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홍길동. 그가 도적떼에게 초대 받으면서 만약에 자기에게 들여온 밥 속에 돌이 있으면 다 죽여버린다고 엄포 놓았다.
그러나 홍길동이 돌을 깨물었기에 그 도적 두목이 아연실색한 까닭은 부하들이 쌀을 켜질하고도 못 믿겠기에 낱알을 하나 하나 뉘와 돌을 골라내고 지은 쌀밥이었다.
제 외조부님 말씀에 의하면 홍길동이 자기 옷소매에 돌을 넣고 그 초대연에 참석했기 때문이라신다. 할려고 하면 하게 되는 법. 내가 총이 있서도 당하기 쉬운 법.
그 얼마후 도적떼들을 조련시킨 후 홍길동이 악질로 소문난 어느 대감부부가 펴고 잠자는 요를 훔쳐가겠다고 미리 알려주게 했다.
그러자 사흘밤을 횃불을 밝히고 관졸들이 야경을 돌며 불침번을 세웠으나 오질 않자 나흘 째 되는 밤에 홍길동이 안방으로 들어가 대감 부부 사이에 끼어 들어 누어 좌우로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여 부부를 요 밖으로 굴러낸 후 뽑아 가지고 나왔단다. 그 때 포졸들은 코를 골며 골아떨어졌기 때문에 갸놈들 상투를 서로 묶어 놓았다.
갸들 도둑이 하려고만 마음 먹으면 우리가 당해낼 도리가 없다.
다음은 모(某) 건설회사 림사장의 도둑놈 이야기.
양정고가 있는 아현동고개. 그 산마루에서 왼 쪽을 보면 마포, 서쪽을 보면 이대로 넘어가는 굴레방다리, 뒷쪽 서울역 쪽에는 보이진 않지만 박통이 혁명전단지를 인쇄한 균명고등학교 아래로 광명인쇄소, 그리고 앞 서소문을 내려다 보면 측우소 그리고 서울고등학교가 보인다.
이 아현동 고개에서 도적 두목이 드디어 정보를 포착하고 부하에게 "저기, 지게를 걸러메고 가는데 그 지게에 실려있는 관상대 시계를 훔쳐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 돈을 두둑이 주어 내려 보내어 그 표준시계 시가의 다섯 배로 흥정하고 지불한 후 그 돈을 두목이 훔쳤다.
할려고 하면 못 당한다니까.
그 중국역사에서 '도둑의 샘(도천盜泉)' 이야기 말고, 왕희지 난정필적이 도난당한 적이 있섰다.
당명황[후일 현종]이 경서를 간행하는 집현전 설치, 상아탑을 궁정으로 끌어 온 여정서원을 세워 중당(中唐) 예풍(藝風. classicalism)이 찬란한 시기에 학사원에 왕희지와 그의 아들 헌지의 붓글씨 이왕첩 각본을 걸어두었는데 어느 날 감쪽같이 없서졌습니다(AD 710 경).
이 걸 찾아내는데 한 2백 여년 걸렸을 겁니다(AD 946경).
후일에 알고 보니 그 필적이 빙빙 돌아 글안과 합세한 석경당 석진에게 넘어가고, 글안의 야율선덕이 석진을 멸망시키면서 뺏어오고 정주로 달아날 때 가지고 갔답니다. 그 후 이 것이 어디로 간지 모릅니다. 그처럼 보물스러우면 일부종사가 어렵다 하겠습니다.
까닭은 주도면밀한 대부분의 도적은 분업하여 사전답사, 매복, 내부자 포섭 등 풍부한 시간과 판공비[거마비]를 투자하고 이익을 배분하기 때문.
까닭에 작정하고 꼭 도둑질하는 도적을 막으려는 총기류와 성경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은 오월동주(吳越同舟. Butskellism)란 말을 이제 말해도 사족이 되는겁니까?
권총과 성경을 같이 지니고 걸어가는 행위는 얼굴에 철판 깔고 사사로운을 없애는 철면무사(鐵面無私)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