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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앙카레 우주는 낙지문어 생김새
글쓴이 : dkp 날짜 : 2012-08-04 (토) 11:40 조회 : 2180

이 dkp가 푸앙카레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이 우주는 낙지ㆍ문어같이 생겼다.
단, 낙지는 콧대롱이 나왔기에 이 우주는 문어같이 생겼다.

그러나 발이 하나 잘라진 모양.

즉, 둥근 문어 대가리에 일곱발 달린 모양.

발가락 한 개가 잘리워져도 통증을 모르는 환지감(幻肢感. phantom limb)의 자연경관의 조화.

일찌기 그 푸앙카레는 이 우주의 생김새에 대해 예언했다. 

'닫힌 다양체로서, 이 것은 3차원구와 위상동형이다"-Every simply connected, closed manifolded is homomorphic to the 3 sphere.

이른바 푸앙카레(Poincare;1854-1912)의 '알파요 오메가 추측'.

처음이자 끝? 천지창조와 마지막 날, 묵시록 1:8?

태어남과 정신병? 부분이 싫으면 전체가 꼴도 보기 싫다! 생사람이 생정신병자?

삶과 죽음, 제 정신과 헛[넉]나감, 다 똑같다? 맘고생을 말라? 

푸앙카레는 이 예언을 남기고 4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이 추측풀이에 100만불의 상금. 

그런데 인터넷상에 괴이한 소문이 나돌았다. 이 푸앙카레 추측이 증명됬다는 것.

(또) 그런데 그 추측을 증명한 그리샤 페렐망 박사는 사라져 나타나질 않고 상금도, 수학상도 받으러 오질 않는다.

그 전에 리차드 해밀턴교수가 Ricci Flow 방정식을 이용하면 기하학 추측과 푸앙카레 추측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섰다.

페렐망박사는 26세로 뉴욕 쿠란수리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지난 1994년에 난제 중의 난제인 소울 추측(Soul conjection)을 증명한 후 그 Ricci Flow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동료들에게 묻곤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미국에 머물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 해 1995년 러시아 상트페데스부르크에 있는 스테클로프 연구소로 돌아가고 만다.

그 원인제공자인 푸앙카레가 죽은지 70년 후 코넬대학교 교수 윌리암 서스턴박사는 가능한 우주의 모양은 8가지 기본형의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기하학적 추측(geometrization conjection)을 발표했다.

서스틴 박사가 발표한 8개 중에 하나가 공(球), 나머지 7개는 밧줄을 회수할 수 없는 도넛과 비슷한 형태라는 가설을 내어놓은 것.

밧줄이란 말은 그 푸앙카레가 '한 없이 긴 실을 가지고 지구를 한 바퀴 돈다면 결국은 처음 제자리로 돌아와 실을 매 놓은 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주를 향해 들어갈 때 처음 이 지구로 돌아온다면 우주는 둥글다는 것이고, 못 돌아오면 도넛모양'이라고 말했던 것.

이에 대해 입체적인 모양을 찾으려고 나는 그리스 신화적 괴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 머리속의 온갓 동식물, 기하학적인 선인장 모양을 그리면서, ~~

제가 중학교 때에 이 우주의 모양이 럭비공같이 생겼을 꺼라고 아인슈타인 생각을 포함하여 4 페이지에 걸쳐 쓴 글을 물상선생에게 보여드렸더니 시꾼둥하시더라고, ~

제가 고등학교 경제학시간에 경기변동, 특히 경제공황 순환에 대해 제본스의 태양흑점설은 점성술같이 유치하여 허위라고 말했다가 혼 줄이 난 적이 있습니다. 

아침을 morning이라 하는 걸 알면서 어느 영시를 읽으니까 운을 맞추기 위해 morn이라 쓰인 걸 보고 이렇게 썼더니 영어선생이 틀렸다 하기에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섰습니다. 

마치 케큘레가 그 당시까지 난제로 여기던 벤젠구조식에 대해 벤젠분자 구조가 뱀 여섯마리가 한 놈이 앞놈의 꼬리를 물고 이 놈은 또 그 앞의 놈을 물며 걸러큼씩 2중결합으로 6각형이 나온다는 서몽을 경험한 것과는 전혀 차이가 나기에, .. 그야 저야 새발의 피지만. ㅋ

심심풀이로 이 우주의 생김새를 상상하자면 럭비공같이 생긴 낙지(대가리)가 일곱개 발을 꼬부리고 있는 전체 모양이란 말입니다.

Perseus가 목을 친 medusa 124모양도 아니고, 다람쥐가 나오는 북구신화에서 뿌리 셋 달린 978'우주의 나무'(Tree of Universe) 모양도 아니고 말입니다. ㅋ


