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의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그럼 10만불 준다.
그런데 응모자 결선질문인 "당신이 그렇게 당신의 생활에 만족하는데, 왜 나의 돈[상금]이 필요한가"에 대답을 못해 결국은 아무도 타가지 못했다는 <펌>이 폴이 던진 본문내용.
폴의 옮긴 이 글은 삐죽거리며 사람 옆구리를 폭폭 찌르는 짓(curl the lips and jog)이랄 수 있고, 마음맞는 사람끼리 사는 이교시대(heather-days)에 종교가 같은 자기 부인만 사랑하는 애처가(uxoriousness)를 만인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랄 수 없는 법.
내 [답]
머릿글:우선, 내가 폴의 댓글칸에 댓글을 달지 않고 이렇게 따로 글을 올리는 까닭은 이 것에 만족해서이다. 그리고 천천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빨리 쓰려다가 실수하느니 보다는 천천히 써 내려가야 내 실력에 비추어 만족하기 때문.
1. 만족도라는 것은 실증나기 직전의 상태. 그러므로 돈 10만불 상금을 받아도 내가 실증나지 않고 만족하게 여긴다고 답할 것.
그가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불만족이란는 건 삶의 목적을 익히고 가치관에 회의를 느낄 때부터 삶의 우환으로 찾아오기에 천진난만한 갖난아이에게 불만족이란 게 없기에 천진난만하다는 게고, 앎이 병의 시작이라며 소식(동파)이 '인생식자, 유환시작, 모사재인, 성사재천'이란 동북아시아인의 생각을 대변해줬다고 보충설명할 것.-Man proposes, God disposes.
2. 행복이라는 것을 흔히 소유한 것을 욕구로 나눈 것이라고 하는 바, 행복은 만족에 있다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안빈낙도에 이르는 좌우명.
평안감사도 내 싫으면 그만이다는 속담이 있듯이 가진 것과 욕심내는 분깃이 같다면 이 사람은 평안감사로 부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자와 분모가 같기에 그 값은 1, 즉 1이라는 분수는 만족도 100 %.
따라서 나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새겨들었기 때문. 졸따 564쪽. 2005년판
부요의 경시벽(floccinaucinihilipilification)의 공식(F)=
(자산 + 심신의 건강) x 감사하는 만족도 ÷ (노여움 x 물욕)
이 공식은 인간미와 자연미를 겯들여보려고 노력한 이 dkp 공식이었다.
까닭은 행복스런 만족도라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지이기 때문. 그런데 돈은 내 두 번째 좋아하는 거라고 답변할 것.
3. 다시 말해 만족한다는 걸 묻는 것 자체가 정답이 없는 것이요, 답을 대려면 녹비에 가로왈자로 우문우답해야 정답이기에, 이현령 비현령으로 답해야 결국은 그 10만불 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
예화 ♬1. 실증직전까지 만족이라고 대답할 것. 이런 대답에도 만족하지 않는다면 넌덜머리, 실증나게 만족할만하게 해서 왕비가 된 여인이 세헤라자데 이야기를 보충할 것.-Scheherasade
전에도 야기했지만 '마가마 하룬王'에게 끝나지 않는 긴 이야기를 해주는 여인을 왕비로 삼겠다는 공고가 나가자 결국은 이야기 끝에 "퐁당퐁당" 소리를 쉬지 얺게 왕에게 들려줌으로서 실증나게 난좃시켜줬기에 왕비로 책봉됬다는 천일야화.-Magamah Harunar Rashid
그 퐁당퐁당은 무자게 많은 나그네 쥐들의 행렬 중에 물로 첨벙첨벙 뛰어내린다는 의성어. 그 쥐는 북유럽~놀웨이 쥐새끼(lemming)들의 수 없이 많은 군단.
예화 ♪2. 도대체 대수롭지 않은 괴로움을 떨쳐내면 그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할 것
전에 로마교황이 40일간 딸꾹질이 그치지 않은 적이 있섰는데, "내 딸꾹질만 고쳐주면 달라는대로 뭐든지 다 준다"는 D총리 부인이 있섰다.
의사들이 못 고쳐줬는데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처럼, 어느 사람이 그녀의 발을 서너차례 아프게 밟아줬더니 그 딸꾹질을 고쳐줬다. 물론 그 총리부인이 만족하여 돈 10만불 이상 수가로 받은 건 분명하고. 졸따 597쪽
예화 ♩3. 만족감이란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요, 사슴가죽에 쓴 날일자를 옆으로 당기면 가로왈자가 된다라고 답할 것.
로렌스가 지은 <차타레이 부인>이 외설죄로 걸리자 10만권을 찍어낸 펭귄사 역시 검찰에 불리어 갔는데 그 판금이 해제된 이유는 외설작품검열법을 초안한 입법가의 감증과 고전문법여학교 여교수의 변호에 이 작품이 외설적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나의 지도 하에 여학생들에게 만족하게 읽힐만 하다"는 감정인의 소견이 나왔기 때문.
즉, 외설적인 소설이 예술적 장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다. 이 여교수는 Jones, Sarah Beryl, Classics Mistress at Keishley Girl's Grammar School. 졸따 632쪽
따라서 폴리가 계속 일정한 기독교 방향으로 나의 절반(moiety), 나의 숙명(moira)이라는 듯 야기하는 걸 보면 과연 그에게 무지개송어(rainbow trouts)를 잡겠끔 안내한 그 안내자의 디딤돌(stepping stone)이 무슨 종파인지 매우 흥미롭다는 것.
내가 분명히 접고 넘어가고 싶은 말은 봉쇄적인 사람이 어떻게 성서를 제대로 해석하는 조심스러운 전달자가 될 수 있는지 기이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