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성품 중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 중에 하나는 感性(감성)이다. 사물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조리있게 처리하는 理性(이성)에 비해서 感情(감정)은 현실을 왜곡되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理性은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나, 感(감)이란 것은 느낌으로 해결한다. 흔히 말하는 감이 잡힌다는 거...
어째서 이런 차이가 있을까? 인간의 두뇌를 알아야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사람의 골은 옛날 원시인의 것이 있고, 신식의 뇌질이 따로 존재한다. 앞의 것을 cortex라고 해서 소위 작은골이라 부르고, Neo-cortex는 그 위에 올라앉아 있는 大腦(대뇌)를 말한다.
사람을 萬物의 靈長(만물의 영장)이라 일컷는다. 그 이유는 理致(이치)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뇌활동은 주로 neo-cortex 즉 큰골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보는 것, 듣는 것, 만져지는 것, 냄새맡는 것, 말하는 것 등등 五觀(오관)에서 전해오는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나아가 잘 보관시키는 활동을 한다.
그러면 작은골에서는 뭐를 하는가? 생명의 기초활동, 즉 숨쉬고, 심장과 허파, 그리고 신경활동, 홀몬관리, 몸의 균형처리, 체온조절 등등의 일을 한다. 그 중에서 놀램이나, 급박한 상황처리, 동물적 욕망을 다루는 기능을 주로 맡는다. 여기 동물적 본능에 해당하는 것이 성적욕망과 허기지고 잠을 들게하거나 깨게 하는 것이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좋고 싫고"하는 느낌이 들어간다.
"설명이 않되는데 어쩐지 이상하다"는 것... 이것을 intuition이라 하는데 直感(직감)이란 감정이 활약하는 세계다. 인류문명에 대단한 공헌을 한 발견 내지 발명은 늘 이런 intuition에서 시작되게 마련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다가 드디어 해답을 얻은 것들이다. 불의 발견이 그랬고, 바퀴의 발명이 그랬고, 뉴톤의 만유인력의 발견이 그랬고,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그랬고, 화학의 period table이 그랬고, Quantum 이론이 그랬고, etc. etc.
느낌에서 출발해서 이성으로 끝내준다. 그런데 한가지 두 영역에서 손과 발이 않맞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질투라는 감정이다. 공동체에서 누군가가 더 잘 해서 그 사회에 공헌할 량이면, 그 중에는 반드시 이유없이 그 사람을 미워한다.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참으로 전체를 위하여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유인지 자기가 그것을 더 먼저, 더 많이, 더 좋게 하지 못했다 해서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어 스스로 고민에 빠지는 경에 이러한 "그래서는 않될 느낌"에 시달린다.
인간사회의 온갓 잡음이 이렇게 해서 필요없는 평지풍파를 일으킨다. 징기스칸이 남겼다는 말... "나무는 높아질수록 바람을 더 많이 받는다" 역사이래로 이러한 예가 너무나 많다. 몇가지 예를 들자면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700년에서 기원전 200년의 기간)에 수많은 사상가들을 낳았으니, 이름하여 孔子(공자), 盟子(맹자), 老子(노자), 莊子(장자), 荀子(순자), 그리고 韓非子(한비자)란 분들이 계시다. 그를 높이 평한 진시황에게 간하여 한비자를 모함하여 毒殺시킨 李斯(이사)의 얘기가 유명하고, 이 사람 자신이 조고라는 환관의 손에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요참형에 처하여 졌다."
유명한 얘기로, '마리아 칼라스'란 soprano와 그녀의 '라이벌' soprano Renata Tebaldi와의 티격태격 서로 험담했던 일이나, 삼위일체가 성립되는 과정에 있었던 Athenasius, Arius 와의 "예수의 하나님 아들의 문제로 인한 피비린내의 싸움이라든가, 심지어 임진왜란의 戰雲(전운)을 감지하러 갔던 부사 김성일과 정사 황윤길의 엇갈린 보고, 등등 어찌 이루 다 말하겠는가?
물론 지금의 '인터넽 시대'에 서로 잘났다고 우쭐거리는 현장에서 厚顔無恥(후안무치)의 人面獸心(인면수심), 다시 말해서 "두터운 낯가죽에 부끄럼없는 마음상태"라던가, 사람의 가죽을 썼으나 맘은 동물의 작태"를 하고 있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본다. 왜들 이러지 증말?
사람이 천태만상으로 생긴 것처럼 인간의 마음씀도 이러하나, 대략 5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가장 하단계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동물적인 본성, 즉 육체적 욕심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한다. 앞에 말한 人面獸心 (인면수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그 두째가 厚顔無恥(후안무치)가 아니라 낯가죽은 여전하나 부끄러움을 아는 계층이다.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뭐가 수치스러운 것을 알게 된다. 왜냐? 그가 속한 사회의 일원에서 낯가죽을 두텁게 할 자리가 있고, 그래서는 않될 경우를 알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뭐냐? 良心(양심)이 잘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바로 그거다. 無知(무지)하면 罪(죄)가 되고 그 罪란 것이 문제를 일으켜서 결국에는 死亡(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네번째는 그럼 어떤 종류의 사람들일까? 세번째는 알기만 하지 실천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이나 4단계에 섰는 사람들은 깨닯은 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며 몸소 실천하려고 애쓰는 부류... 다섯번째는 자기를 修身(수신)하기에 成功(성공)한 현인, 현자, 성현, 등등으로 孔子의 말대로 立身(입신)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문제는 入身揚名(입신양명), 즉 자기를 잘 다스려서 이름을 높이는 걸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를 내세워서 남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그런 짓들을 하면서 젊잖은체, 유식한 체, 지체 높은 체, 돈 많은 체... 체면이란 이름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이 질투에 시달리고 급기야는 욕지거리를 일삼더군.
목사들이 立身을 立神(입신), 말하자면 하나님을으로 살짝 바꿔서 무지한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있지만, 원래의 뜻은 자신을 갈고 다듬어서 揚命(양명)해야 즉 命을 즉 목숨을 높여야 한다는 얘깁네다. 요즘 세상말로, 정신이 바로 박혀있어야, 또는 매사에 자주 웃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얘깁네다요.
인터넽에 이런 말이 있군 그랴. "善(선)과 惡(악)은 業(업)이고 경사와 재앙은 命(명)이다. 사람에게 있는 것이 業이고 하늘에 있는 것이 命이다. 스스로 닦고 원망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스스로 지은 데서 오는 것임을 안다. 순순이 받아들이고 근심하지 않는 자는, 命이란 이미 定(정)해진 것임을 안다."
제1차원에서 동물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세계인구 중에 대략 20%를 차지하고 있고, 그 2-3 차원의 사람들은 약 50%, 그리고 4차원은 남어지 29%, 그리고 마지막 5차원에는 겨우 1%로 집계된다고 합디다. 그리하야, 성경에서 말하기를 "義人(의인)은 하나도 없나니, 단 한명도 없다"고 합니다요. 당신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禪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