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가 근심걱정없이 함포고복에 태평성대를 원하지 않으리오. 그러나 전쟁이 나면 삼태기와 쟁기들고 총력전에 기우리는 법.
공맹(孔孟)하는 분이 성군(聖君)이라 부르는 그 태평성대의 요ㆍ순(堯舜) 임금도 선전포고했고, 천년역사 오현제(五賢帝)도 로마군대로 나라를 다스렸고, 오직 이 로마가 망함은 용병(傭兵mercenary), 납(연鉛)과 기독교이념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병, 독물(毒物)과 기독교이념에 헤어나지 못하고 김성일과 같은 안이한 생각에 사로 잡힌 전후세대에 통분을 감추지 못하겠노라.
"아서라, 예수님의 이념은 '카이샤의 것은 캬이샤의 것'¹일진져!"
나는 군인없는 나라를 본 적, 들은 적도 없다. 그렇다면 군사는 총검과 옷뱃지로 장식한 의장대가 아닐진데, 평화, 유화론자가 김성일과 외롭고 의로운 이순신 장군을 동시에 존경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노라.
이! 나는 안동김씨를 나무라지 않노라.
그 중에 학봉(鶴峯) 김성일 선생은 이퇴계의 문인이요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를 만나보고 오라는 선조의 명을 받고 일본을 다녀와 '안심할 수 있다'라고 상주한 도어사(都御史)였다.
그러나 그 해 임진년 1592년 4월(선조 25년)에 일본이 쳐들어 오자 선조대왕을 알현한 김성일에게 "경들과 몇년간【치도(治道)】를 논의하였는데 이렇게 난리가 났으니 피해야겠다"랄 적에 "굶어도 서울을 떠나시지 마셔야 2백년간 육성한 백성을 편하게 하실 수 있사옵니다"라며 간언한 분이었노라.
여기에서 선조대왕의 그 '다스리는 도(치도)'에 김성일은 보필해드리지 못함에 "저희들의 잘못이옵니다"라며 자리를 물러나지 않고 하도 울먹여 오히려 왕의 위로를 받은 대사헌 출신이노라.
다시 말해 그는 국방부장관과 대법원장직을 역임한 분으로써 국토방위의무와 죄인을 다스리는 제정법상의 죄인으로 그저 울 뿐 자결하지 않았노라. 이를 통탄하노라, 동상 촬수 림!
아우가 이 형(兄)아를 포함한 독자 제현에게 이조실록²을 보라고 추천했노라. 그렇다면 태종임금이 거북선 시험출항(出港)을 관전했노라 했음과 그 후 이순신이 초야에 신부 곁에서 물을 떠놓고 모형 거북선을 물에 띠우고 있섰음은 이순신이 골이 비어서였던가!
이 분의 《해군진영에서》라는 오언절구(五言絶句)를 보라. ─재해진영중(在海鎭營中), 속칭 '한가한 섬(한산도閑山島)'
나라의 운명을 한 몸에 짊어지고 보잘 것 없는 장비로 대적을 맞아 싸우는 장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찬 바람 이는 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나라 걱정에 뜬 눈으로 새우는 장군의 감회가 기우는 새벽 달빛이 활과 칼을 비출 때, 대적을 무찌르고도 남을 만한 기상이 샘솟아 올랐다!
고로 옛부터 겁이 많은 자는 쓸개 담(膽)이 작았노라 하였느니라.
주(註) ¹촬수 아우야 보거라. 국토방위는 네 착함과 별개다. 'Render therefore unto Caesar, the things which are Caesar's; and unto God the things that are God's. ─ Mathew 22:17,21. Mark 12:14,16,17. Luke 2:1. 20:22,24,25. 23:2. John 19:12,15. Acts of the Apostles 11:18. 17:7. 25:8,10,11,12,21. 26:32. 27:24. 28:19. Philippians 4:22 이로써 네가 좋아하는 반전론과 네가 좋아하는 성경에 '카이샤'의 직분이 다름이 23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