─누구에게?, ...이던 간에 얻는 교훈이 큰 독자가 있으므로 준행하시는 일에 악플달지 말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저 다이아몬드나 금은 임자가 따로 있는 법.
댓글이 옳다, 그르다 함이 설령 되어도 비아냥은 금물입니다.
선열반님이 일생을 바친 생활관, 명철학, 재정의(再定義), 난해함, 경고, 안내에 대한 본보기 선포라 생각합니다.
선열반님은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이 열린마당에 계시는 분들처럼. 기도교인으로써 극단적으로 특정종교를 옹호를 하시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캘뱅은 자신의 생각을 선전, 권유하다 못해 그리스도교 강요(Institvtio Christ~.1536)를 출간했고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세르베우스를 화형에 처한 과오를 범했습니다. 물론 선열반님은 캘뱅과 비교할 수 없읍니다만 그러기에 원용하는 것입니다.
선열반님은 화두가 달라 촬수김님처럼 재밋게 써나가시는 분이 아니고 그러나 보스김님처럼 피하시는 분입니다.
아 왜 그 이런 적이 있다지요? 예전에 인상여와 장군 염파는 서로 사이가 않좋은데 직분이 염파 위에 올라 재상이 되자 한갓 말로서 도리어 자기 위에 오른 그에게 반드시 욕을 보이겠다고 벼르고 있자 상여가 이를 알고 그를 보면 피하고, 병을 핑개삼아 그를 피해 조정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상여의 집 식객이 다 부끄러워 하자 "내가 강한 진나라 군신을 욕보이는 외교술과 용맹한 명장 염파─우리 두 사람이 있기에 감히 우리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니 공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 하는 까닭이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러므로 공과 사는 분명하여 개인생각으로 쟁론으로 파당지을 수 없음에, 그렇다면 우리가 남의 눈의 티끌을 빼내려 말고 자신의 눈에 들보를 먼저 빼라는 주님의 말씀을 상고하면 열린마당에 티끌과 들보가 눈에 낀 분들 또한 기꺼히 모여들 것이 틀림없읍니다. 물론 선열반님을 인상여와 비교할 수 없겠지요. 그러하기에 들보란 수평방향의 대들보 같은 얹힘대를 원용합니다.
이런 그 치카라히지키(역주목)이란 들보가 없는 호오류절(법륭사절) 탑이나 눈에 들보될만한 자신의 단점이 없으려면 청백리 정치달인 아니면 관용스런 명인이라야만 할텐데 어디 이런 분들이 우리 세대에 찾을 수 있사오리까?
그저 마음 먹고 사는 곳이 외질지라도, 마음과 몸이 편하면 내 지낼 곳이라.─ 도연명.,심원지자편(心遠地自偏)일지라도, 백거이.,심진신중시귀처(心秦身中是歸處)라. 굳은 절개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면 그만이지 그저 둥글뭉글하게 남을 위해서도 글 올라오는 것만 보고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리라. 이런 심중으로 찾아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이 '그러나'가 중요합니다) 올리시는 내용에 경제정책에서 어느 누구편에 종속되시어 일어나는 파탄의 책임을 질 분이 아닌 냉철한 논술로 펼쳐 나가십니다. 이 분의 글에는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의 권위도 안중에 없고, 어느 대가 경제계인물에 편향하시지 않으시고 전세계의 이론가와 추종자들을 거론하시는 바 선열반님의 항로의 푯대는 한국을, 한국정치인, 이 보다도 한국인을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사애국승어애신(使愛國勝於愛身)하고, 사애국민승어위정(使愛國民勝於爲政)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