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에 주의원 리셉션에 참석한 그가 가만히 보니 치장한 한 여인의 의상에 관심.
註: 마치 '마담 모팽', '살로메'를 흑백으로 묘사한 화가 오브리 비즐리(Aubrey Beardsley. 1872-'98))가 小듀마의 '동백아가씨(Camille)'를 비단 옷으로 몸을 거의 감춘 모습으로 그려준 것 처럼,
비즐리는 마크 트웨인의 작품에 삽화를 그려주었음.
마크 트웨인은 그녀를 누구라고 밝히지 않고.
<A FASHION ITEM 사교계의 유행 아이템>에서,
'G. C. 부인'은;
패션적으로 옷을 입는다. 그녀의 무늬 없는 분홍색 공단. 변화를 주기 위해 질질 끄는, 내 말은 즉슨, 2~3야드의 길이.
간혹 그녀를 보는 사람은 그녀의 옷이 신부 옷자락처럼 끌려가는 걸 본다.
옷깃을 낮게 그리고 모나게 자르고 엉겨붙은 주름진 레이스 소매.
그 C부인은 역시 그녀의 천을 비스듬히 재단, 그리고 가슴을 조이는 하얀 보디스(bodice).
목 아래에는 보이지 않게 넣은 손수건.
하얀 장갑 일습.
목덜미와 터진 어깨로 빛이 반사되어 눈에 얼픗 띄는 진주 목걸이.
그녀의 머리칼은 덤불처럼 말려있게한 다음에 귀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다음에 오무려 나무 그루터기처럼, 벨빗 껑거리끈으로, 거기서 급각도로 위 쪽으로 풍신하게 올려 처녀들처럼 머리 위 쪽으로 올려 묶었음.
그녀는 고운 피부. 처음에 올 때는 그랬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은 퇴색.
하지만 영원히 그 고움이 없서진 건 아니고 나는 내 어깨 넘어로 그녀 자태의 거의 모든 걸 보고나서 (나는
그녀가 여러 사람의 틈새를 비집고 나올 때, 문 옆에 서 있섰다.)
그 곳에 많은 숙녀들이 있섰지만 나는 그녀의 복식을 예로 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나는 표본에 대하여 공정한 평가를 내림을 즐겁게 생각하면서, ..
마크 트웨인은 7인치x9½인치 크기에 851페이지 분량의 작품을 남깁니다.그가 남긴 그 수많은 명구 중에 'sign과 상징, 그리고 보증한다는 그 무슨 말이라 할지라도 화석화된 실체를 놓고 노름하는 행위'라고.- 미씨씨피의 삶(1883) 50
지난 1971년, 제임스 조지 오윌스(Eayrs)는 그의 저서 <외교적 권모술수와 그 불만들(Diplomacy and Its Discontents). p. 121>에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단지 운(韻)이 바뀔뿐(History does not repeat itself, but it rhymes)'이란 자기 말을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인용했다고 할 정도의 마크 트웨인의 명성.
사실 마크 트웨인 자신도 살았을 때에 명성을 얻은 드문 작가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말했다. "화가 나면 말하기 전에 열을 세라. 만약에 화가 몹씨 나면 100을 세라(1825).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화가 나면 넷을 세라. 그래도 화가 나면 벌받을 소리하라!"(1894)
아담은 사과를 사과로서 원한 게 아니다. 까닭은 그 것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이다.(1894)
註: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나는 미켈란제로와 식사를 같이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점식 식사도, 만찬도, 한 잔의 차도, 저녁 식사도, 간식도.(1869)
당신은 마크 트웨인이 쓴 <톰소야의 모험>을 읽지 않고는 나를 모른다.
그러나 상관 없다. 그 책은 마크 트웨인씨가 주로 사실을 말했다.
거기에는 그가 확대한 사물들이 있는데, 주로 사실을 말한 것.(1884)
註: 마크 트웨인(Mark Twain)은 예명. 본명은 Samuel Langhorne(랑혼) Clemence(1835-1910)
.....................................................................................................감사합니다. dkp 올림. 7-2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