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습니다. 결혼생활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부부라는 두 사람이며,
동시에 같이 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부부의 어느
한쪽이 혼자의 生을 살았을 때에는 자기 혼자 만의
의지로써 원하는 길을 찾아 갈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이
다른 혼자만의 두 사람이 한 공동생활을 營爲(영위)하는데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 극장무대에 선
이들 둘은 하나의 대사를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었일까요?
여기에 무었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좌우하는가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있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혼자 살던, 누구와
섞여 살던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에서 결정된
사고의 '패턴'
에 따라 自動的(자동적)으로
움직이는 機械(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이 많고 지식이
풍부하면 당면한 현안문제의 핵심을 곧바로 파악하고
새로운 인식의 과정을 거쳐서 새 사람이 되기를
시도하겠지요? 그러면서 두 배우가
필요로 하는 한 '시나리오'
에 近似(근사)한 생각을
하게되며 어떤 공통된 두 사람의 협력이 가능해 집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이유로 해서 두 사람이 탄 한 배가 현실의 험한 풍랑을 같이 일관되게
헤쳐 나갈 수 없는 지경이 되겠지요. 큰 파도와 거친
바람 속에서 서로의 잘못을 들먹이며 싸우고 헤어질
수가 있읍니까? 이들은 이미 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일기가 화창할 때를 기다리면서 항해도를 다시 살피고 서로가 맡은 일을 협조해야만
궁국적으로 안전한 항구에 정박하겠읍니다. 그 때 가서 어떻게
해보든지...
그 항해도가 바로
인간의 心性(심성)을 이해하는 능력과 현실에 발을 디딘 생활의 知慧(지혜)라고 할 수 있읍니다.
상대가 이런
준비가 않됐으면 가르쳐야 하고,
자신이 사람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과정을 엉뚱한 이혼이니 고압적 자세로써 상대에게 요구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두 사람의
입장에 맞게 변화시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나는
봅니다.
矯角殺牛(교각살우)하는
愚(우)를 범해서는 않되겠지요? 다시 말해서 소뿔을 바로 잡고자 하다가 소를 죽이는 어리석음이 있어서는 않됩니다요. 두 항해자는
준비가 않된채로 항해를 시작했다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潛在意識(잠재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라는 점을 看過(간과) 했다고 말할 수가 있읍니다. 부인이나 자신은
이런 개인적인 해결이 않된 미비점을 안고 있으면서,
상대가 자기를
위하여 살아 달라고 주장하고 있오이다. 공동생활에는
분업이 있으니,
분업의 叢化(총화)가
한 가정이 되지 않겠읍니까? 어느 한 쪽에
이런 자동기계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이것을
그대로 용납하던지, 아니면 문제된 부분을 재정비 강화하는 수선을 하도록 해야
하겠지요?
나는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해서 우리 가정에 필요한 생필품을 물어온다. 그러하니 內者(내자)도
집안의 일을 철저히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만일 집사람이
혼자서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면,
밖의 사람이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겠오? 나만의 시간을
뺐게 하는 가정의 혼란을 말로만 집사람에게 지시한다고
그 사람이 해낼 수 있겠오?
아내가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가의 원인인 그녀의 無意識 (무의식) 속에
숨겨진 과거의 어떤 요인을 이해하여야 하며,
만일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경험이 이 사람을 형성했다면 그것에서
해방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뭐냐? 그 自動機械(자동기계)를
분해하여 내부에서 방해하는 문제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윤활유를 적절한 곳에 발라주어야 다시 원상의 기계로
원활한 성능을 발휘할 수가 있겠오이다.
누가 나서서 그런
원인이 무었이고,
어떻게 수선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며 어떤이도
그럴 능력과 자격이 갖추어져 있지 않오이다. 남편이 험한
인생의 大洋(대양)에 배를 띄워서 한 가족을 태웠으면, 그 책임은 그
선장에게 있읍니다.
이런 어려운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또 준비를 하지 않았었다면,
지금이라도 재정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풍랑이 심하니
나만 살겠다고 고무보트를 내려서 도망해서 될 일이 아니지요. 거듭 말하는데,
潛在意識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意志(의지)에 反(반)하여 내 입과 몸이 옛날에 설정된 '
쏘푸트 웨어'
에 따라 원하지
않는 길로 우리를 끌고 간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그래서 "
내 뜻대로 인가,
아니면 宿命(숙명)인가"
를 묻는 것이며,
내 뜻대로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宿命을 흔히
"내팔자야!"
라고 체념합니다. 우리는 이를 그냥
받아들여서는 않됩니다.
내 意志를 섞어서
사는 知慧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은,
이런 해결이
불가능한 곳에 등대불이 비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 남을
사랑하라"
라는 교훈입니다. 古來(고래)의 성현들이
앞다투어 우리에게 말하는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내 글의 남자
주인공이 그런 여자를 데리고 지금 까지 살아온 그의
어려움과 현재의 의연한 자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나 혼자만 살려고
하는 者(자)에게는 반드시 같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오. 이기적인 인간의
속성과 거기서 만들어진 과거의 쇠사슬에 묶여있다는
말씀이오. 내가
이런데 하물며 나의 동반자는 어떻겠읍니까? 그래서 佛家(불가)에서는
" 인생은
苦(고)" 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묶인 죄인이로소이다. 이 죄를 회개하여야 비로소 새 사람과 새 가정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부란 metaphor(비유)는 한 가정의 두사람 만의 문제가 아님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홀어머니까지 낀 세 사람들, 더 나아가서 한 공통체, 예로써 100se.net 같은 모임의 문제에서 생각해볼 소재가 될 수 있지요. 여기 모인 모두가 자신의 自動機械(자동기계)인 잠재의식을 수시로 점검해서 시간과 장소에 걸맞는 새사람이 돼야 한다는거... 그걸 말씀들이는 바요. 세월은 많이 흘렀는데 옛날 생각에 쩔어서 남과 세상을 보는 데는 많은 誤差(오차)를 경험하게 됨은 당연한 귀결이 되겠지요. 안경도 매일 닦아주고, 마구 돌아다닌 신발도 가끔 바꿔주어야 하드시,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제 맛을 맛보게 됩니다요. 아니라 고집하면 할 수 없고...
禪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