sunny 2012-08-10 (금)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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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01
  • 해양 생물종 일반정보
학명 Octopus minor이름 낙지
영명 Whiparm octopus일명 
중명 방언 
한글 일반명 영어 일반명 
한글 유사어 석어, 소팔초어영어 유사어 
포획 허용
계통 분류
Animalia
동물계
Mollusca
연체동물문
Cephalopoda
두족강
Octopoda
문어목
Octopodidae
문어과
Octopus
Octopus minor
낙지
나만의도감 추가
  • 연근해(유영연체) 정보
분포 중국, 한국, 일본, 사할린
서식지 연안의 저서성 종으로 조간대~150m 의 펄에 서식한다.
형태 몸은 가늘고 길며, 완은 몸에 비하여 매우 가늘고 길다. 외투장이 외투폭보다 길며 몸통은 난원형을 이루며 뒤끝은 약간 뾰족하나 끝은 예리하지 않고 둥글다. 완장식은 부등장으로서 1>2>3이며, 솔막은 A>B>C>D>E이다. 제1완 사이(A)는 제6흡반 쌍까지 이르며, 제1완은 다른 완에 비하여 현저히 길고 굵다. 제1완이 특히 길어 전장의 85%를 차지한다.
산란 5~6월이 산란성기로 팔의 내부에 난을 낳는다.
성장 체장 약 70cm까지 성장
몸길이 전장 440.5mm, 외투장 53.8mm
참고문헌 한국연근해 유용연체동물도감
GIS정보 전연안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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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04
학명 Paroctopus dofleini이름 문어
영명 North Pacific giant octopus, Giant Pacific octopus일명 
중명 방언 
한글 일반명 영어 일반명 
한글 유사어 대문어, 대팔초어, 팔대어, 물낙지영어 유사어 
포획 허용
계통 분류
Animalia
동물계
Mollusca
연체동물문
Cephalopoda
두족강
Octopoda
문어목
Octopodidae
문어과
Paroctopus
Paroctopus dofleini
문어
나만의도감 추가
  • 연근해(유영연체) 정보
분포 중국해, 한국, 일본, 알류산열도,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북태평양
서식지 연안 저서성 종으로 아조대~50m 의 바위틈이나 구멍에 서식하고, 서식수온은 4~23℃, 최적수온은 15℃ 이하임.
형태 전장 3m에 달하는 대형종으로 외투막은 난원형이며, 외투장이 외투폭보다 약간 큰 정도이다. 표피는 부드럽고 늘어나 있어 주름이 잡힌다. 솔막은 없어서 제4완간 솔막은 중간에 이른다. 누두는 원추형이고, 누두기는 W자형이다. 눈은 작고 안상돌기는 3~4개 있다. 완의 흡반은 기부에서는 1열로 배열을 하고 그 외에는 2열이다.
산란 산란기는 봄~여름, 산란수온은 5~15℃, 산란성 수심 40~60m, 교미기는 11~12월, 포란수는 10만개 전후, 산란수는 5만개 전후, 난경 8.0×2.5mm, 생물학적 최소형은 체중 15kg 전후.
성장 1년어 체중은 0.12~0.13kg, 2년어 1~5kg, 3년어 10~20kg으로 성장
먹이 갑각류, 어류 탐식으로 다식성이다.
수명 3~4년, 암컷은 산란후 약 6개월간 알을 보호하고 그 후 사망
참고문헌 한국연근해 유용연체동물도감
비고 동해안, 남해안에서 채집.
이미지 Paroctopus dofle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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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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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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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12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커다란 원의 표면을 기어가고 있는 개미는 자신이 걷는 길이 평면인지 구면인지 모르지만 파리의 경우는 다르다. 2차원적인 평면에서 벗어나 3차원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슈피로는 수학, 물리학, 경제학, 재정학 등의 다양한 과목을 공부한 저널리스트이다. 푸엥카레의 추측이 대수적 위상수학으로 물리학에 상당 부분을 기대있는 것을 보면 저자의 약력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저자보다도 책을 번역한 전대호의 약력은 더욱 궁금하다. 그는 물리학 전공,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땄다.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것을 보니 그가 서문에 기록한 글들이 이해가 된다.


"대규모 집단과 거창한 장비와 화려한 조명과 대중의 환호와 정책적인 지원으로 범접할 수 없는 한 개인의 자유, 한 정신의 맑은 흐름을 생각할수록 페렐만과 푸엥카레를 비롯한 수학자는 시인인 것 같다. 수학은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묻고, 대답하고, 따지고,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배우고, 다시 묻는 태도"


수학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고 본류와 비본류의 구분은 있나 보다. 수학의 세계 안에서도 이 책에서 잠깐 나오는 것처럼 남의 이론과 증명의 방식을 내 것인 양 내세우기도 하고 허명을 위해 모험을 하는 이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다. 수학계의 해이한 윤리나 명예 탈취 시도, 불가피한 논쟁 등에 회의를 느끼고 은둔을 택한 페렐만의 초연함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그가 세상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맑고 고귀한 품성을 가진, 양심과 지성을 지닌 수학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푸앵카레 추측과 이후 푸앵카레 병(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기 위한 모든 열정과 좌절)에 걸려 있던 수학자들의 노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천재 그리샤 페렐만이 추측을 정리한 순간까지 100년에 걸친 위상수학자들의 삶에 대해 다룬다. 푸앵카레 추측은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수학 문제 일곱 개 가운데 하나였다. "어떤 다양체의 기본 군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체가 구면과 위상동형이 아닐 수 있을까?"


푸앵카레는 자신의 직감을 정리가 아니고 질문으로 제시하였다. 그 대답 없는 질문은 여러 세대의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20세기 내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학자들이 그 추측에 매달려 학자로서 일생의 상당 부분을 소비했다. 처음에는 추측이 잘못 되었다는 반례를 찾으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그 추측이 옳다고 확신하고 무려 100년 동안 세계의 수학자들은 증명을 찾아 헤맨다.


푸엥카레의 추측에 도전한 지 8년 만에 페렐만은 문제를 풀었다는 확신에 도달한다. 그가 쓴 세 편의 논문으로 '푸앵카레 추측' 뿐 아니라 기하학화 추측까지 해결하게 된다. "콤팩트하고 단일하게 연결된 다양체를 리치 흐름을 통해 변형하고 모든 특이성들을 수술로 제거하면 결국 구면들의 집합만 남는다. 시간을 되돌려 구면들을 다시 붙이면 원래의 다양체 자체가 구면이라는 것을 보일 수 있다."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페렐만의 증명


페렐만이 세 논문을 아카이브에 올린 후, 3년 동안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2006년 8월에 ICM에서 필즈상 수상자로 발표되었고 그는 그 상을 거절했다. 명예와 대중의 인정에 관심이 없는 그는 푸앵카레 추측을 자신이 증명한 그 자체로 이미 상을 받았다고 생각한지도 모른다. 1998년 클레이 수학 연구소는 일곱 개의 밀레니엄 난제를 풀 경우에 각각의 문제에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페렐만은 그의 증명을 유명한 학술지에 출판하기만 하면 100만 달러의 상금을 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수학계와 발을 끊은 그는 수학을 완전히 버렸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소르마니는 말한다. "페렐만이 수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행세하지만 아마도 많이, 일주일에 50시간보다 훨씬 더 많이 연구하고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혹시 아는가. 몇 년 뒤, 새로운 난제를 해결했다는 그의 소논문이 아카이브 학술지에 실리고 세상이 또 한번 왕창 놀랄지.


