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해!
빈익빈. 부익부.- 없는 자는 더 가난해지고 가진 자는 더 가지게 됨.
"나눠달라고 울부짖어야 함!", "적선!", "시혜를 베풀어 주십시요!"
직장, 기술을 연수하게 해주고 아스파라가스도 안 먹을테니 궁핍, 질병으로부터 최소한의 치유와 휴식을 취할 최소의 복지를 요구해야 함이 최선책.
물론 그 가난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며 그 가난한 정도의 차이가 많을 것.
흔히 가정형편을 쉽게 고소득층, 중산층, 저소득층으로 나누지만, 실질적으로는 빈곤층에도 빈곤, 빈빈곤, 빈빈곤곤, 홈리스들.
여기에서 피라밋 구조처럼 자연철학적으로 당연히 세분화된 연화(衍化) 현상에서 편성편쇠(偏盛偏衰), 부익부 빈익빈 격차를 포괄인정하는 평형상태를 민주평화라고 할 것이며, 그 형편에 무관하게 1인1표 선거제도를 꾸려나감이 금수와 다른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자유민주라 할 것임.
그러므로 재산에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1인1표를 던지는 참정권은 민주주의 시혜제도임을 안다면 없는 자가 있는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강압이 아니고 시혜를 청함일 것이다.
균점권, 동등권 휙득을 목적으로 한 강압은 남들이 근면하게 살 권리와 부요한 행복의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
이에 따라 그 대권도전 입후보자는 만약에 자신이 당선된다면 숫자로 얼마가 필요하기에 세금을 얼마큼 올리겠다든지 말겠다든지 밝혀주는 정견이 포함되어 국가중흥과 국방 및 빈곤층을 위한 정책으로 가난한 이들이 혜택받는 정부, 못난 자식보다 나라가 낫다고 감사하는 상식이 깔리도록 하면 좋을 성싶다.
다시 말하여 베푸는 자는 정부이든, 기부자이든 베풀은 자신, 재물과 수혜자를 잊음이 아가페적 삼륜청정(三輪淸淨), 받은 자는 준자, 물건 즉, 이 두가지 은혜는 죽은 넋이라도 잊지 않고 갚는 결초보은(結草報恩)스러운 당연한 예(禮)의 문화생활에 익숙됨이 옳다고 하겠음.
여기에 플라톤의 말을 재론할 필요도 없이 곤궁에 처했을 때에 그 처한 사람도, 그 곤궁한 경우는 자랑이 아님을 알아 구조요청을 공손히 해야 함.
비유된 예화를 들면, 성서, 불경, 사서삼경의 대화록은 인용해도 괜찮을 성 싶기에;
이방인 시리아-페니키아(a Gentile of Syrophoenician) 여인.
그 여인이 병에 걸린 딸이 있기에 만능의 탈란트를 가진 주님께 자기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계속 간청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자신의 자녀를 만족시켜야 합니다. 자녀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자 그 여인이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지만 식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어린 자녀의 빵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옆 집에서도 모르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 신앙이 없서도 참석하고 가난, 고통을 호소하는 표현, 청원을 겸손히 해야 함. 가난하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며, 그 뭣도 없고 모르는 자가 큰 소리 칠 처지는 절대로 없는 권도의 이 세상.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여 절대로 남에게 손 안 벌리다 안쓰럽게 굶어 죽는 백색 쉬추, 주인보다도 새(birds)만 쳐다보는 프랑스 브레톤 지방 스패니엘(브리타니, brittany/epagneul(애팡엘) breton)도 있습니다. 항상 슬픈 얼굴.
그 구호용 식량카드(food stamps)를 타먹는 사람과 안 타먹고 죽어가는 두 경우를 사회적 양비론(兩非論)으로 싸잡는 것도 해법이 아닐 성 싶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님이 '그렇게 말하니, 가십시요. 악귀가 당신의 딸에게서 나갔습니다'라시기에 집에 가보니 어린아이는 침대에 누워 있고 병은 나아 있섰습니다.-마가 7:25-30
만약에, 이 여인이 아무 소청도 하지 않으면 삶의 패배자, 언더독(undrdog).
