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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末, 이조初에 화약을 발명한 최무선
글쓴이 : 선열반 날짜 : 2015-02-28 (토) 10:51 조회 : 1156

최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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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崔茂宣)
1325년 ~ 1395년
죽은 곳개성
복무고려
복무 기간1377년 ~ 1392년
최종 계급부원수
주요 참전진포 전투, 관음포 전투, 대마도 전투
기타 이력사후 영성부원군에 추봉

최무선(崔茂宣, 1325년 ~ 1395년)은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무신, 과학자, 화약 발명가로, 본관은 영주 (永州:영천)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화약을 제조하여 왜구 격퇴에 기여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화약에 쓰는 염초 개발법을 익혔으며, 화약과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제조했고, 새로운 발사기구를 발명하였다.

1377년(우왕 3년) 화통도감(火筒都監)의 설치를 성사시켜 그해 10월 도감이 설치되면서 제조(提調)가 되어화약류와 총포화기와 전함(戰艦)을 개발하였으며, 화기발사 전문부대인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을 편성케 했다. 1380년(우왕 6년)에 왜구가 500여 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고려를 침략 했는데 고려해군이 화약무기를 이용한 함포전으로 왜군선단을 무찌른 진포대첩은 최초의 해상 함포전이라 한다. 금강하구의 진포(현재의군산시)로 쳐들어왔을 때는 고려군 부원수가 되어 원수 심덕부나세 등과 함께 각종 화기로 무장한 전함을 이끌고 나아가 싸워 격파하였으며, 1383년에는 남해 관음포로 쳐들어온 왜구와 교전, 토벌하였다.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과학자의 한사람이었다. 1392년(공양왕 4년) 7월 조선 건국 후 검교참찬문하부사, 지문하부사를 지냈고 조선이 건국 후에도 다양한 무기 개발과 저술에 힘을 기울였다. 사후 문하우정승에 추증, 영성부원군에 추봉되었다. 저서로는 《화약수련법》과 《화포법》 등이 있었으나 실전되었다.

생애[편집]

최무선이 살던 시대[편집]

당시 고려 시대 정부의 통제는 붕괴 수준이었고, 한국 해협을 건너던 해적(왜구)들이 연해를 침범하곤 했다. 심지어 남쪽으로는 해적들이 육지 깊숙이 들어왔고, 혼란을 일으켰다. 고려는 이성계와 최영 장군의 노력에도 보안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려는 몽골, 중국인들의 간접적인 간섭도 피해갈 수 없었는데, 공민왕에 의해 그 영향은 물러서게 되었다고 한다.

초기 활동[편집]

최무선은 고려 말기인 1325년(충숙왕 12년) 충숙왕 때 현재의 영천인 영주에서 광흥창사(廣興倉使)를 지낸 최동순의 아들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기술에 밝고 병법(兵法)을 좋아하였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화약 무기에 관심을 가졌다.[1] 무관으로 출관한 그는 고려 말기에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의 노략질을 대응하기 위해 화약과 총에 관심을 가졌다.

어릴 적 왕을 위해 일하던 부친과 궁전에 있을 때 최무선은 몽골인과 중국인이 만든 불꽃놀이를 보게 된다. 이 일은 나중에 최무선은 이런 화약의 재료를 고려로 들이는 일에 착수하는데 많은 동기부여가 된다.

최무선은 중국 상인으로부터 재료를 얻어 화약을 제조해 한국의 화약 국내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반도 근해를 습격한 왜구를 쫓는데도 화약을 이용한 다양한 무기를 발명했다.

당시 한창 기승을 부리던 왜구를 무찌르는 데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일찍부터 화약 제조법 연구에 골몰했다. 그러나 화약을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즉 초석유황분탄 중에서 유황과 분탄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초석(염초)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최무선은 이런 재료의 견본과 기술을 밀수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화약의 세 가지 중요한 재료였던 황, 분탄 혹은 양질의 석탄과 질산칼륨(염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그러나 최무선에게 초석과, 광물 상태의 칼륨을 얻기란 매우 어려웠고, 그런 정제되지 않은 원료로부터 어떻게 화약을 준비할 수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최무선은 화약 제조법을 알아내기 위해 혼자 관계서적을 독파하는 한편 틈틈이 원나라 말을 익혔다.[1]

염초 제작법 수학[편집]

신라시대부터 화약과 화포(火砲)가 전래되어 있었으나 화약의 제조에 필요한 염초(焰硝)를 얻지 못해 일본이나 중국에 염초를 의존했다. 그러나 당시 원나라는 칭기스칸의 정벌 전쟁에서도 화약 무기를 사용할 정도로 화약 제조 기술이 발달해 있었고 염초를 얻는 방법이 널리 보급된 상태였다. 화약의 주요 재료의 하나인 염초는 진토(塵土)에서 채취하였는데 그러나 원나라나 명나라는 그 방법을 비밀에 부쳤기 때문에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에는 이 기술을 아는 인물이 없었다.