지적인 욕구가 웬만큼 있는 사람이라면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페렐만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00년 동안 아무도 풀지 못한 수학 문제를 푼 천재라면, 더구나 모든 수학자가 탐내는 필즈메달을 거부하고 초야에 묻힌 인물이라면, 수학에 몸서리를 치던 학생시절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들조차 호기심을 품을 만하다. 그래서 신문기사도 읽고 책도 읽어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페렐만의 혁명적인 업적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 벅찬 과제이다. 아무리 줄여 잡아도 세 고비를 넘어야 페렐만의 업적을 이해할 준비가 된다. 우선 위상수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3차원 구면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리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푸앵카레 추측이란 이런저런 조건을 갖춘 3차원 물체가 위상수학의 관점에서 볼 때 3차원 구면과 같다는 주장이고, 페렐만은 이 주장이 옳음을 리치 흐름을 이용해서 증명했다. 더 자세히 설명하기는 난감하다. 위상수학의 관점이 무엇인지, 이런저런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3차원 구면이 무엇인지, 리치 흐름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것인지 간단히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책을 제외하고서도 푸앵카레 추측만 다룬 책이 벌써 몇 권 나왔다. 간단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럴 리가 없지 않겠는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수학은 가장 큰 자유를 위해 가장 엄밀하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피상적인 이미지와 달리 수학자는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 사람이라기보다 생각하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100년 동안 최고의 수학자들이 거의 옳다 싶은 푸앵카레 추측을 놓고 따지고 또 따졌다. 우리 일반인이 수학에서 배워야 할 정신은 무엇보다 그 집요함일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수학자들은 인간적인 면모와 탁월한 창의력으로 연민과 경탄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과학책을 번역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인데, 세상에는 삶과 과학이 한 덩어리가 된 멋진 과학자들이 참 많다. 그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푸앵카레 추측처럼 어려운 과학은 잘 이해하지 못해도, 과학자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은 충분히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을 보면 과학이 삶의 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삶과 과학이 겉도는 듯할 때가 종종 있다. 왜 그럴까? 혹시 우리는 과학 선진국 사람들과 달리 집요함이나 증명의 욕구를 타고나지 않아서일까? 그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적어도 과학계 바깥에서 페렐만은 필즈메달을 거부하고 칩거한 인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만일 수학이 이익을 위한 경제활동이라면, 페렐만의 행동은 실로 엽기적이다. 그러나 수학이 삶의 한 방식이요 그 목표는 큰 자유라면, 그의 칩거는 더할 나위 없이 수학자다운 행동이다. 수학은 가장 큰 혁명이 조용하게 일어나는 장소이다. 페렐만 말고도 수많은 영웅들이 북적거린다. 이 책을 비롯한 여러 기회를 통해서 구경할 가치가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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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16

리만가설  

수학 최대 난제로 꼽히는 리만 가설은 수학을 비롯한 여러 과학 분야에 두루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소수로부터 탄생한 현대식 컴퓨터 암호체계도 리만 가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1970년대에는 원자핵물리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진 후 물리학자들까지 이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 가설이 증명된다면 수학계에는 일대 혁명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다.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 출간되는 리만 가설 해설서로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리만 가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수식과 더불어 역사적인 배경과 관련 인물들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리만의 상상 속 수학 거울 - 리만 가설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걸린 100만 달러의 상금 

"이 수열은 과연 무엇일까? …59, 61, …, 67, …, 71, … 이것들은 모두 소수가 아닌가?" 작은 흥분으로 인한 소란이 통제실을 감돌았다. 뭔가 깊은 것에 닿은 느낌으로 엘리의 얼굴도 잠시 떨렸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곧 헛된 상상으로 빠지는 데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런 생각이 비과학적이며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다는 자각에 따라 냉정을 되찾았다. 
-칼 세이건(Carl Sagan), 영화 <콘택트(Contact)> 중에서 



리만은 겨우 서른두 살의 나이로 수학자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1859년 8월 베를린학술원의 회원이 된 것이다. 리만은 당시의 관례대로 자신이 연구하던 주제로 논문을 작성하여 학술원에 제출했다. 일상적인 산술에 관한 내용을 담은 그 논문의 제목은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한 연구>였다. 여기서 리만은 논문의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20 미만의 숫자들 중 소수는 몇 개인가?" 답은 2, 3, 5, 7, 11, 13, 17, 19, 즉 8개이다. 그렇다면 1000 미만의 숫자들 중에는 소수가 몇 개나 있을까? 100만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는? 소수를 일일이 세는 중노동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줄 일반적인 규칙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리만이 그의 논문에서 짧게 언급했던 추측은 후에 '리만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20세기 수학자들을 괴롭혔다. 지금도 그 사실 여부는 증명되지 않았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1637년 제기, 1994년 풀림)와 4색 문제(1852년 제기, 1976년 풀림)를 비롯하여 그동안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수학 문제는 많았다. 최근에 러시아의 수학자 그리샤 페렐만에 의해 푸앵카레 추측이 해결됨으로써 새롭게 증명에 추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전문 수학자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해결 문제는 단연 리만 가설이다. 

수학자들은 20세기를 리만 가설과 씨름하면서 다 보냈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2000년 수학월간지《아메리칸 매스매티컬 먼슬리》1월 호에 실린 '21세기 도전 과제' 중 첫 번째가 리만 가설이었다. 이를 위해 클레이수학연구소와 미국수학연구소가 설립됐다. 클레이수학연구소는 리만 가설이 참(또는 거짓)임을 증명하는 사람에게 100만 달러의 상금을 주기로 했다. 미국수학연구소도 리만 가설을 주제로 전 세계의 수학자들이 참석하는 학회를 꾸준히 개최해 오고 있다. 



 리만 가설, 왜 중요한가? 

아무리 추상적이라도 언젠가 현실 세계에 적용되지 않을 수학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로바체프스키(Nikolai Ivanovich Lobachevsky, 1792-1856) 

리만 가설은 증명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 파급 효과가 엄청나다. 지금도 전 세계 수학자들이 그 증명에 일생을 바치고 있다. 만일 이 가설이 증명된다면 정수론부터 시작해서 수학계에는 일대 혁명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불특정 소수 배열의 패턴을 설명하는 리만 가설이 풀릴 경우 현재 쓰이고 있는 공개키 암호 체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개키 암호'는 매우 큰 인수분해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수십 자릿수의 소수 2개를 곱해 만든 아주 큰 자연수가 공개키가 되는 것이다. 이를 사용해 메시지를 암호문으로 만드는 것이 공개키 암호다. 이렇게 한번 만들어진 암호문은 처음의 소수를 알아야만 메시지로 변환할 수 있다. 이 공개키 암호는 현재 신용카드, 은행예금 인출, 이메일 송수신, 휴대폰 사용뿐 아니라 기업이나 국방외교의 기밀을 보장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소수 이론의 경우, 아다마르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지만 하디의 주장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1970년대에 이르러 암호학에 소수가 도입되면서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류를 타고 큰 소수의 판별법과 엄청나게 큰 수를 소수의 곱으로 분해하는 방법, 거대한 소수를 생성하는 방법 등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즉, 지난 20년 동안 소수는 매우 실용적인 연구 대상으로 취급되어 온 것이다. 지금도 소수는 인터넷으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므로 리만 가설이 증명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매우 크게 나타날 것이다. "리만 가설이 참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정리들이 새 생명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다양한 후속 발견·발명들이 그 뒤를 이어 홍수처럼 쏟아질 것이다. 또한 물리학자들이 '리만 역학'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면 물리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 방식도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 뒤에 어떤 후속 결과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제아무리 위대한 학자라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본문 470-471쪽, 제22장 참인가, 거짓인가) 



