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다가 육이오 동란에 피난 따라가 수원에서 석달간 울엄마가 보지빵 장사를 하신 적이 있다.
아버님도 전쟁에 나가시고, ..
우선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시장가에 방 한칸을 얻고 고운 밀가루 물반죽에 막걸리를 붓고 치대기쳐 그 항아리를 이불로 쌓아 하루밤을 묵히면 쉰네가 나면서 반죽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른다.
그 항아리의 냄새맡고 날아 온 초파리를 쫓는 저에게 '초파리가 와야 반죽이 잘 뜨는게 아니라 잘 떳기에 파리가 모여 든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에게 "이 빵 이름이 뭐에요?"
그러나 암 대답 않하신다.
그 반죽을 인계동 시장으로 퍼가지고 가 개천 옆에 터 한 자리를 잡고 손으로 만두피처럼 빵피하고 가운데 된 팥죽을 넣고 빵모양으로 동그스름하게 한 다음에 됫박이마 빵 머리에 칼로 금을 하나 긋고 수증기로 쪄내면 영락없이 째진 김나는 보지빵이 된다.
어느 날 저는 그 일자로 금을 긋는 대신에 십자가를 그었더니 드디어 제 빵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손님이 나타났습니다.
"애야! 이 빵 이름이 뭐냐?" "예-'보지빵입니다."
"댓기놈. 국민학생이 함부로 보지빵이 다 뭐냐?"
그 날로 어머님은 자판을 걷우시고 9ㆍ28 서울 환도 때까지 동동구리무 장사를 하셨다가 아버님이 되돌아 오시자 남창동 신세계 백화점 바로 옆 골목 중국가게 옆에서 그 전처럼 비단장사를 다시 계속하셨지요.
그 사이 어머님이 우리에게 '여자로 태어나 난리를 만났으면 도둑질과 몸 파는 것 빼놓고는 뭐든지 일해 밥을 먹여야 한다'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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