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목표는 풍진세상, 뭐 진흙먼지 홍진(紅塵)의 명리(名利)를 잊는 것이고,
깨달음의 목적은 자기자신을 잊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 생각이 부처의 가르침인 바 불경에서 어찌나 어려운 말로 설명하는지 매월당 김시습은 부처가 황탄하다고 말했지요.
제 생각은 황탄하다기 보다는 쉽게 말해 우리가 뭘 깜빡 깜빡 잊으면 건망증이라고 말하는데 이 잊음이 물건을 어디에 두었섰는가에 대한 집착기억을 잊은 순간이기에 저와 같이 하루 열두번 건망증이 생기면 열두번 깨달은 겁니다요.
제가 죽음에 가까워져 자꾸 잊기에 죽음으로 성취되는 열반의 경지에 입문(入門)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아 차열쇠,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거나 할 때에 잊은 것이 깨달음이지 뭘 더 배워 알게된 순간이 깨달은 순간이 아니지요.
그러기에 성철스님이 책을 읽지말라고 하셨는데, 그 책을 읽어 더 알려고 함이 깨달음에 걸리적거린단 뜻이라고 여기오니, 예를 들어 우리가 춤, 영화, 권투, 레슬링, 여행으로 구경할 때에 잠시나마 그 어느 장면에 문득 나를 잊는 순간이 '깨닫는 순간', 즉 돈오(頓悟).
그러나 깨달으려고 미치게 고행하다가 드디어 10년만에 늦게서야 자신을 잊는 묘법을 알았다고 선언하는 점수(漸修)는 반야심경, 금강경, 유마경에서 필요없이 생각하지 말라는 무아(無我)의 경지를 자그만큼 10년 후에야 만끽하는 겁니다.
그 가르침은 '세상에 대해 깨달아진 앎(지식)'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건망증되는 순간을 '깨달음'이라 불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기억력이 총총할 때에 오는 자신의 망각을 찾으려하니 이는 깨달음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에 목어염불에 저리 고생들하고 있는게지요.
자 잊읍시다.
잊읍시다요.
아! 득도하려고 고행하는 방법의 하나로 바늘방석에 앉거나 바늘로 발톱밑을 찌르면 아파서 정신이 와짝 날텐데 거 뭐 자신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아퍼 죽겠구만. ㅋㅋ
그 세계 3대스님의 한 분인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와 쉽게 재미¿보고 아들 낳고도 법문에 이름이 쟁쟁하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