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이 출세하기 전에 동문수학하다가 이율곡선생 밑에서 공부한 세살 윗터거리 유성룡이 승승장구 출세 가도를 달리며 뒤에 오는 순신이를 보고, "야 너 그 같은 덕수이씨 율곡 선생을 찾아 뵈어라!"했더니 "권력에 아첨하지마라."
사연은 어느 날 이율곡이 길을 지나가는데 병서(兵書)를 낭낭하게 읽는 자가 도대체 누구인가 기웃거려 알아 보니 이순신이었기에 유성룡에게 순신이가 자기를 찾아오게 해달라고 파발을 넣은 기회였겠지요.
이순신에게 늦게 겨우 찾아온 첫 벼슬은 서울에서 제일 먼 변방 함경도 동북쪽 동구비보 주둔지 권관이란 직책이었습니다. 빽(Back)이 있서야 말이지요. 뒤에서 밀어 줄만한 사람을 찾지 않고, 그럴 생각 또한 전혀 갖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눈 앞의 부모와 나라에 효도하고, 남은 힘으로 통치자 왕에게 충성을 다해도 빠지지 않는 다는 속마음'충심(衷心)'을 가진 분입니다.
그 누구, 어느 왕인가 리어왕을 보십시요! 두 딸(공주)들이 한결같이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 아버님(왕)을 사랑합니다"라 했으나 막내 코델리아의 한다는 소리는 고작 "효심으로 모실 뿐 남편(부마) 다음에요"랐다가 푸대접을 받게 됩니다요. 국토를 큰 애들에게 반씩 나누어줄 뿐, 막내는 프랑스로 시집갑니다.
그러나(이 '그러나'가 쓸만 합녜다) 그 리어왕이 백수건달이 되어 미쳐버리자, 찾아야 할 곳은, 애비를 구하려고 군사를 이끌고 영국으로 쳐들어 온 건 그 괘씸한 고놈이었서요. 할미꽃 백두옹(白頭翁) 이야기지요.
우리가 공감하는 다 아시는 사례가 있읍니다만, 장군은 죽이겠다는 왕명에 도대체 변해하거나 항명하지 않습니다.
단, 그가 '안타까운 사람'이라고 난중일기에 기록한 원균의 참소를 받아드린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지요. 비록 적군과 싸움을 피한 비겁자라는 누명을 감수한 것이지요.
선조대왕 역시 인간인지라 알랑살랑방구 뀌는 간신을 멀리 할 수 없섰습니다. (성군자격 없음.ㅎㅎㅎ 임진정유재란을 겪으며 수고하고, 비극의 광풍으로 평안도 의주로 몽진(도망)하며 족고(足苦)했다하여 '대왕'이라 껄붙여준 것,ㅋㅋㅋ)
이순신장군이 난중일기에 "김응서는 태어나지 말았서야 하고, 차라리 자결해야 한다"고 평한 전라도 좌병사 김응서와 내통한 '요시라'? 뭐시라?
요시라(要時羅)? 이 얼어 죽을 놈의 본명은 카케하시 시치다이후(제칠대천梯七大天)란 작자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휘하 칠호대장군의 하나인 고니시 유끼나가(소서행장小西行長)를 돕는 우리말을 잘 아는 통역이요, 우리나라에 파견된 문관 밀정(비밀요원)입지요.
비겁한 군인이라고 누명을 쓰게 된 바, 이에 분노한 선조가 이 장군을 참형할 것에 앞장. 그러나 장군의 불복종 이유는 이길 수 없이 변변한 배 한 척도 남기지 않고, 거북선을 포함하여 아군의 군선이 이미 다 격침되어 버리고, 군선을 제조하기 전에 뻔히 질 줄 알면서 울산, 동래에 요새를 쌓은 왜군의 항만으로 군사들과 함께 죽으러 가지 않은 전술을 선조대왕이 이 장군의 공격명령불복종죄로 죽이려든 겁니다.
장군은 지게된 곳에 절대로 들어가시지 않고 요지부동에 그들이 넓은 바다로 나와 한판 붙기를 원하십니다. 호로곡으로 죽으러 들어간 봉추 방통 전술과 달리 공격하라는 선조대왕(대왕? 개코가 선조대왕이지,ㅋㅋ)의 명에 불복했던 바요, 유성룡의 진언을 받아드려 겨우 목숨붙여 권율장군 밑으로 백의종군하러 가는데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사흘장을 치룰 수가 있서야지요! 그리고 진멸되가는 해군들과 군선들! 이순신을 살리겠다는 의지에는 선조대왕이 꼴째!ㅊㅊㅊ
그 때 '요시라'라는 왜군 밀정이 조선의 조정중신을 위하여 귓속말로 원균의 장계(조정에 올리는 글)를 예화로 들며 속닥속닥 반간계(反間計;왕과 충신을 이간시키는 병법)를 꿰하여 이 자의 술책에 그만 넘어간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