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만 목사는 '스스로를 불태워 새 사람, 새 시대를 열어가는 사도 바울, 로지폴 소나무의 창조적 파괴의 지혜'를 강조.- <스스로 불 지르는 '로지폴' 숲> 한국일보 1-30-16 A9
그러나 설교 예화로 든 로지폴 소나무 생리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예술가 미켈란제로, 베토벤, 베르디처럼 역사와 과학의 프레임(frame)에 맞는 작품을 내어놓아야 하지 않을가?
그 베르디 오페라, 이스라엘을 점령한 열 아홉살 나부스코(느부카넷잘) 딸 중에 히브리 청년 이스마엘과 연애할만한 아비게일(Avigaille), 페네나(Fenena).
이 역의 프리마돈나는 베르디와 동거 15년 후에 아내가 될 주잡페나(Giuseppina. 'joozappena').
극 중에 거짓이 판명되어 독약을 마시고 페네나에게 용서를 빌며:
"수 메 ... 모렌테 ... 에사니메. - 나에게 ... 죽음이 ... 어지러워."
이와 같이 '이탈리아 국민의 음악가'도 情부를 극 중에서 죽일 정도로 시대적 배경에 정직하다.
그런데 김목사가 근거로 삼은 그 로지폴 소나무(lodgepole pine)를 공격하는 송충이와 또 다른 딱정벌레의 생활사에 대하여 아직 연구 중에 있는 프란소아 테스트(Francois Teste) 논문에 그 소나무는 스스로 불을 질러 새 싹을 낸다고 오해, 확대해석하며 이 사람도 과거가 불태워져야 새 사람이 된다는 아날로그(유추類推)로 억설을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예화로 든 포도나무든, 아니면 장미, 매화이든 새로 나온 가지에 꽃을 피운다.
그래야 하기에 냉혹하게 가지치기를 해도 원줄기, 원기둥을 반드시 남기는 것.
그 난해한, 구속사의 신비는 대목(臺木)과 접붙일 가지가 다 필요한 것.- 로마서 11:17-24
이와 같이, 그 새 사람이란 눈 부비고 다시 볼 사람이란 뜻이지, 불에 구어져야 동령(同齡)의 숲을 이룬다는 예수님 논리가 아님을 모르고 배화교 조로아스타교리를 닮은 신파조 전투태세 강론.
그 두꺼운 나무껍질에 탄닌이 많아 불에 잘 타지 않는 2~3천년 사는 삼(杉) 세쿼이아.
송진이 많은 그 로지폴 소나무.- Pinus contorta murrayana. Tamarack(타마락)
이 로지폴 소나무의 자연수령은 200년. 길면 500-600년.
씨앗이 불을 만나 싹을 튀운 것이 아니라 물을 만나 껍질이 열어(開匣)지는 것.
발아에 5~10년 늦깍이 씨앗이지 '스스로 불 지르는 소나무'가 아님.
임업시험장, 인삼 농가에 두꺼운 껍질의 호도, 측백, 인삼씨와 모래를 섞어 물을 주며 싹을 띄우고 있음.
역시 4,700년 사는 '롱계바(longaeva)' 소나무(古松. Ancient Pine)와 수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창만 목사는 새로운 '해체구축(解體構築)'의 의미를 모르고, 대중의 무지에 호소하는 소견을 신문에 올리는 데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는 바임.
자신의 억지를 모르고, 대신에 대중을 무식한 사람으로 다루지 않기를 바라면서.
............................................................................................................... dkp 1-3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