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현 공군 중령은 2010년 3월 전투기를 갓 몰기 시작한 후배를 훈련시키기 위해 후배를 F-5F 앞좌석에 태우고 이륙했다가 추락해 순직했다. 국방부는 공사를 수석 졸업한 뒤 비행시간 2800시간을 기록한 마흔세 살 파일럿 오 중령을 대령으로 추서했다. 어제 조선일보 독자 기고란에 오 대령이 남긴 일기장이 실렸다. 1992년 12월 순직한 동료의 장례식에 다녀온 뒤 쓴 일기였다.
오 대령은 18년 뒤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가족에게 당부하는 말을 일기에 담았다.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부대장(葬)을 치러주는 부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요구 사항과 장례 절차를 줄여야 한다.'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돈으로 마찰을 빚는 일은 말아야겠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위로금 일부를 떼어 반드시 부대와 대대에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 대령은 '조국이 나를 위해 장례를 치러주는 것은 나를 조국의 아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이 말을 명심해 가족의 슬픔만 생각하고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로 인해 조국의 재산과 군의 사기가 실추됐음을 깊이 사과할 줄 알아야겠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일기를 맺었다. '군인은 오직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군인은 변치 말아야 한다. 영원한 연인, 조국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을 보여야 한다.'
이 일기는 유품을 정리하던 부인 박소영씨가 발견했다. 오 대령이 "일기를 함께 쓰자"고 해서 몇 년 동안 부부가 번갈아 쓰던 일기에 들어 있었다. 당시 남편의 이 일기를 보고 박씨는 "뭐 이런 유서를 쓰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남편을 떠나보낸 뒤 박씨는 무슨 일을 하든 남편이 한 말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에 큰 의지가 되고 위안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의 당부대로 부대에 성금 300만원도 전했다.
어제 조선일보에서 오충현 대령의 일기를 읽은 이들 가운데는 가슴에서 뜨거운 기운이 울컥 솟구치고 부인 박씨처럼 커다란 위안을 받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고 잣대처럼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톱니 하나하나를 다듬어 세우듯 끊임없이 마음과 몸가짐을 벼려 곧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이 어지럽고 혼탁해도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굴러가고 돌아간다. 오충현 대령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뒤늦게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아깝고 슬프지만 그가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마음 든든하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