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석조물을 쌓을 때 힘없고 무식하고 불쌍한 농부들을 몰고 가서 지었던 슬픔이 쌓인 돌뭉치였다.
문명이란 문물을 서로 나누자는 것인데 만리장성과 피라밋은 혼자 갖고 감추려는 축조물이었다.
시경(詩經) 당풍의 '너새의 한탄'. 하루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변방에 사는 불안한 유민. 난리때문에 부모를 봉양할 수 없는 세상을 한탄하며, 가기 싫은 전쟁터에 끌려가는 병사들의 억울함을 기러기의 울음소리로 비유하거나, 어느 노인(새옹;변방의 늙은이)이 자신의 팔자소관이 변화무쌍하여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에 유위전변(the mutation of life)을 <인간만사 새옹지마, 추참간중청우면;회회기>라 읊었지요. 거기에 왕정을 유지하려는 폭력정권하에서 비생산적인 만리장성을 쌓았지요.
유태계 독일인 카프카(Kafka;1924)가 징기스칸 군대가 지나간 자취의 항가리 집시(tzigane)의 노래를 들어 중국대장벽(Beim Bauder chinensischen Mauer[sic])이라 불렀는데 (전에 촬수동생에게 말한 바) 길이 6,400 ㎞.
먼 훗날 촬수가 시간이 나면 중국고대사, 서경, 시경, 주역,...을 읽게 되면 우리의 먼 선조가 고구려 쌍용총보다 더 크게 중국 한 복판에 피라밋보다 더 정교하게 쌓은 더 큰 수많은 피라밋을 알게 될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을 금지하고 하나씩 헐고 있음이 독일 탐사자들과 인공위성으로 감지되고 있음을 알것이다.
우리 선조가 중국인을 쌍놈(치한恥'漢')이라 부르고, 본토 중화족속들은 우리 선조를 '너희는 더 어리석은 놈들(치우蚩尤)', '미묘한 놈들(이夷)', '더러운 북방놈들(예맥穢貊)'. '기로(棄老)'는 우리민족 아니고 보시(布施)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棄老國)에서 망녕(치매)든 늙은이를 땅울타리를 만들어 가둬 놓은 설화를 일본인이 한국인 위상을 떨구려고 묘문화의 '고려장'이란 말을 날조한게지.
그 중화족과 처음에 요임금, 다음 순임금, 다음 건헌황제와 싸우다 싸우다 9번만에 북경지역 전투에서 지남철(자석)에 의해 말에 철갑을 입힌 우리 개마(鎧馬)철기군이 망한 것.
우리 선조 피라밋은 그렇다치고, 이 만리장성 장벽과 달리 로마시대에 대중교통수단으로 토목공사 승마가도(Appian Rotten Road), 오늘날 유럽 30개국을 연결하는 살라리아(Salaria), 프라미니아(Flaminia), 아우렐리아(Aurelia) 및 오스티엔시스(Ostiensis) 고속도로(Via publica)는 길이가 만리장벽보다 12배 반 길어 80,000 ㎞.
그리고 피라밋의 경우 폐쇄적이기에 들어가는 묘문을 열기에도 어렵고 부시기 어렵게 되어 있고, 밋밋한 정사면체 석벽으로 궁륭(archway), 도철(janus), 가퀴(battlement), 고리쇠못, 석축에 끼운 돌멩이 조각을 끼운 메지(gallet)가 없다. 즉, 철옹성이지 밝은 문명이 아닌 미스테리의 감옥무덤.
피라밋은 어둠이요 공개치 않으려는 한 번 쓰면 다시 못쓰는 붙박이 석축. 그 속에 생전에 생긴 그대로 부활할 왕, 왕후, 왕자, 공주의 미이라. 구약에 야곱과 요셉이 미이라화 되었다.
그런데 40일 거쳐 현왕(새로 등극한 왕)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미이라로 만들기 위해 향유, 향료, 역청, 유황,..으로 방부처리(embalming)하는데 염통, 간,..등 을 따로 떼어 내어 각각 별도의 항아리에 보관했다.
이 말은 이집트의 제사장은 태양신을 믿어 기대할만한 부활을 믿지 않기에 왕에게 선왕의 시신 항아리를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아니한다. 만리장성과 피라밋 축조에 부역된 일꾼들이 석재를 나르며 흉노족이 살던 만리장성 안팎의 석재를 끌고 지나간 자리마다, 이집트 피라밋용 석재를 끌고 갈 때마다 풀 한포기 남기지 않고 다 죽여 초원지대가 사막으로 변했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란 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자 보라! 지금 내몽고가 기갈을 면하는 것은 다행히 남서쪽 500 ㎞ 지점의 중국 5,547 m기련(지린)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흑하(Black River) 침니와 지하 암반을 타고 몽고에서 용출되기 때문이다.
자 시바(Sheba)의 여왕 궁터를 보라! 사우디 루발칼리(Rubalkhali) 황무지(Empty Quarter)에 여왕의 궁실 석주 잔재만 남았다. 석축공사를 흉내내다 망한 것일께다. 이유는 하늘과 땅의 연결고리인 초목을 죽이면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집트 피라밋 공사후 석재(石材) 지나간 곳과 오늘의 피라밋 기서를 보라. 풀 몇 포기나 살아 있나? 채석장이 아무데나 있나? 사방에서 어디든지 돌만 있으면 통나무 위에 올려 끌고 오니 사방의 초목이 말라 죽어 사막화를 가속화한 사하라 사막은 인간에 의한 재해였다. 그 엄청난 돌들.
자 보라! 전시효과를 노리는 사우스 다코다 검은 언덕(Black Hills)에 기념비적인 4인 대통령.-Shrine of Democracy, Mt. Rushmore Memorial. 조각가 보그럼(Borglum, G)이 화강암 산정에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테오도어 루즈벨트 그리고 에이브라함 링컨 상(像)을 60피트의 크기로 돌을 쪼아낼 때에 50만톤의 돌무더기 산사태(dilapidation). 우리가 보기에는 크지만 사실은 피라밋에 비교가 안되는, 100만불 드려 조그마한 쪼아냄에서도 50만톤!
그러니 이집트 피라밋 돌을 끌고 지나간 사하라 북동부 바리야(Al Bahriyah) 황금계곡이 폐허화되고 사막화됬다. 아스팔트, 다이너마이트, 착암기, 운반트럭, 기중기도 없는 그 시절에 그 무슨 삼각함수를 사용했음이 대수겠는가? 죽어간 노동자들 수효가 대수지.
관광안내원이 그 페허된 만리장성, 피라밋에서 관광수입 올리려고 선조들의 거대한 토목공사에 가진 양념치며 침발라 말하는 수작이겠지요.
촬수 동상 나 커피브렉 오케이? 이 댓글은 이 형아 책 '멸절의 문명' 페이지 130-132에서 옮겨온 것이야. 아직 내가 옮기고 페이스트하는 법을 몰라,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