■ 무질서의 소수에서 질서의 영점으로 - 인간의 정신이 창조해 낸 가장 위대한 산물 

수학자의 패턴은 미술가나 시인의 패턴처럼 아름다워야 한다. …제일의 기준은 아름다움이다. 
-영국 수학자 하디(Godfrey Harold Hardy, 1877-1947) 

리만 가설에 따르면 자연수 세계에서는 무질서처럼 보이던 소수의 집합이 복소수 세계에서는 하나의 직선 위에 정렬한다. 그리고 이는 마치 잡다한 현실과 아득한 추상의 세계를 왕복해 오던 수학에 내재하는 깊은 연결 고리를 드러내 보여 주는 듯하다. 가우스의 소수추론(Prime Number Conjecture)을 증명하여 소수정리(Prime Number Theorem)가 되게 한 프랑스 수학자 아다마르(Jacques Salomon Hadamard, 1865-1963)가 남긴 "실공간의 두 진리를 잇는 지름길은 때로 허공간을 지난다"는 말도 이런 관점을 가리킨다. 

누구보다도 상상력이 풍부했던 베른하르트 리만은 복소함수를 이런 식으로 가시화시켰다. 제곱함수의 경우, 일단 정상적인 복소평면을 머릿속에 그린 후에 음의 실수축(원점에서 시작하여 왼쪽으로 뻗어 나가는 직선)을 따라 복소평면을 가위로 자른다. 이 상태에서 평면의 위쪽 반을 손으로 잡고 원점을 회전축 삼아 반시계 방향으로 잡아 늘이면서 360° 돌린다(지금 우리의 복소평면은 신축성이 무한인 고무판임을 상기하라). 그런데 지시대로 잡아 늘이다 보면 180° 돌아갔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복소평면의 끝이 자기 자신과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복소평면은 방해물을 마음대로 통과하는 신기한 재질로 되어 있으므로 걱정할 것 없다. 이런 식으로 360° 회전이 완료되면 잡아 늘인 복소평면의 끝은 방금 전에 가위로 잘랐던 경계선과 다시 만나면서 그림 13-3과 같은 형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제곱 함수를 통해 변형된 복소평면의 모습이다. 이것은 함수 z²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냥 재미 삼아 한번 해 본 단순한 변형이 아니다.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였던 리만은 이로부터 '리만 곡면 이론'이라는 새로운 이론 체계를 만들어 냈고, 그로부터 복소함수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함과 동시에 강력한 계산법을 개발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리만 곡면 이론은 함수론과 대수학, 그리고 위상기하학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20세기 수학이 비상할 수 있는 초석을 제공하였다. 풍부하고 대담한 상상력과 치밀한 논리의 산물인 리만 곡면 이론은 인간의 정신이 창조해 낸 가장 위대한 산물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본문 292-293쪽, 제13장 변수 개미와 함수 개미) 


리만은 현대물리학과 상대성이론에서 너무나 중요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창시한 수학자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서 중력현상을 위해 사용한 '휘어진 공간'에 대한 기하학을 고안해냈다. 만일 리만의 이와 같은 업적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리만은 복소함수의 '리만 곡면'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도록 맞아떨어지게 하는 그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리만 가설』, 수학 역사상 가장 값진 보물 

리만 가설은 소수를 음악으로 풀어쓸 수 있다는 뜻의 수학적 저술이다. 소수에 음악이 들어 있다는 말은 이 수학적 정리의 시적 표현이다. 하지만 고도의 포스트모던 음악이다. 
-마이클 베리(Michael Berry), 브리스틀대학 교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나 4색 문제와는 달리, 리만 가설은 내용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친숙한 문제가 아니다. 난해한 수학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리만 가설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리만 가설 

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모든 근들은 실수부가 1/2이다.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해도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프리카 토속어 수준이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가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배경과 관련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에 더해 리만 가설을 이해하기 위한 수학적 배경 지식들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독자들도 리만 가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정보들을 가능한 쉬운 형태로.....

 

리만 가설
이중섭 (아주대학교)

이 글은 2000년 3월자 대한수학회 소식 76호에 실린 글입니다.

1859년 리만(Riemann)은 소수에 관한, 8쪽의 짧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리만의 유일한 수론 논문이지만, 다른 어떤 논문보다도 수론과 복소수 함수론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 논문에서 리만은 리만 제타 함수(zeta function)의 중요한 성질들을 기술하고, 당시에 최대의 미해결 문제였던 소수 정리의 증명방법을 제시하였다. 그 후 약 30년 동안 복소수 함수론을 발전시킨 결과, 아다마르(Hadamard)와 발레뿌셍(de la Vallee Poussin)이 소수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결실을 맺게 된다. 그의 논문에서 리만이 주장한 제타 함수에 대한 사실들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후에 엄격하게 증명되었다. 그것은 제타 함수의 영점의 위치에 대한 추측인데, 그 스스로도 증명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후에 이 추측은 리만 가설(Riemann Hypothesis)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고, 아직까지 그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2000년 5월 24일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리만 가설을 포함하여 백만 달러 현상금 문제 7개를 발표하였다. 서울대학교에서는 12월 "새 천년 수학문제 소개회"를 열어 그 중 4문제를 소개하였다. 거기서 필자가 행한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글은 구성되었다. 학부 신입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강연을 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주제의 특성상 복소수 함수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가정할 수 밖에 없었다. 강연내용을 재구성하다 보니 다소 엄밀성이 부족한 점에 대하여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 이 글을 쓰는데 조언을 주신 세종대 김영원 교수께 감사드린다.

리만 제타 함수

해석적 수론에서는 관례적으로 복소수를 s로 표시하며, 그것의 실수 부분은 σ, 허수부분을 t로 표시한다. 즉, s = σ + it이다. 리만 제타 함수는 아래와 같이 급수로 표현되는 복소수 함수이다.
ζ(s) =

n = 1
 1 
ns
물론 이것은 σ > 1일 때 정의되는 해석 함수(analytic function)이다. 지금부터 이 글의 마지막 절 이전까지, 제타 함수는 리만 제타 함수를 뜻하는 것으로 한다.

