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최'는 외국 문화, 종교를 맹으로 습용하기 보다는 우리 선조들의 가르침을 우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는 과연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생각과 같아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남명선생과 퇴계 선생님이 분명히 우리 조상들이시기에 남명 선생이 퇴계를 조롱함이 어쩜 한국적임에 동감하리라 믿어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퇴계 이황은 한 마디 하심에도 성의있게 말씀하시기 위해 초고를 작성하시고 종일 생각하시며 매우 사려깊으셨음을 였볼 수 있기에 알렉산더 최는 '자신이 붓가는대로 써나간다'는 성의와 다름을 엿볼 수 있겠습니다. 마치 베토벤이 처음에 '솔'로 작곡했다가 정정하기를 여서 일곱번만에 처음 '솔'음정으로 되돌아 오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과 정반대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 퇴계선생님이 제자들에게 답한 22편의 서한문체 자성록 서문에서 "...그 동안 옛 책장을 찾아서 보존되어 있는 원고들을 다시 베껴서 책상 위에 두고 때때로 열람하면서 여기에서 반성하기를 그치지 아니했읍니다."-도광순 역
그러나 1501년인가 같은 해에 출생한 그 조식 선생이 도학의 영수이면서 풍자와 비판으로 백성의 편에서 할 말을 쏟아낼 때 퇴계를 가리켜 "임금을 도울 수 있는 학문을 가졌다"고 평가해 주면서도 학자들이 물 뿌리고 청소하는 초등학문[소학小學]의 절차도 모르면서, 헛되이 천리(天理)를 논한다고 비평하는 편지를 보냈지요.
이에 퇴계 선생은 제자들에게 "부끄럽다. 남명이 우리를 비판한 말에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성하며 타일렀답니다.
이에 비추어 볼 때에 안타까워하는 김태준 교수(동국대)는 '문향(文香)'을 통하여 지금은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시대요 무거운 마음으로 퇴계와 남명의 (선비)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지요.
그 후 이율곡 선생이"진실로 뜻이 세워져 있지 아니하고 아는 것이 밝지 않으며 (행동이) 독실하지 아니하면 이로써 중인(하민)이 되는 것"이요, "(다른 이의) 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정밀하게 생각하여 완전히 흡수하여 그 뜻과 취지를 해석하여, 매양 글귀를 반드시 ...하지 않으면, (남의 글, 책은) 스스로 책이요, 나는 스스로 나니 어떠한 이익이 있으리오"라 말씀하셨지요.
그러므로 알렉산더 최가 남의 생각과 말을 대할 때에 싹슬이 비난하지 말고, 동의할 건 동의하고 비평할 건 비평하는 위에 말한 남명 조식의 마음새로 나왔으면 향기롭게 여긴다는 말씀을 올리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