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허 참으로 거창!) 아무리 생존경쟁에 자본주의 사회라 하지만, 눈치껏 말해야지 정도를 지나치면 안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이 삶의 바른 길이 뭔지 모르지만 제가 살아가면서 필요하다면 이미 있는 말을 옮겨봄이 건방지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사는 날까지 공부, 평생 인격도야. 남을 인정하는 자세.
그러므로써 나 자신이 비록 어느 누구를 짓밟을 수 있다손 치드라도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자중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믿습니다.
물론 대인관계 예법에서 절대적인 규칙이 뭔진 몰라도, 필요하다면 그 범주의 윤리적 가치가 뭔지 학자의 다음과 같은 의미를 인용해 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서로사이에 생각과 예의를 보살핌에 긴장감, 명예훼손, 대립저항하는 항의댓글이 많겠지만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면서도 그 견해차이를 정반합 변증법적으로 화이부동하려는 널뛰기와 비슷하다고 여깁니다.
그 널뛰기에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쪽이 올라가는 널 받침 지렛목을 알키메데스 점:点이라 했구만요.-대도강정. '말쿠스 쉐라의 무슨 책 267쪽'
저는 이 말뜻을 마음에 와 닿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아시안 전통속어로 비유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에 두 번 말씀 올린, 오수부동:五獸不動이라고 비록 호랑이와 사자가 그렇게 잘난 체하다가도 한 울에 닭, 개, 사자, 호랑이와 고양이가 모이면 꺼려하는 상대가 있기에 만만하게 잡아먹을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눈치를 보고 무서워한 나머지 서로가 가볍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인 줄로 믿습니다.
저는 생태계의 이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무생물계 천체물리학적인 균형상태에 대하여 인용해와도 저를 건방지게 여기시지 않을꺼라고 믿습니다.
저희 서로 가깝게도 멀리도 할 수 없는 고상(grace)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원칙이 있지는 않나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뭡니까요? 잘 아시는 라그랑지안, 칭동점(秤動点. Lagrangian point)이란 단어를 제가 읽었습니다.
두 천체사이에 무거운 별이 작은 별을 당기는 인력이 있지만 멀리 떨어지려는 원심력과 균형을 맞추는 지점에 있는 물체는 정지한 상태랍니다.
우리가 자연계를 떠나 살 수 없다면, 이와 같이 자연현상계에서도 상대를 인정하는 법칙이 있을진데, 우리가 비록 가냘프고 보잘 것 없서 강한 자에게 멀리 있으려할 때에 악착같이 쫒아가서 쥐어박으려 하지 않는 자태가 좋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열린마당에 올려진 그 어느 누가 있서, 목회자라 하여도 사랑이 있서야 하고, 비록 바름에 의로움을 정상참작하는 법관이 있다 하드라도, 남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분이 있다하드라도, 비록 그의 올바름, 아픔이 있다 하드라도 너그러운 사랑이 없으면 안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그 아무리 각축전 열린마당일지라도, 우리 중의 그 누구가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믿을 수 없다고 자격을 의심하는 자기 저울과 잣대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출신을 밝히지 않는데, 우리 각자의 출신성분을 추적하여 학벌을 까발치는 '선열반', '빈칸'의 자세는 <<그 이름만 6바라밀을 거친 부처 '선열반', '있음'을 위해 마음을 비운 '빈칸(허공)'>> 처신임을 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