제타 함수에 대한 연구는 오일러(Eular)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제타 함수가 다음과 같은 곱셈공식(product formula)을 만족함을 관찰하였다.
ζ(s) =

p
(1 - 1 
ps
)-1
여기서 곱은 모든 소수 p에 관한 것이다. 그는 또한


p
 1 
p
= ∞
임을 보였는데 이것은 소수의 개수는 무한하다는 유클리드(Euclid) 정리의 새로운 증명이다. 오일러의 작업의 중요한 의미는 제타 함수가 소수의 분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며, 이것은 해석학적 수론의 기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수의 분호에 대한 더욱 깊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제타 함수의 정의역을 σ > 1인 반 평면보다 더욱 넓은 영역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 두 가지를 소개한다. 간단한 대수적 조작을 하면
ζ(s) =1

1 - 21 - s


n = 1
(-1)n - 1

ns
가 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σ > 0일 때 정의되며, s = 1에서 유수 1인 단순 극(simple pole)을 갖는 유리형(meromorphic) 함수이다. 제타 함수가 s = 1에서 극을 갖는다는 사실은 앞의 오일러의 공식과 동치이다. 지금 설명한 제타함수의 연속화(continuation) 방법은 간단하기는 하지만 제타 함수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다른 연속화 방법을 소개한다. 실수의 x의 소수 부분(fractional part)을 {x}로 표시하자. 리만-스틸레스(Riemann-Stieltjes) 적분을 사용하여
ζ(s) = s

s - 1
 - s 
 
 
 {x}

xs + 1
 dx
임을 보일 수 있고, 이 공식도 σ > 0일 때 성립한다. 이 표현은 오일러 맥클로린 합 공식(Eular-Maclaurin summation formula)으로 일반화 되며, 이것을 이용하면 제타함수를 복소수 평면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제타 함수는 s = 1에서만 극을 갖는 유리형 함수이며, s = -2, -4, -6... 에서 영점을 갖는데 이들을 자명한(trivial) 영점이라 부른다. 자명하지 않은 영점(nontrivial) 영점은 모두 0 < σ < 1인 띠 안에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 띠를 임계대(critical strip)라 부른다. 리만 가설은 자명하지 않은 영점이 모두 σ = 1/2인 직선상에 있다는 주장이다.

리만의 논문

여기서 리만 논문의 주요 내용을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리만은 제타 함수의 정의역을 복소수 평면 전체로 확장한다. 위 절에서 서술한 방법과는 달리, 그는 감마 함수(gamma function)의 적분표현을 이용한다. 리만은 유명한 함수 방정식(functional equation)을 유도한다.
 1 
2
s(s - 1)π-s/2 Γ( s 
2
) ζ(s) = 1 
2
s(s - 1)π-(1 - s)/2 Γ( 1 - s 
2
) ζ(1 - s)
이 방정식은 제타함수가 직선 σ = 1/2에 대하여 모종의 대칭성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자명하지 않은 영점들은 직선 σ = 1/2에 대하여 대칭적으로 위치해야 함을 알 수 있고, 이것은 리만 가설의 논거 중에 하나이다. 사실상, 리만가설이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론적 이유는, 이 함수 방정식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 = 1/2 + it를 위 식의 좌변에 대입하여 얻어지는 함수를 ξ(t)라 놓는다. ξ는 전해석 함수이고, ξ의 영점들은 모두 허수 부분이 -i/2와 i/2 사이의 영역 안에 있고, 리만 가설은 ξ의 영점이 모두 실수라는 것과 같다.

리만은 제타 함수의 영점에 대하여 중요한 결과들을 얻었다. T가 양의 실수일 때, ζ(s)의 영점 중에서, 허수 부분이 0보다 크고 T보다 적은 것들의 개수를 N(T)라 하면
N(T) ∼  T  
log  T  
-  T  
여기서 기호 f(x) ∼ g(x)는
lim
x → ∞
 f(x) 
g(x)
= 1
을 뜻하다. 함수 ξ는 마치 다항식처럼 일차 인수로 분해된다.
ξ(t) = ξ(0)

ρ
(1 - t 
ρ
)
단, 여기서 곱은 ξ(t)의 모든 영점 ρ에 대한 것이다. 리만이 제타 함수의 영점에 대하여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것이 소수의 분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리만은 위의 결과들을 이용하여 소수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을 개술하였다. 산술 함수를 제타 함수에 대한 경로(contour) 적분으로 표현하고, 제타 함수의 영점에 관한 정보를 이용하여 적분을 계산하는 것이 그 방법의 핵심이다.

소수 정리

소수 정리는, 주어진 실수 x를 넘지 않는 소수의 개수 π(x)는 근사적으로 x/log x라는 명제다. 즉,
π(x) ∼x

log x
가우스(Gauss)는 이것보다 한층 더 정확한 근사공식
π(x) ∼ Li(x) = 

2
 dt

log t
를 발견했지만 증명에 성공하진 못 했다. 이 형태의 소수 정리는 ζ(s)가 직선 σ = 1에서 영점을 갖지 아니함과 동치이다. 위의 근사 공식의 오차에 대한 정보는 ζ(s)의 자명하지 않은 영점의 분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π(x)를 대신할 새로운 함수를 생각한다. 자연수 소수 p의 거듭제곱이면 즉 n = pk이면 Λ(n) = log p, 그렇지 않으면 Λ(n) = 0이라 정의한다.
ψ(x) =
Σ
n ≤ x
Λ(n)
이라 놓는다. 그러면 π(x)에 대한 모든 주장은 ψ(x)에 대한 그것으로 번역될 수 있으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 예를 들면, 소수정리는 ψ(x) ∼ x와 동치이다. 멜린 변환(Mellin transform)을 이용하면 다음과 같은 경로 적분표현을 얻는다.
ψ(x) = -1

2πi
c + i∞

c - i∞
ζ'(s)

ζ(s)
xs

s
ds
만일 ζ(s)가 직선 σ = 1근처에서 영점을 갖지 않으면 위의 적분에서 c를 1보다 조금 더 작은 수로 택할 수 있고, ζ(s)는 s = 1에서 유수 1인 단순 극을 가지므로, 유수 정리에 의하여 Ψ(x)의 주요항 x를 얻을 수 있다. ζ(s)가 영점을 갖지 않는 한, 적분선을 왼쪽으로 이동 하여 오차 항을 작게 만들 수 있다. 만일 리만 가설이 옳다면 c = 1/2 + ε(ε은 임의로 작은 양수)로 택할 수 있으며, 그러면 Ψ(x) = x + O(x1/2 + ε) 또는 π(x) = Li(x) + O(x1/2 + ε)을 얻는다. 실제로, 이 식들은 리만 가설과 동치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실수 α ≥ 1/2에 대하여 ζ(s)가 σ > α인 영점을 갖지 않는다는 것과 π(x) = Li(x) + O(xα + ε)은 동치이다. 아다마르와 발레뿌셍은 적당한 상수 A가 존재하여 ζ(s)가 σ > 1 - A/log t일 때 영점이 없음을 보이고 그 결과로
π(x) = Li(x) + O(xe
-k√ log x

