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무(魏武)가 병들자 아들 과(顆)에게 "내가 죽거들랑 이 첩(妾)을 개가시켜다오"라더니 막상 죽을 때에는 "나에게 순장(殉葬)시켜라"고 유언.
이에 그 아들은 아버지가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기로 결심.
작은 엄마를 사랑하는 이에게 시집을 보내드림.
그 후 진[秦晉]과의 싸움에서 두회(杜回)에게 쫓겨 도망할 때에 그가 개가시켜준 어머니의 친정 아버지가 풀을 매어 두회로 하여금 넘어지게 하여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야담.
이는 죽은 넋이라도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좌씨전>의 기록.
반면에 현종은 아들의 애첩 양귀비를 가로챘고, 투트모스 3세를 낳은 투트모스 1세의 딸이자 투트모세 2세의 왕비인 핫셉섯(Hatshpsut)은 투트모스 2세가 죽자 친 아들을 섭정하면서 밀어내고 20년간 파라오 행세를 하며 수양아들 세넨뭇(Senen-Mut)을 제일 가까운 정부로 두었고, ..
그 율브리너와 찰튼 헤스턴이 공동주연하는 영화에 이집트에 새로 즉위한 젊은 람세스 율브리너는 법속을 따라 선왕의 후비를 이어 받음.
누구는 죽어가면서 아내와 첫 사랑하던 독신에게 아내를 부탁함.
역시 사랑하기에 부인의 몸이 망가졌어도 받아들인 징기스칸.
징기스칸은 옹기라트 부족장의 딸 버르테와 연애결혼.
당시의 습속을 따라 처가살이. 그 집의 데릴사위가 된 것.
그러던 중 여인관계로 아버지 예수가이(Yeskai)가 독살당한 비보를 듣고 집으로 달려옴.
몇 년 후에 버르테를 데리고 케쿨렌강 상류에 머물고 있을 때에 메르키트(Merkits) 부족 300명의 습격을 받아, 자기 어머니 후엘른을 아버지가 약탈했던 과거사의 보복으로 버르테가 납치당해감.
이에 징기스칸은 아버지와 의형제였던 케레이트 부족 옹칸을 설득하고 자신의 의형제인 자모카의 군대까지 끌여들어 17세의 어린 나이로 공격하여 그 삼촌 탈구타이(Targutai)를 처형(AD 1188)하고 아내를 되찾아옴.
그런데 2년만에 구출해온 버르테의 뱃속에 적장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음.
곧 사내아이를 출산.
이에 징기스칸은 주저하지 않고 이 아이를 아들로 받아드리고 "우리 몽골인에게 손님처럼 다가온 아이"라며 "손님"(조치 Jochi, Juji, 출적朮赤)이라고 이름을 지음.
그래서 피다른 장남 조치를 장자로 삼고, 그리고 자가타이(Jagatai 찰합태察合台), 오고타이(Ogo- tai 와활태窩闊台. 1185-1241 제 2대 태종 13년), 톨루이(Tolui, Tule, Toluei 타뢰拖雷 1215-1232)를 낳고, ..
장남 조치는 알아타(Alata 斡兒朶), 바투(Batu 拔都), 체페(Chepe 昔班. 뒷날 페르시아 1218, 북부 인도, Kirghiz S.S.R. 정복, 1221~1223년에 러시아 공략), 타라첩목아(脫哈帖木兒)를 낳음.
태조 징기스칸의 아우 합단(哈丹).
그러나, 훗 날 징기스칸의 후계자 문제가 거론됐을 때 아버지가 다른 조치와 차남 자가타이가 아버지 보는 앞에서 몸싸움을 벌림.
이에 몽골의 샤먼이자 가족의 보호자격인 쿠쿠추의 만류와 징기스칸의 결단으로 조치와 그의 아들 바투가 서쪽 나라로 진격하여 새로운 땅을 개척할 것을 명령.
그 나라가 킵차크칸국.
킵차크칸國(금찰한국金察汗國)은 이칸국, 차가타이칸국, 오고타이 칸국 중 하나.
그리고 징기스칸 자신은 아내를 데리고 전투.
중국에서 반군 금국(金國 Chin), 서하(西夏 Hsi-Hsia)를 물리치고 북송(北宋) 공략(1225). 2년 후 영토화.
그 해 겨울의 공략 중에 병을 얻어 Gansu Shule 강가에서 죽음(1227년 12월 27일).
그는 아내와 어렸을 적에 피난가서 같이 살던 Burkan-Kaldum 山 어딘가에 비밀히 묻혀짐.
그 곳은 아내만 아는 곳. 한편 우리나라 고려는 1234년에 공격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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