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10시 이태백 선생(Daniel Par: 박경용) 영결식을 동네 장의사에서 은헤스럽게 잘 치루었습니다. 선생은 딸만 셋인데 다들 훌륭하게 잘 키우셨더군요. 미네소타에 사는 큰 딸은 외상(外傷) 전문의 의사인데 공군 이락 파병에 2번이나 다녀온 공군 중령 출신이고, 둘째는 이곳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Law Firm 변호사인데 딸 부부 모두 MIT 출신이더군요. 뉴저지에 사는 셋째 딸 역시 내과전문의로 남편도 응급전문의 랍니다. 선생은 딸들을 아주 엄하게 키웠답니다. 뉴욕에서 약국을 개업하실 때 주7일 하루 10시간 씩 가게를 지켜 일하셨답니다. 물론 약국에는 부인과 딸 들이 번갈아 가면서 도와주었습니다.
큰 사위는 학교 선생이면서도 Professional Photographer 인데 지난 달 휴가차 여기 왔을 때, 선생이 사위에게 "내 영정사진 하나 찍어라"해서 찍은 사진이 이번 영결식에 내건 사진입니다. 당신에게 앞으로 일어날 무언가를 느끼신 것 같다고 부인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번 영결식에서 선생의 경기 중고등학교 동기 동창을 만났습니다. 이곳 Rossmoor 은퇴촌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고등학교 동창생인 것을 몰랐는데, 고인의 약력을 보고서야 동창생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생각하면 우리 나이에 고등학교가 몇 년전입니까?
초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 온 큰 딸은, 그래서 이민 초기 아버지 어머니 고생한 것을 다 보면서 자란것입니다. "아버니는 고생만 하시다가 가셨다"고 회고 하며 많이 울더군요.
우리가 사는 Rossmoor 에 사는 사람이 6400 세대에 만 명 정도 됩니다. 그중 한국 사람은 150 명입니다. 선생은 뉴욕에 살다가 4년 전에 이곳에 이사 오셨기 때문에 California 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이곳 한국사람 이웃이 많이 영결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선생이 마악 운명하셨을 때, 부인께서 선생 귀에 대고 속삭인 "여보 고생 많이 하셨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였는지. 나도 나중에 아내에게 그 말을 임종시에 듣는 다면 참으로 행복하게 눈을 감겠다 싶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시던 태백 선생은 그러나 제가 연락을 드리면 꼭 나와서 동무했 주셨습니다.
100se.net 여러분의 애도의 멀씀과 뜻과 꽃을 고인 가족들에게 전했습니다. 모두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