) (k > 0, 상수)
를 얻었다. ζ(s)가 영점을 갖지 않는 수직 때 모양의 영역이 임계대 안에 존재하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제타 함수에 대한 복소수 이론이나 푸리에 해석을 이용한 소수 정리의 증명을 해석학적 증명이라 부르는데 반하여, 그렇지 않은 증명을 초등적(elementary) 증명이라 한다. 소수 정리의 해석학적 증명이 발견된 후, 수학자들은 초등적 증명을 시도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소수 정리의 산술적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할 뿐 아니라, 소수 정리의 오차를 향상시킴으로써 제타 함수의 영점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결과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1949년 셀버그[Selberg]와 에르도스[Erdos]에 의해 결코 쉽지 않은 초등적 증명이 발견되었다. 그들이 얻은 오차는 해석학적 증명으로 얻어지는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그렇지만 소수정리는 제타 함수가 σ = 1인 직선 상에서 영이 되지 않는 것과 동치임을 기억하면, 그들은 함수론의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제타 함수의 중요한 성질을 증명한 셈이다. 이것은 초등적 증명의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던 수학자들 뿐 아니라 수학계 전체를 놀라게 하였다. 아직도 초등적 방법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구가 성취되었다고 보기 힘들며, 초등적 방법을 통하여 얼마나 깊은 해석학적 결과들을 얻을 수 있을 지도 궁금하다.

다른 가설들

리만 가설보다 약한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은 린델로프(Lindelof) 가설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임의 양수 ε에 대하여
ζ( 1 
2
+ it) = O(tε).
이것은, 제타 함수의 영점의 위치에 대하여, 리만 가설보다 덜 과격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증명은 리만 가설의 그것보다 결코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소수의 분포와 관련된 수론 문제들에 대한 최상의 답을 얻기 위하여 리만 가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리만 가설보다 약한 명제를 가정해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밀도 가설(density hypothesis)은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이것을 가정하면 이웃한 소수들의 거리에 대하여 거의 최상의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제타 함수의 영점을 ρ = β + iγ로 표시하자. 1/2 ≤ σ ≤ 1이고 T > 0일 때, β > σ와 0 < γ < T를 만족하는 ρ의 개수를 N(σ, T)라 하자. 밀도 가설은 다음의 내용을 주장한다. 임의 양수 ε에 대하여
N(σ, T) = O(T2 - 2σ + ε).
리만 가설이 참이면 N(σ, T) = 0이니 밀도 가설은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리만 가설과 동치인 많은 명제 가운데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두 개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리즈(Riesz)의 조건으로, 그 내용은 임의 양수 ε에 대하여


k = 1
(-1)k + 1xk

(k - 1)!ζ(2k)
= O(x1/4 + ε).
두 번째는 하디(Hardy)와 리틀우드(Littlewood)의 조건으로, 그 내용은


k = 1
(-x)k

k!ζ(2k + 1)
= O(x1/4).
이 두 조건은 제타 함수의 자명하지 않은 영점의 위치가 제타 함수의 자연수에서의 값에 대한 추정에 관련이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으나, 이 조건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이용된 적은 없다.

다른 제타 함수들

리만 제타 함수는 수학의 한 분야에 국한되어 있는 특이한 주제가 아니다. 해석적 수론, 대수적 수론, 보형 형식론(automorphic form theory), 동역학계 등의 분야에도 자연스럽게 리만 제타 함수와 유사한 성질을 깆는 함수들이 정의되고, 이들은 각각 고유한 이름들을 갖고 있지만 통칭하여 제타 함수라고 한다. 리만 제타 함수는 일반적인 제타 함수를 연구할 때, 전형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제타 함수들은, 연구하려는 대상으로부터 생성되는 무한 수열을 계수로 갖는 멱급수 또는 디리클레(Dirichlet) 급수로 정의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리만 제타 함수가 그렇듯이, 나름대로 적당한 형태의 오일러 곱셈 공식과 함수 방정식을 만족한다. 연구하려는 대상의 중요한 성질들은 제타 함수의 영점의 위치와 관련되었으며, 당연히 고전적인 리만 가설과 유사한 가설을 생각할 수 있다. 혼란의 염려가 있지만, 이들도 모두 리만 가설이라 부른다.

이제 리만 가설은 한 개의 문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제타 함수와 리만 가설은 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중심적 연구 주제가 되었다. 고전적인 리만 가설 뿐 아니라 대부분의 리만 가설들도 미해결로 남아 있으며, 어느 것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유한 수학의 분야에서지만, 한 가지 형태의 리만 가설은 해결되었다. 웨이유[Weil]가, 유한체 위의 사영 곡선에 정의되는 제타 함수에 대한 리만가설을 증명한 것은 1940년대였다. 이것의 일반화는 들린느[Deligne]에 의해 완성되었다. 그는 유한체 위의 임의의 다양체(variety)에 대한 제타 함수의 리만 가설을 해결하였는데 이것은 20세기 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한 개의 리만 가설의 증명이 다른 리만 가설들의 증명에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하는 거은 너무 경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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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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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22

Soul conjection

An extremely powerful and fatal technique. It was deemed a kinjutsu due to the effect. It can only be activated when the user is dying, as that is when the soul leaves the body. The user conjoins both his and the opponents souls together, mixing his with the enemy. When his soul is conjoined, the opponent starts to slowly die, as the users soul starts to eat away and the body. The opponent will die within 1 week, a slow and painful death.

It is unnavoidable and unstoppable. Even if the opponent is invisible or invinc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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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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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34

William Stanley Jevons, 1835-1882.

Photo of W.S. Jevons   

English economist and logician whom, simultaneously with Carl Menger and Léon Walras, launched the Marginalist Revolution of 1871-4 that gave birth to Neoclassical economics.

Stanley Jevons (as he preferred to be called) was born in Liverpool on September 1, 1835, the ninth child of a family of prosperous iron merchants.   However, the death of his mother in 1845 and the collapse of the family firm in 1848 circumscribed Jevons's opportunities.  His early education was acquired at home, the Liverpool Mechanics Institute and finally at a preparatory school in London.  

