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기 Rossmoor에 이사 오고 얼마 안되어서 ‘후두염(喉頭炎)’을 심하게 앓았었습니다. 목 구멍이
부어서 무얼 먹고 마시기는 커녕 침도 못 삼킬 형편이었습니다. 침을 못 삼키니 잠도 못 자겠더군요.
의사에 가서 항생제 약을 처방 받아 복용을 해도 고통만 심한채 도무지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하던 차에 저는 일면식도 없었던 박경용 박사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 받기 전날 제가 목사님 부탁으로 이곳 성경공부구룹을 인도를 했는데 그 성경공부 멤버 중에 닥터
박 부인이 계셨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중에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 하니까
부인께서 남편에게 제 얘기를 했던 모양입니다. 박사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제 증상을 물으시더군요.
닥터에게 갔었냐고 물으시고, 닥터가 처방한 약을 계속 드시라고 하면서 “한약을 한 첩 다려서 보낼테니 들어보시라”고 하고 약 방문과 함께 약 한그릇을 부인 편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이 닥터 박이 보내신 약을 마시는 순간 목구멍이 부드러워지는 느낌을 갖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살짝 잠이 들었는데, 깨고 나니 후두염 증세가 거짖말처럼
없어진 것입니다. 참으로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한약을 제대로 쓰니까
이렇게 효험이 분명하더군요.
닥터 박은 밖 출입을 거의 안하시는 분입니다. 집안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 만 쓰시는 대단한 은둔형이십니다. 저는 100se.net 에 가끔 방문하여서 이태백이라는 필명을 쓰시는 닥터 박의 글을 읽습니다.
참으로 동서고금(東西古今)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휭하니 뚫고 계서서 글의 주제와 전개가 막히는 것이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런 글을 보고 사유무애(思惟無涯)라고 합니다.
생각하고 상상하고 뜻을 펴는 것이 ‘무애’ 어떤 매듭이나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좁은 방에 앉아 글을 읽고 쓰지만 그 분의 생각과
뜻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의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異人을 일찍이 만난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평소에 은둔하시는 분이지만
그러나 제가 부르면 꼭 나와 만나 주시고 동무해 주셨습니다. 도라가시기 몇일전 여기
Rossmoor 에 사는 이웃 12명이 샌프란시스코 Museum
of Art 에서 전시하는 중국황제들의 유물을 보려 갔었습니다. 닥터 박도 부인과
함께 마치 애처럼 즐거워하며 동행하였습니다.
우린 그냥 골동품인가 보다, 보물인가 보다, 예술품인가 보다, 하고 지나쳤는데 닥터
박은 작품의 하나하나 작가와 내용을 다 꿰고 계셨습니다. 8월 31일에
100se.net 에 올리신 글, 양유(楊維) 미완성 '팔선구로' 가남목(伽楠木)조각 같은 글은 보통으로는 접하기 어려운 귀한 글이었습니다.
더욱이 정약용 선생의 시문집을 인용하여 팔/선구로(八仙九老)를 설명하신 구절이 참 좋았습니다.
“나이드신
백발 노인들이 대릉에 가득 모여 白髮蒼顔滿大陵 백발창연만대릉/긴 베개와
까만 방석에 의지하고 앉았는데,銀囊烏几倦相憑 은낭오궤권상빙/낙향하라는 황마서가 내려서가 아니었으며懸拒不是黃麻降 현거불시황마강/화폭을 오직 먹으로 대나무나 그릴 정도들 工畵唯於墨竹能 공화유어묵죽능 …”
이렇게 시가 전개되다가 마지막 구절
“지난 가을에는 역승(驛丞)을 시제로 정하여前秋詩句問郵丞 전추시구문우승/팔선구로(八仙九老)에 대해 풍류를 날렸고 八仙九老風流盛 팔선구로풍류성/그 대자리에 내가 낀다한들 허락하겠지요.,,肯惜芳筵許共登 긍석방연허공등”
그런데 진짜 닥터 박은 여덟신선, 아홉노인들의 그 자리에 한목
끼려고 그렇게 급히 서둘어 가신겁니다.
닥터 박은
원래 역사학을 전공하려고 고려대학교 사학과에 진학했는데 집안에서 “그런 것 공부해서는 밥 굶기 십상”이라고 하도 야단을 쳐서 “밥벌이가 좋다”는 약학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고대 재학중에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 다시 입학시험을 보고 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미국에 오셔서 뉴욕에서 Pharmacy 를 경영하시면서 중국 한의대를 또 입학하시고 거기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뉴욕에서 은퇴를 하시고 변호사인 둘째 따님 곁에
오셔서 Rossmoor 에 살고 계신 겁니다. 박사님은 딸 만 셋인데,
의사인 큰 따님은 미네소타에 살고, 역시 의사인 막내 따님은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시던 날, 그날따라 닥터 박 기분이 아주 좋으셨답니다. 그날은 더워서 웃 셔쓰까지 다 벋고 계셔서 부인이
“아무리 집이지만 젖꼭지까지 보이는 것은 젊잖치 않타”고 하시니까 “그럼 아랫두리까지 다 벗을까?” 농담하여 부부가 다 웃었다는데, 저녁에는 부인께서 말아주신 냉면 한그릇 잘 자시고, 기분좋게 글을 쓰시고 –그것이 마지막 글인 산중거사 짝짝이 짝짓기 완화 주목
입니다 – 안방에 들어가 (습관대로) 엎드려 책을 읽으셨는데, 리빙룸에서 TV 를 보시던 부인이
무슨 이상한 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서 뛰어들어가 보니 닥터 박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는 호흡이 마악 끊어 지시더랍니다.
오감(五感)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가는 것이 청각(聽覺)이랍니다. 그 경황중에도 부인께서는 남편 닥터 박의 귀에 대고 속삭였답니다. “여보, 사랑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한 순간(瞬間)이란 한번 숨을 쉬는 그 짧은 시간이랍니다. 진실로 生과 死가 이렇게 한 순간이었습니다.
영원이 이렇게 가깝게 있었군요.
100se.net 에서는 필명 이태백, Daniel Park 박경용 박사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