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이 댓글을 말끔히 세탁해 버리고 원글만 정갈하게 올리기에 난감하여 이렇게 따로 글을 올리는 수 밖에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다.
까닭은 공시성이 있서야 할 이 열린마당에서 댓글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정부 공문서처럼 일방적으로 통고, 공시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자신이 올린 글을 없애버리기에 더 더욱 그렇다고 여겨진다.
나는 어느 사람을 매사에 싫어하지 않는다.
오직 그 다르게 느껴진 경우에만 그 사람의 의견에 보충, 반대할 권리와 해당된 글에 대해 촌평하지 그 사람 전체를 곤혹스럽게 하지 않을 공번된 탕탕한 의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 열린마당에서 상대편이 댓글내용 없는 쌍욕을 주저없이 즐길 때는 그 사람이 자신의 좋은 품성을 쉽게 놓치는 저질이라고 의심하기에 자중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예를 들어 오늘 선열반이 <댓쪽같은 예수님, 꾸부정한 부처님>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으나 제목과 달리 오히려 그의 주장이 빳빳하고, 예화가 꾸부정하기에, 내 댓글이 지워질 줄을 짐작했지만, 역시 지워졌지만, 그가 올린 제목이 좋다 싶어 다음과 같이 그의 생각을 토의든 토론의 형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나누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의 제목 <댓쪽같은 예수님, 꾸부정한 부처님>(註. 벌써 지웠음)이라고 비유ㆍ가정한다면 이 가정을 엎어버리지 말고 결론이 나와야 하는 줄로 아는데, 십자가에 매달려 예수님이 댓쪽같지 않고 "이 사람들을 용서하소서"란 성서적 인용으로 결론 맺음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노자 도덕경이라 불리워지는 책 45장에 "참으로 잘 하는 것은 서툴러 보이고, ~,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처럼 보인다"는 구절이 있음에 대하여;
역시 "늙고 꾸부정한 소나무의 일생을 살다"가신 석가여래라 비유묘사했다면 구태여 이 도덕경 45장을 인용하여 '비어있는 듯이 보이는 지혜', '세상의 고민하는 보따리' 이야기를 하는 것은 능히 불법으로 설명해도 족함을 모르는 정돈되지 않은 지식을 나타냄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스님이 돼지고기 먹나?
석가여래가 행복론을 설법하시다가 어느 잔치집에서 돼지고기를 잡수시고 탈이 나셨다고 말했는데, 설법 중이 아니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80세 되시던 어느 날 왕사성Rajagriha castle을 향한] 여행도중에 [바사리Vaisali라는 고장에서], 잔치집이 아니라 대장쟁이 '순타(Chunda)'가 고양한 음식에 식중독이 나신 것이고, 부처님이 '돼지'고기를 드신게 아니었다.-졸따 79쪽
이로써 식중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 보시로 얻어 온 주발에 담긴 고양을 골라먹기 시작한 먹을꺼리 법식이 확립된다. 이 법문이 알렉산더 수하 미앤더 장군을 불자로 회두시킨 나가세나 스님이 남긴 '미란다파나'.
그리고 연대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반야심경이 처음 나왔고 최고의 지혜에 관해 서술한 금강경, 천수경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을 먼저 읽고 반야심경을 읽어보라는 권유는 어디까지나 점수(漸修)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