그렇다고 아이를 병구완할대로 하고 나서 하느님에게 요청할 능력이 없음.
또는 우연히 선지자가 가난한 과부를 만나 먹어도 줄지 않는 기적을 받을 운수도 없섰을 겁니다.
선지자 엘리사 제자 중의 하나가 죽자 과부가 된 그 여인이 가난하여 두 아이를 채주(債主)에게 종으로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이에 그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으며 도움을 청하여 가진 것이 기름 한 병뿐임을 알고 온 동네에서 빈 병을 빌려오게 한 다음 모두 기름이 채워지겠끔 기적을 베풀고 그 기름을 팔아 채무를 갚게 해줍니다.-열왕기 하 4:1-7
그러나(이 '그러나'가 중요함) 능력이 있는 분에게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며 공산이론으로 따지며 재물을 나눠달라고 빈정댄 경우:
강철왕 카네기가 뉴욕 필하모니 협회에 보조금(subvention)을 매년 6만불씩 줄 때에도 꼼꼼히 따졌는데, 어느 날 사회주의를 열열히 신봉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논리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부의 공평한 나눔의 원리를 강조합니다.
이에 카네기가 비서를 시켜 자신의 자산을 세계인구로 나눈 값이 몇 달라인가 계산하라고 시켜 비서가 얼마라고 말하자 '그럼 그 돈을 이 신사에게 주시요'라고 지시했음.
그 액수는 16센트.
그 플라톤이 일찌기 활동력에서 인간은 다 같이 공평하지는 않다고 말했잖습니까? 심각한 말입니다.
미국의 교도소, 갱생원, 매춘굴을 둘러본 그 프랑스 알렉세 톡벨(Alexis Tocqueville) 역시 재산에 있서서 만민은 동등하지 않다고, ..
태어날 때부터 보모에게 비단으로 감싸져 자장가 듣고, 첫 숫가락이 은수저인 아이와 동등하지는 않겠지요. 가진 자를 조상 탓, 질투만 하지 말고 인정하는 마음이 있서야 화해에 좋을 겁니다.
정치를 잘못해 세금을 혹독하게 뜯어가기에 부자는 세금을 내고도 먹을 게 있지만, 가난한 이는 먹을 것이 없게된 유럽 봉건시대의 가렴주구(苛斂誅求).
이 시대에 '적선합시요!', '통찰하십시요!'라면 벌 받던 시절.
그 덴막이 영국을 지배하던 시절 덴막 햄릿왕자 전설, 그리고 11세기 영국 머샤백작(1st Earl of Mercia) 레오프렉(Leofric)의 아내인 고디바[Godiva. 고우다이버, 'go-di-va', 'go-de-va', Godgifu. 'god'yivoo']가 남편에게 덴막에서 거두어가는 주민의 세금을 줄여주겠다면 벌거벗고 말을 타고 저자 거리에 나설 용의가 있다는 농담이 진담이 됬다던 전설이라든지,
동북아 봉건주의 사회에서도 인권이 무시되고 세금을 혹독히 뜯어가 산으로 숨은 가족 이야기.
공자가 태산 옆으로 지나가는데 무덤에서 너무나 근심에 쌓여 슬피 곡하는 여인이 있기에 자로 (子路)를 시켜 그 사연을 알아본즉, '전에 시아버님이 호랑이한테 물려가셨고, 제 남편도 또 죽었고, 이제 아들이 또 죽었습니다'라기에 '그럼 왜 이 산골을 떠나지 않는가'라고 물으니 '혹독한 정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
이와 같아 공자가 제자들에게 '빈익빈되게 하는 포악한 정치는 범보다 무섭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고 예기(禮記)에 수록됨.
이 여인의 가족이 관공서에게 세금을 감면해달라고 청원하면 몽둥이[곤장]로 매맞을 것이 뻔한 시절.
많이 좋아진 지금의 세월이 이 정도니 그 옛날의 못된 정치상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올림 7-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