관직도 버리고 세인들의 외면과 비웃음 속에서 연구에만 몰두하였다.[1] 물론 여러번의 실험을 거쳤지만 실패의 연속으로 최무선은 연구를 포기하기도 했지만, 화약을 잘 안다는 부유한 중국 상인 이원(李元)에 대해 듣게 된다.

최무선은 원나라로부터 진흙에서 염초를 채취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중국과 해외 상인들의 왕래가 잦은 벽란도에 가서 원나라에서 오는 상인들에게 그 방법을 묻던 중, 원나라의 강남 지방에서 온 원나라 사람 이원(李元)을 만나 집에 두고 우대하면서 그 제조법과 염초자취법을 배웠다. 지극한 정성과, 화약을 만들어 국가를 살리겠다는 집념으로 이원을 감동시켜 초석을 흙에서 추출(抽出)하는 방법을 배울수 있게 되었다.

화약은 원나라에서도 군사 기밀에 해당하는 극비사항이었으므로, 최무선은 그를 후하게 대접하고, 화약을 만들어 국가를 살리겠다는 집념으로 설득시키는데 성공한다. 이원에게 흙으로부터 염초를 추출하는 방법을 배우고, 드디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일설에는 최무선이 원나라에 직접 가서 배워왔다는 설도 전한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이원이 원나라로 돌아간 뒤 그는 직접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를 채취하는데 성공하였다. 간단한 화약을 이용한 무기, 즉 화전(火箭) 등을 만들어 실험해 본 그는, 마침내 자신을 얻어 화약과 각종 화약을 이용한 무기를 연구하고 만들 화통도감(火筒都監)의 설치를 몇 번에 걸쳐 건의하였다.

기존에 있던 무기와 비교해 화약의 수준높은 파괴력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감명시킨 성과를 거둔 끝에 결국 우왕이 이를 허락, 이로써 1374년에서 1376년 사이 최초의 국내 화약 생산이 시작되었고, 한국에서 화약과 화약무기 개발에 대한 연구는 1377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화통도감 설치와 화약 개발[편집]

그 뒤 그는 여러 차례 조정에 건의한 끝에 1377년(우왕 3년) 10월 처음으로 화통도감(火㷁都監)을 설치하게 하였다. 바로 제조(提調)로 임명되었으며 그는 이곳의 주임이 되어 화약을 만드는 동시에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육화(六花)·석포(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전(火箭)·화포(火砲)·화통(火㷁) 등의 총포류를 개발하고, 화전(火箭)·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 등의 발사용 화기, 기타 질려포(疾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주화(走火)·촉천화(觸天火) 등 각종 화기를 제조하였다.

최무선의 발명품 중에는 이런 신기전과 화차 등이 있었는데 초기 다중 로켓 발사기와 비슷한 발사 장치였다.

또한 이런 화기 등을 실을 수 있는 전함의 감독·건조에도 힘썼다. 또한 화기 이용에 대한 교육에도 힘써 화기발사의 전문부대로 보이는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었다.

화통은 화포, 총통이라고도 하는데, 쇠를 녹여 포신을 만들어서 뒷부분에는 화약을 넣어 가지고 앞부분에는 탄환이나 화약봉지를 단 쇠화살을 넣은 다음, 뒤쪽에 뚧린 구멍으로 심지에 불을 붙여서 화약이 폭발하게 하여 그 힘으로 탄환이나 화살이 나가도록 만든 것이다.

