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넽의 광장에서 천재로서 이름을 날리는 분이 위의 제목에서 누가 누군지를 분간 못하시길래, 그가 말하는 로마시대의 유명인은 Seneca가 아니라 Cicero였다는 사실을 아래와 같이 밝혀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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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지는 데에도 엎치락 뒷치락의 긴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요사이에 여호와라 바꿔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마는, 그것은 어린이가 성장하여 성인이 되어가듯이 정신연령도 마치 이와 같아서 계속 자라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자신이 율법주의 혹은 Kosher주의(聖潔主義)에 빠져있던 당시의 높고 낮은 백성들에게 "사랑에 입각한 믿음"을 부르짓었던 것과 같다. 신앙이란 정체된 것이 아니다. 거듭 발전해 나가야 참다운 믿음의 경지에 이른다. 어린 아이가 배밀이를 하다가 드디어 걷고, 더 자라서 뛰어다녀야 언젠가 사람구실을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더라.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 불이 붙지 않는 떨기나무 숲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구약의 출애급기에서 말하고 있다. 에집트에서 노예로 학대 받는 자기 동족을 구해 내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세가 아뢰기를, 자기는 말이 굼떠서 이들을 설득할 능력이 없다는 핑계를 댔었다. 물러서지 않는 하나님에게 모세가 맞대꾸하며 물었다. 나를 보낸이가 누구냐고 물으면 무었이라고 대답하리이까?
영어로, God said to Moses, I am who I AM. This is what you are to say to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Exodus 3장 14절)
다른 구약성경책에서는 "I AM who is becoming"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動詞(Verb)이다. "God is a Verb란 제목의 책을 David Cooper란 사람이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유태교에 Kabbalah라는 신비적 영감을 추구하는 종파가 있는데, 제2차 대전 중에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이 학살되면서 거의 사라질뻔 했었다. 최근에 다시 그 흔적을 찾아내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 분이 그런 復古(복고)활동으로 위의 책을 집필했었다.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란 움직일 動(동)의, 말씀 詞(사)로써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럴듯 한 것이, 누구 하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가 보니 일정한 어떤 존재라고 일괄해서 말할 수가 없다. 다들 자기대로 짐작할 뿐이다. 그것도 각 개인의 지식수준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임으로 우리의 사물판단이 향상됨에 따라서 발마추어 같이 인식하게 된다. 마치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였다고 믿었던 어린 아이가 커서는 사실의 어떤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는 것과 같다.
오늘날 서양문화가 전 세계에 퍼져서 기독교나 유태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알고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을 다닌다. 600년 전에 허균이 중국에서 이런 이방인 하나님의 개념을 처음 이 땅에 들여왔을때, 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北望山(북망산)에 가 계신 조상의 귀신 정도로 알았지 않았을까 한다.
하나님은 그날 이후로 "진행형의 존재"로서 우리들에게 인식되어 왔다는 말씀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진행되는 것들의 어떤 것이다. 따라서 이런 변화되어 가는 세상을 우리는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가면서 늘 공부하고 배워서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내게 시사하는 좋은 경구가 눈에 띄길래 여기에 소개한다.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 6 가지의 실수들을 '시셰로(Cicero)'란 로마의 고명한 분이 이렇게 집약했다고 한다.
1. The illusion that personal gain is made up of crushing others (남을 패배시켜서 자신이 이득을 볼수 있다고 착각하는 짓: 이것이 시기, 질투, 비방, 모함, etc.)
2. The tendency to worry about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or corrected (바로 잡을 수 없이 늘 변하는 것들을 가지고 항상 심려하고 사는 짓: 미국의 경제, 남북통일, 교회의 분란, 속물의 목사들, 종북 정치인의 행패 등등...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千波萬波의 어거지 거품을 일으키는 한국사람들)
3. Insisting that a thing is impossible because we cannot accomplish it. (뭐든지 불가능하다고 한사코 우기는 짓: 모르는 것, 새로운 것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우둔함.)
4. Refusing to set aside trivial preferences (사소한 '좋고 나쁘고 하는' 개인적 취향에 전전긍긍하는 소인근성: 특이한 음식, 어떤 글만 좋아하고, 유행물만 쫒고, 남의 눈치에 살고...)
5. Neglecting development and refinement of the mind, and not acquiring the habit of reading and study (지적능력 및 정신쇄신과 그 개발을 게을리 하고, 책을 읽으며 연구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는 속물근성)
6. Attempting to compel others to believe and live as we do (남를 강요해서 자기 식으로 밀고 나가는 자기중심적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남을 이용하고, 좌지우지하고, 꺼떡하면 비난하는 짓,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성내고, 남의 글 비꼬고 욕하는 수작... )
위의 인용은 Marcus Tullius Cicero (106 B.C.-43 B.C.)란 역사적 인물의 말을 요즘에 정신수양과 인격향상의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는 Wayne W. Dyer란 분이 그의 책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다. ("Wisdom of the Ages"-60 days of Enlightment)
Cicero는 로마가 공화국에서 황제정치로 옮아가던 시대에 활략한 정치가요, 철학자였으며 변호사 그리고 정치이론가였다. 그는 웅변가로서도 이름을 날렸었고, 희랍철학을 로마문화로 옮겨 심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중세기 이후에 그의 위대한 업적을 다시 발굴하여 그의 폭넓은 지식과 깊이에 학자들이 놀라면서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그동안에 여러차례에 걸쳐서 한국인들의 비리와 정치적 협잡은 내 문제로 삼을 일이 아니란 말씀을 들였었다. 그 이유는 나는 미국시민으로서 한국에서 벌어지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도 내 뜻을 구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참정권도 없고 그를 위하여 세금을 내지 않는 처지에서 내가 우려해 본들 털끝만치도 변경할 수 없는 일들이 아닌가?
앞에 인용한 제2번의 좌우명에 언급한 그대로 내가 설혹 마음 아프게 생각해본들, 내 정신건강을 해치며 나아가서는 내 육체의 안녕에 부담을 가져올 일을 어째서 일부러 心慮한다는 말인가? 옛 사람도 이런 慧眼을 가졌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살기를 원한다. 다 부질없는 짓...시대와 장소가 달라지면 진실도 달라진다. 그런 변화를 깨닫지 못하는 우둔함을 자기 자신이 아는가?
禪涅槃
2015-02-09 05:3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