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말하면 심리학자들은 '행복의 눈물(tears of happiness)'이란 없다고.
행복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일이 해결되어 긴장이 풀리자 눈물나옴을 억제할 수 없었던 것.
행복한 결말(happy endings)에 우는 여인은 그 동안 참았던 자제력에 기분이 나빠서.
슬픔과 즐거움의 쌍곡선.
이 순간을 위한 만남.
적어도 약간의 쓴 맛.
그러나 슬픔과 기쁨의 쌍곡선은 절대로 만나지 않음.
그 <동백 아가씨>, 또는 해피 엔딩에 눈물 흘리는 걸 보면 이해한다는 의미로 가만히 있거나, '그럴 수 있서'라고 말하는 것보다 소프트 티슈를 건너주며 '그럴꺼야'라고 동감하는 태도가 좋을 것 같음.
그리고, 여인이 올가즘에 도달하자 울음을 터뜨리면 남편이 '왜 우냐'고 묻지만 답다운 답을 얻어내든 못 얻어내든 남편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일.
지금 만나고 다시 헤어질 경우가 아니라면 행복에 찬 결말에 슬픔은 더 이상 자랑이 아니 것.
"왜 울어?!"
" ㆍㆍㆍ "
"좋은 데 왜 울어?"
" ㆍㆍㆍ " (대답은 없고 울다 웃는다.)
"당신 그 거 몰라? 울다 웃으면 또ㅇ구멍에 털 난데!"
"ㆍㆍ, 흑흑 흐흐. 나 몰라!"
"알았서! 됐서!"- Eureka(유레카)!
그러나 남자가 그렇게 여인과 말을 나누는 것보다 소프트 티슈를 건네주면서 '알았서'라면서 일단 중지하고 다음 기회로 미루는 태도가 좋을 것 같음.
여인이 싫어하면서 남자의 청을 들어주지만, 하나 하나 조용히 동의를 얻어가며 사랑하는 태도가 좋을 것 같음.
마치 술을 마시고 주정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곱게 술을 마시며 취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남녀관계는 무작정보다는 조용히 의논하며 진행할 일.
ㆍㆍㆍ
물론 세상 삶에 기쁨보다 슬픔이 많고, 웃을 일보다 울만한 짜증스러운 일들이 더 많음.
초상을 만나도 눈물샘이 막힌 그 늙은 상주는 문상객 앞에서 "애고(哀苦)!, 애고(哀告)!, 애곡(哀哭)!"하며. 말로 끝내줌. 차라리 엄중히 가만히 서 있기나 할 일이지.
사람은 불행, 슬픔, 재해, 오랜 참음으로 인한 타격(hard-hit)에도 이를 이겨내려는 한 수 높은 욕구, 능력(one-upsㆍmanship)이 있는 것.
인생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 각자의 최후, 마지막 판.
그러기에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억지로라도 웃고 돈을 주고 배우더라도, 희극을 즐겨 봐서라도 유머스럽게 살아야 함.
웃으면 복이 와요.
한 번 웃으면 β(베타) 엔돌핀, 도파민이 분비되어 아픔도 덜어지고 쾌감이 생기고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젊어지면 그 만큼 무병장수.
..........................................David Feldman: <Imponderables> 27th story. p. 79-80, 1987. ^-^ dkp 1-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