1380년(우왕 6년) 왜구가 대거 침입하자, 원수(元帥) 나세(羅世) 등과 함께 전함을 이끌고 진포(鎭浦: 현재의 군산시 )에서 왜구 선박 5백여 척을 격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또한 그는 한편 전함(戰艦)의 개발, 건조에도 힘써 이런 화기와 다량의 군사, 물자 등을 실을 수 있는 전함의 감독, 건조하였으며, 대량 장비도 실을 수 있는 누선이라는 군함을 개발하였다.sf

왜구 격파 출정[편집]

1380년 왜선 500여 척이 전라북도 진포(鎭浦)(현재의 군산시) 해안가에 침입하여 서천(舒川)과 금강(錦江) 어구까지 올라와 주변 지역에 대한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최무선은 부원수(副元首)로 임명되어 도원수(都元首) 심덕부(沈德符), 상원수(上元首) 나세(羅世)와 함께 전함을 이끌고 배편으로 출항, 처음으로 화통·화포 등을 사용하여 왜선을 격파했다. 이때 그는 부원수로 군사를 분편할 때 최칠석(崔七夕) 등을 이끌고 진포에서 고려군을 지휘하였다. 이때 진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500척을 모두 불살라버렸다.[2]

그 뒤 1383년 남해의 관음포(觀音浦)에 상륙,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에도 부원수로 출정하여 화기를 사용, 선박을 격침시키고 왜구 다수를 격파했다.[3] 이후 왜구의 침입이 대폭 줄어들었을 정도로 화약 병기의 사용은 왜구 격퇴에 크게 기여하였다. 바로 전라도와 경상도 남해안에 화포를 운반하여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다도해안의 각 군현의 성곽에 화포류를 설치케 했다.

두 번의 해전 승리로 자신감을 얻은 고려 조정은 왜구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 정책을 펼쳤고, 그는 대마도 정벌 전투에도 참전하였다. 1389년에는 대마도를 정벌하는데 출정, 포로로 끌려간 백여 명의 고려인을 구출하기도 했다.

생애 후반[편집]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발명 덕에 최무선은 정치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상인으로부터 화약을 얻기까지도 많은 나이가 들었고, 고려가 조선으로 변화하는 시대도 맞이하게 된다.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이성계(李成桂) 등 신흥세력이 세력을 잡자 그는 이를 부정적으로 봤고, 1389년(창왕 1) 조준(趙浚) 등의 주장으로 화통도감이 혁파되고 군기시(軍器寺)에 통합되어 그의 화약 제조 연구는 중단되었다.

이는 왜구침입이 줄어들어 더 이상 무기제조가 필요없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실은 화약무기의 보급으로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을까 걱정한 때문이었다.[1] 조선 건국 후에도 최무선의 공적은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그의 화약 제조 기술은 아들 해산(海山)과 손자 공손(功孫)에게로 이어져 화약과 화기 연구에 참여하였다.

최무선은 다시 실의의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낱낱이 기록, 책으로 만들어서 아들 해산에게 물려주었다.[2] 1392년 7월 조선이 건국되자 일단 조선 건국에는 참여했으며, 그의 공을 별로 높이 치지 않던 다른 개국공신들과 달리 조선 태종 이방원의 건의로 그는 정헌대부 검교참찬문하부사(正憲大夫檢校參贊門下府事) 겸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가 되었다. 그 후 벼슬이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에 이르렀으며, 조선 태조는 그가 세운 공을 참작하여 사후 의정부우정승(議政府右政丞) 겸 영경연사 영성부원군(永城府院君)을 추증하였다.

사후[편집]

그는 많은 문인들을 남겼으나 화약 개발에 대한 평가는 저조했고, 당대에는 아무도 그의 염초 추출 기법 등에 대한 노고를 알아주지 않았다. 화통도감이 혁파된 후 그는 화약의 제조법과 염초의 채취 방법 등을 기술한 〈《화약수련법 (火藥修鍊法)》, 《화포법 (火砲法)》 등의 저술을 남겼으나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유실되었다.

그의 죽음 이후, 태조는 그에게 부총리(원수)격의 명예를 안겨준다. 그는 여전히 한국에서 많은 과학자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으며, 애국자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은 태조 때 군기시소감(軍器侍少監)으로 등용되었으며, 후일 태종 때 그의 기술을 계승한 아들 최해산 등이 조정의 요직에 중용되면서 다시 화기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저서[편집]

  • 《화약수련법 (火藥修鍊法)》
  • 《화포법 (火砲法)》

가족 관계[편집]

  • 부친: 최동순(崔東洵)
  • 아들: 최해산(崔海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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