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다섯살. 양천 허씨 초희(楚姬).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字)는 경치를 보며 슬피 운다는 경번(景樊). '허엽(許曄)'이 재취한 여인에게서 낳은 딸이요 같은 배속에서 낳은 허균('홍길동' 저자)의 여섯살 위 누님.
그 나이 2ㆍ8청춘(열여섯살) 되기 전에 시집왔는데 공부하러 가는 서방은 과거에 응시하는 선비들의 모임터 '접(接)'에 간다 핑계하고 계집질에 빠진 놈 안동김씨 성립(誠立).
새색씨가 짤막한 글을 지어 서방(書房)에게 보냈다. 접(接)자에서 재(才)를 빼면 첩(妾)자가 된다.
"예전의 '접'에는 재방변(才)이 있더만, 지금의 접에는 재방변이 없구나."- 古之接有才(고지접유재), 今之接無才(금지접무재).
그러나 '부인의 앙탈을 들어주면 버릇이 된다'는 무책임한 사대부가들에 의해 여인이 겪어야만 했던 고독체념이 한(恨)이 되어 남편을 원망하는 100줄의 '규원가(閨怨歌)'를 쓰게 됬으니 이를 시로 표현한 규방문학의 대표적인 미학적 묘사라고 만은 할 수 없겠다. 글이 미학적일 뿐, 그녀가 스물 일곱살 적에 더 이상 이 세상에 살 가치가 없서, 어려서 꽃이 지는 꿈따라 식구들을 불러 모으고 '지금 나 죽는다'며 죽었으니.
『 엊그제 젊었더니 어찌 벌써 이렇게 다 늙어버렸는가? 어릴 적 즐겁게 지내던 일을 생각하니 말해야 헛되구나. 그 떼지어 다니는 술집에 새 기생이라도 나타났던 말인가? 집에만 있서 원근지리 모르는데 님 소식이야 더욱 알 수 있으랴. 겉으로는 인연을 끊었다지만 님에 대한 생각이야 어이 없을 것인가. 서러워하는 날이 지리하다, 규방 앞에 심은 매화 몇번이나 피었다 졌는고. 차라리 잠이 들어 꿈에나 님을 보려하니 바람과 지는 잎과 풀 속에서 무슨 벌레는 나와 무슨 일이 원수가 되어 내 애타는 잠마다 깨우는고? 세상이 애닳구나. 설운 사람 많다고 하려니와 운명이 기구한 여인아 나같은 이가 또 있을까? 네와 인연이 된다면 네 철천지 사연을 남새롬 들려다오. 아마도 내 님 탓으로 살동말동하여라. ...』
황진이와 그녀의 글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1711년 분다이(문대옥차랑文臺屋次郞)에 의해 일어로 간행된다.
이 《규원가》를 남동생으로 인한 올캐, 다시 말해 허균의 첩 무옥(巫玉)이가 지었다고 인조 때 시평가(詩評家) 홍만종(洪萬宗)이가 말하거나 말거나.
한살 더 많은 남편 꼬락서니라고는. 생김새와 집안을 생각하는 인품이 잘난 아내가 부담스러운게지.
《봄비》(한자와 한글로 지음)
『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찬 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 뜬 시름 못내 이겨 병풍에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어렸을 적에 허난설헌이 꿈에 달나라 궁전(월궁月宮)에 이르렀다. 월황(月皇)이 시에 억양을 맞춰 지라면서 운(韻)을 주기에 그녀가 몽유가(夢遊歌)를 지었다.
『 푸른 바닷물이 구슬바다에 스며들고-벽해침요해碧海浸瑤海 푸른 난새¹는 아롱진 난새와 머물렀구나.-청란의채란靑鸞倚彩鸞 부용빛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부용삼구염芙蓉三九染 달빛 서리 위에서 차겁기만 해라.-홍타월상한紅墮月霜寒』
그 이듬 해 아무런 병도 없섰는데 어느 날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 입더니 집안 사람들을 모으고 이르기를, ..
"올해가 바로 3ㆍ9수(數) (스물 일곱살)에 해당되니, 오늘 연꽃이 서리에 맞아 붉게 피었으니 내가 죽을 날이다. 내가 지은 시는 모두 불태워 없애버려 나처럼 시를 짓다 불행해지는 여인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하라"면서 한창 나이에 이승살이의 애련을 버리고 눈을 감았다. 선조 22년(1589년 3월 19일) 이 해에 그녀의 서방 김성립이가 과거에 급제한다.
김성립!?
암컷의 거시기에 쪽문이 열고 닫힌다?─천문개합(天門開閤) 첩질(첩과 오입질)이 다 뭔가? 함봐! 조강지처 죽여보네 놓고 무슨 경사났단 말이가? 세상에서 출세한다는 놈 치고 배필 없이 할 수 있겠느냐?─척제현람 능무자호 (滌除玄覽 能無雌乎?)
¹난새는 '따듯한 변방새(煖塞난새새)'. 송나라 계빈이라는 왕에게 잡혀 새장에 갖힌 새. 울지 않고 외로히 있기에 왕이 그 새에게 네 얼굴이나 쳐다 보라고 새장 앞에 거울을 달아 주었다. 그랬더니 새가 슬피 울며 거울을 향해 달려들어 부딪쳐 죽는다. 촬수 동상 조금 더 기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