As a Unitarian (a liberal non-conformist Protestant sect), Jevons was legally barred from taking the traditional educational route through Oxford, Cambridge, etc.   So, in 1852, Jevons entered University College London (UCL), a Benthamite institution that accepted non-conformists, to study chemistry, mathematics and logic.  It was here that he came under the influence of the logician Augustus De Morgan.  However, financial circumstance forced him to withdraw in his second year and accept a post as Assayer at the new Royal Mint in Sydney, Australia. 

After arriving in Sydney in 1854, Jevons spent his spare time (and there was plenty of it) studying the climate, geography, geology and flora of Australia.  He took daily meteorological observations  and hobnobbed with the local scientific community.  A local dispute over railway funding led Jevons to study up on economics. Jevons read Dionysus Lardner's 1850 book, Railway Economy, which contained a geometric treatment of demand and supply.  It was this, more than anything else, that inspired Jevons to begin his investigations into a "mathematical approach" to economics.

After his father's death in 1855 and a bit of soul-searching, Jevons returned to London in 1859 and earned his B.A. in at UCL in 1860.  His M.A. in Logic, Philosophy and Political Economy was acquired in 1862.  In that same year, Jevons sent two papers to the British Association meetings at Oxford. The first discussed his ideas about how to introduce mathematical methods and subjective utility into economics (a version was later published in 1866). The second paper was a study of seasonal fluctuations in prices.   In 1863, Jevons published a monograph computing the impact of the Australian and Canadian gold rushes on the general price level (here, he introduced a novel method of constructing price indexes using the geometric mean).  None of these economic publications garnered much response, so he moved back to philosophy and logic. 

In 1863,  Jevons published his Pure Logic, wherein he improved the symbolic logic schema pioneered by George Boole and his teacher Augustus De Morgan.  Jevons also introduced his own system of logic, the "substitution of similars" (restated in 1869).  In essence, Jevons forwarded the idea that logical problems can be resolved exactly like algebraic equations just by stating the statements symbolically and then substituting elements with similar properties.  For instance, "All men are mortal" and "Socrates is man" is resolved quickly by the algebra-like substitution of the common element in both statements ("man"), to yield the conclusion "Socrates is mortal".  This may seem self-evident for simple syllogisms, but Jevons was convinced that more complex logical problems could be solved in this manner.   

Jevons spent the next few years working as a tutor and part-time lecturer at Owens College in Manchester and Queen's College in Liverpool.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he wrote his 1865 Coal Question, an alarmist treatise drawing attention to the imminent exhaustion of energy supplies.  It was in here that the so-called "Jevons Paradox" was first posited, i.e. that an improvement in the efficiency of resource-use leads to an increase (rather than a decrease) in the use of that resource.  The book sold well and was widely discussed in government circles.  It brought a small degree of fame to the young Jevons. He followed this up with a series of insightful and popular papers on currency and coinage (later collected in his Investigations (1884)). 

In 1866, Jevons was appointed Professor of Logic and Philosophy at Owens College and, soon after, he married Harriet Ann Taylor (no, not that one; this one was the daughter of a newspaper baron, the founder of the Manchester Guardian).  Jevons returned to logic around this time, further developing the "logical alphabets" of Boolean schemata.  Due to his power as a popularizer (e.g. 1870, 1876), many of Jevons's innovations continue today (e.g. the removal of subtraction and division, the inclusion of "both" in the disjunctive "either...or", etc.).  As he hammered the symbolic method into shape, Jevons became particularly entranced by the way logical problems could be resolved by just repeatedly applying simple, mechanical rules.  In 1870, he unveiled his famous "logical piano" at a Royal Society meeting -- a primitive, three-foot computer which solved logical calculations at superhuman speed via keys, pulleys and switches (see image).  As he wrote:

"To the reader of the preceding paper it will be evident that mechanism is capable of replacing for the most part the action of thought required in the performance of logical deduction. Mental agency is required only in interpreting correctly the grammatical structure of the premises, and in gathering the purport of the reply... The machine is thus the embodiment of a true symbolic method or Calculus" (Jevons, 1870: p.517).

His research on logic was interrupted in 1870 when Fleeming Jenkin sent him a copy of his pamphlet on mathematical economics.  Fearful of being upstaged, Jevons dashed off his Theory of Political Economy in 1871, expanding on the themes of his earlier 1866 paper and launching the Marginalist Revolution in the process.  He began by outlining the principle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 and showed how it governed individual choice via the equimarginal principle.  

In the context of a pure exchange economy, Jevons showed how this principle served as a foundation for a new and comprehensive theory of value.  By combining two "laws" of exchange -- that every exchange must be mutually beneficial and that every portion must be exchanged at the same rate (his famous "Law of Indifference") -- Jevons came to the conclusion that a higgledy-piggledy exchange process (without price-taking behavior) will work its way necessarily to the market equilibrium.  Several reviewers, most notably Francis Ysidro Edgeworth (1881), disputed this conclusion, arguing that the point at which exchange would cease was indeterminate.  Although  Jevons acknowledged that indeterminacy would arise if indivisible commodities were involved, he did not see the connection Edgeworth was trying to make between indeterminacy and the "degree of competition".

In his attempt to extend his theory to a production economy, Jevons introduced his disutility theory of labor supply (which later precipitated a debate over cost theory) and his time-dependent theory of capital(anticipating the Austrians).  Although these ideas were individually groundbreaking, they were not very well-integrated with each other or the remainder of his theory. 

Unbeknownst to Jevons, Carl Menger (1871) had just published a book expounding the same theory and, a little while later, Léon Walras (1874) presented his own version.  The Marginalist Revolution had taken hold independently at three axes.  Jevons got in contact with Walras in 1874 -- the latter recognized the former's claim to precedence, while the former recognized the latter's claim of independent discovery.  They promised to join forces to perpetuate the new gospel but, for reasons not altogether clear, Jevons did a bit less than he promised to do.  Despite the fact that both men traveled to each other's countries on several occasions, they never succeeded in meeting.

Soon after the publication of the Theory, Jevons grew gradually aware that, in fact, many other earlier writers -- such as Cournot and Gossen -- had anticipated many of his economic ideas.  He was half-disappointed by this, but, at the same time, it confirmed his conviction that his theory was probably right.  In his revolutionary zeal, Jevons had not withheld his punches, bitterly accusing the reigning (but moribund) Ricardian School -- particularly John Stuart Mill -- of seriously retarding the development of economics through "the noxious influence of authority" (Jevons, 1871: p.275).  Contemporary Classical economists realized that Jevons was calling for subversion and responded accordingly, thereby inadvertently make his theory better known. 

