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이 늦은 사람만이 아니고, 삶을 관조하지 못한 사람을 톨스토이가 늦깍이라고 말한 것 같음.
그가 엮은 글 중의 주인공 부부 <엘리아스(Elias)>와 그의 아내 삼세마기(Sham-Shemagi).
그들은 우파 러시아, 바쉬콜토스탄 공화국 농부. - Ufa Russia, Bashkortostan
이들 부부는 돈 벌려고 48년에 걸쳐 열심히 노력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반질반질하게 닦으며,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답답하면 일꾼에게도, 부부간에도 까랑까랑하게 소리지르며 살아 왔다.
그의 글을 읽으며 생각나는 것은, 비교하자면 욥의 ¼정도의 재물, 1,200마리 양, 말 200마리, 150마리의 소를 키우게 된 부자.
엘리아스 부부는, 그들의 집을 찾아온 손님을 위해 어느 날은 두 마리 양을 잡은 적도 있고, 암소를 잡아 대접한 적도 있기에 착하다는 소문이 자자함.
그러나 이 것이 그들이 찾던 행복이 아님을 50년 후에 알게 됨.
그들이 낳은 2남1녀 중에 장남은 밖에서 말다툼 끝에 죽고, 집 안이 기울정도로 재산을 넘겨준 차남은 제 멋대로 구는 여인을 만나 먼 나라로 이민가버렸고, 딸은 죽었다.
그리고 가축에 전염병이 돌고, 키르기스(Kirghiz) 떼거리들이 말들을 노략해가는 바람에 일시에 거지가 되어버린 셈.
註. 흔히들 부자가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지만 그 부부에게는 맞지 않는 말.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다정다감한 그들이 졸지에 망한 것이 안타까워 그의 이웃 중에 평범하게 사는 '모하메드-사(Muhammad-Shah)'가 자기 일을 돌보며 같이 살자고 하여 이들이 그의 집에 앉혀 살게 됨.
그 어느 날, 모하메드-사의 집에 친척과 회교도 율법선생(Mullah)이 방문.
그들이 삼세마기가 만든 젖술(kumis, kumys)을 모금할 적에 칠십대 노인네 엘리아스가 그들 옆을 지나가자 모하메드-사가 '누가 지나간 것 봤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뭐 별 볼 일 있는 사람이라고 묻는 거냐?"
"아 - 그의 이름이 엘리아스. 소문으로 들었을 텐데."
"그래? 소문이 널리 퍼져 아는데, 본 적은 없지."
'지금 그는 재산을 다 날렸서.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 그의 아내가 젖을 짜고'라자 그들이 혀를 끌끌 찬다.
이에 그가 말을 계속하기를 '행운은 바퀴 돌듯, 한 쪽이 들리면 다른 쪽이 내려오듯 하는데 엘리아스는 그 잃어버린 재물에 마음을 아파하지 않고 조용히 평화스럽게 살고 있서. 그리고 일도 잘 해.'
이 말에 손님으로 온 그들이 부자였을 때가 가난해졌을 때만 행복하지 못했다는 그 엘리아스롤 보잔다.
그러자 엘리아스가 자기 대신에 아내가 답하도록 했다.
커튼 뒤에서 그녀가 '그와 나는 50년간 행복을 찾았는데 얻지 못했다가 이 즈음, 지난 2년동안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죠. 우리 부부는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을 원하지 않아요.'
'그럼 그 행복이란 뭡니까?'라고 묻자 그 삼세마기는 '우리가 부자로서 한창 바쁠 때는 서로 이야기할 짬이 없섰고 달이 떴는지 별이 떴는지, 영혼에 대해서도 무감각이었고 기도하는 것 자체도 생각 없이 가진 재물을 관리하고 누가 훔쳐가지 않나에 신경을 쓰니라고 서로 짜증을 내었지요. 온 생각은 재물 늘리는게 전부.
이제 드디어 우리 부부 사이의 시간의 여유가 행복이란 걸 알았죠.'
이 대답에 손님들이 웃자 엘리아스가 '웃지들 마시요. 농담이 아닙니다. 삶의 질에 대한 진리, 자신을 달래는 말이 아니지요.'
이 말을 듣고 율법선생이 '엘리아스는 경전에 쓰인대로 진리를 말한 현명한 대답입니다'라자 좌중이 웃음을 거두고 엄숙해집니다. - Leo Tolstoy. R. Nesbit Bain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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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우리가 살면서 욕심내지 않고 짜증내지 않는 마음이 행복하다는 산상수훈을 생각나게 합니다.
사람이 만든 종파를 떠나서, 물론 '내가 있서야 인심을 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기록되기를,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는 이유는 덕(德)으로서 마음이 넓어져 몸이 평안해지기 때문(심광체반心廣體胖)이라지만 돈 버는데 열중하다 보면 덕을 닦을 겨를이 없기에, 곳간을 채워 인심을 내는 쪽으로 사는 대속, 보상의 삶이었을 겁니다.
따라서 마음이 정결한 자는 땅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본문의 의미일 겁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가 시간 여유가 있다는 말은 게으름이 아니며, 죽을래야 죽을 시간도 없다는 말은 긴장된 일중독이지 행복한 기간이 아니고 '곡굉이 침지라도 낙역재기중'이란 의미는 무소유의 가난뱅이가 예스럽지 않게 체념하는 넉두리가 아닐 겁니다.
....................................................................................................................... 감사합니다. dkp 올림 6-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