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는 눈, 이에는 이. 구약의 복수 윤리.
나는 그 출애급기(21:24), 레위기(24:20)에 써있는 이 말에 많은 흥미가 있다.우리나라 고조선 8조법금에도 '살인자사(殺人者死). 살인한 자는 죽인다'는 법규.
이로서 북한의 공격에 맞설 사거리 500km 공대지 타우러스 미사일 200발을 F-15K 전투기에 장착할 150억원을 배정했다니 말이다.
그 히틀러 치하의 선전장관 괴벨스(Goebbels) 역시 기원전 4세기 때부터 중부 유럽 튜턴(Teuton) 민족이 '죽인자는 죽는다'란 튜터니안 충성, 기사도 정신을 같은 독일민족에게 고취시켰기에.-- "Vom(으로부터) Kaiserhof(제국왕정) zur(~의) Reichskanzlei(제국의 집무실)". p. 251
그 초정통파 유대교 '눈에는 눈(An Eye For An Eye)'.
그들 탈무드에 법규 229의 해석은 '어느 건축업자가 집을 지었는데 허물어져 그 집 딸이 죽었으면 건축업자의 딸을 죽인다.'
이로써 범죄자의 눈이 나를 노릴까 봐 탈무드 랍비는 재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기에 그 규정을 폐기시키려고 했지만(Bava kamma 84a), 치명(致命)적 사고는 별개라는 것.
결국 tefillin (양피지. phylacteris)에 기록된 그 이해할 수 없는 좁은 범위의 동태복수(同態復讐) 논리는 성서적이라고 결론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