In 1874, Jevons published his masterpiece of scientific methodology, Principles of Science, wherein he presented his theory of scientific inference.  Following up on De Morgan and Whewell, Jevons took aim at the empirical approach of  John Stuart Mill.  Induction, Jevons claimed, "is simply an inverse employment of deduction." (1874: p.viii).  While championing the hypothetico-deductive method, Jevons recognized that it yielded, at best, only partial knowledge. In order to make a "perfect" induction, Jevons argued, it is necessary to list in the premises all the possible cases or instances from which the empirical conclusion can be derived.  But, in most matters, such a complete enumeration cannot be done in practice.  As a result, Jevons's argued,  "general laws" are at best only "probable".  He introduced, in the process, an epistemological theory of probability, arguing that probabilities are mere "measures of ignorance" or, as he liked to call it, measures of "rational expectation" (i.e. reasonable belief).  

Jevons's "inverse probability" theory of induction argues that we can deduce the "most probable" cause of an event by examining all possible hypotheses (all equally likely), deducing all possible consequences from them, comparing these consequences with the facts and then picking the hypothesis which is most likely to yield that event:

"If an event can be produced by any one of a certain number of different causes, all equally probable a priori, the probabilities of the existence of these causes as inferred from the event, are proportional to the probabilities of the event as derived from these causes. (Jevons, 1874: p. 242-243).

Jevons's method is merely an application of Bayes's Theorem, e.g. suppose P(x | A) = p, P(x | B) = q and P(x | C) = r are the conditional probabilities of consequence x from hypothetical causes A, B and C. So, we can evaluate the hypotheses by calculating P(A | x) = p/(p + q + r), P(B | x) = q/(p+q+r) and P(C | x) = r/(p+q+r) and choosing the one with the greatest probability.  This seems straightforward enough. However, the idea that inductive knowledge was mere probability -- David Hume's old saw -- flew in the face of the scientific consensus of the time and caused a bit of an uproar.  

In 1875 and 1878, Jevons read two papers before the British Association which expounded his famous "sunspot theory" of the business cycle.  Digging through mountains of statistics of economic and meteorological data, Jevons argued that there was a connection between the timing of commercial crises and the solar cycle.  The basic chain of events was that variations in sunspots affect the power of the sun's rays, influencing the bountifulness of harvests and thus the price of corn which, in turn, affected business confidence and gave rise to commercial crises.  Jevons changed his story several times (e.g. he replaced his European harvest-price-crisis logic with an Indian harvest-imports-crisis channel).  However flimsy his explanations, Jevons believed that the periodicity of the solar cycle and commercial crises -- approximately 10.5 years, by his calculations -- was too coincidental to be dismissed.  Needless to say, all this was a bit on the cranky end and, ultimately, the statistics did not bear him out.  Nonetheless, it remains a significant piece of work as this was perhaps the first time that the phenomenon of the business cycle was identified.  Economists had long been aware that business activity had its ups and downs, but not that they necessarily followed any regular pattern.  They generally believed that "crises" arrived haphazardly, punctuating the smooth advance of the economy at irregular intervals. Jevons was perhaps the first economist to argue that the phases of business activity had a regular, measurable and predictable periodicity.

Although Jevons had renounced Benthamite utilitaranism as a workable political or ethical philosophy in his 1871 Theory (as distinct from the use of the utility concept to illustrate the "simple and restricted" problem of economic exchange), his work on social philosophy and public policy (1879, 1882, 1883) resurrected the theme.  Once again, he targeted John Stuart Mill -- particularly his distinction between "higher" and "lower" pleasures.  Jevons did not deny, to use his famous example, that a public library increased "social utility" more than a race-track, but he denied that its superiority lay in Mill's distinction between a "high quality" pleasure (reading) and a "low quality" pleasure (betting).  Instead, Jevons argued, libraries yield a higher quantity of social utility than racetracks.  Races yield intense but momentary pleasure.  Reading is longer-lasting and more fruitful.  Thus, measured over a lifetime, reading yields a greater quantity of pleasure than betting.  Jevons also denounced Mill for failing to incorporate Spencer'sevolutionism into utilitarian doctrine.  

Jevons's economic policy positions, although broadly in line with a laissez-faire attitude, fall short of being doctrinaire.  Where government policy can increase happiness in one segment of the population without diminishing that of another, it should be pursued -- albeit with caution to ensure that all indirect effects are accounted for.  Trade unions, to take his famous example, fail on this criteria as their gains often come at the "expense" of consumers and non-union workers. 

In 1872, Jevons was elected a Fellow of the Royal Society and, in 1876, he was appointed Professor of Political Economy at University College London.  Disliking lecturing and plagued by ill-health, he retired in 1880.  Against his doctor's warnings, Jevons continued swimming regularly, his favorite recreational activity.  In 1882, he drowned at sea off Devon.  An avid book-collector, Jevons left behind a library of several thousand volumes and (anticipating a future world-wide shortage), an enormous stock of blank writing paper.

The impact of Jevons on economics can hardly be exaggerated.  As the father of Neoclassical economics, his legacy is secure.  However, in some ways, he stopped short of the mark.  Jevons could have gone further by connecting his insights in pure exchange into a wider theory incorporating production, capital, money and the business cycle in a more systematic and consistent manner that would have knocked theRicardian School completely out of the picture.  Had he not died so young, Jevons might yet have done so, but the next economics treatise he was working on (published posthumously in 1905), did not really seem to go in that ambitious direction.  As such, by the time of his death, the Marginalist Revolution was still in its insurrectionist phase.  It was still a tentative proposition rather than a firmly-set and integrated system, a scientific hypothesis but not quite yet a science.

Strangely enough, the task of completion was taken up by Alfred Marshall, whom Jevons initially thought a disciple but ultimately turned out to be a rival.  Marshall's Neoclassical system, a woolly compromise between the Ricardian and Jevonian theories, was to rule Anglo-Saxon economics for the next half-century.  Jevons's considerably more radical vision was carried on by a small group of followers -- notably Francis Ysidro Edgeworth and Philip H. Wicksteed.   In the 1930s, as the Marshallian consensus collapsed, Jevonian radicalism re-emerged in Britain (esp. at the L.S.E.), this time hand-in-hand with theAustrian and Lausanne theories. 

Major Works of W.S. Jevons

Resources on W. Stanley Jev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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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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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40
Medusa 124


'Medusa,' by Arnold Bocklin (1878) in My Photos by Helen Chav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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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 2012-08-10 (금) 15:44
Tree of Unive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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