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 2말, 한창 열받는 대입준비를 하는데 아무개 이명복(가명)은 숙대 3년생과 별채에서 동거한다기에 '야 ─ 너는 좋겠다!'
그가 재학 중 성적이 top 10에 들지는 못했지만 한양공대 건축관 뒷 동네에 동거하더니 결석이 잦아지다 그여코 그 여대생을 증오하여 헤어지고 Sung大에 다닌 줄로 앎.
뚝섬 경마장 마사회에 다니시는 그의 아버지가 그 직장과 가까운 곳에 아들의 공부방을 잡아주신 것.
그런데 잉꼬부부같은 그들이 헤어지다니?
사랑이 있기에 그 증오라는 말이 있을 것.
'증오'란 '옹하고 복수하는 고양이'.
발이 많이 달린 지네같이 가증(detestation)스러운 경우가 아니라, 사랑했기에 옹하다 튜토니안 복수가 따르는 컨셉트, hatred가 이에 적합하다고 할까.
원래 그 '증(憎)'이란 '구멍 뚫린 사랑에 미워하는 김이 시루에서 모락모락 오르듯, 보이지 않는 복수심이 휘날린다'는 의미. '미워하는 마음이 깊어졌다'라고나 할까.
사랑해본 적이 결코 없을 때에는 증오란 말을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옥스퍼드를 나온 사람 중에서 시인이자 비평가인 아들 매쉬 아놀드(Matthew Arnold. 1822-'88)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 세속을 평가(eddy)하고 먹고 마시고 지꺼리고 속이라도 빼줄듯 깊숙이 사랑하다가 한없이 hate(증오)한다'고.
가정교사인 여대생이 그를 유혹했다고. "야 너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