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몽골과 가까운 금(金Chin)나라의 압력에 못 이겨 금나라와 동맹을 맺은 서하(西夏Western Hsi) 반군이 일어나 북송을 공격하고 서하 공략시에 화살에 맞었으나 진두지휘하다 상처가 도져 죽을 때(AD 1227. 65세)에 옆에 있는 셋째 아들(두 번째 친아들) 오고타이(와랄때)에게 이 유언을 남기고 후계자로 지명하자 오고타이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정벌야욕을 다짐.
징기스칸의 시신은 그가 어린 시절에 피신해 있섰던 Bulkan-kaldun 산에 묻힌다.
몽고인은 보복당해 두 번 죽기 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모든 그 후의 원나라 황제가 죽은 후 처럼 그들의 밀장(密葬)법에 따라 일꾼을 동원해 땅에 묻고는 평탄하게 땅을 고르게 하고나서 그 일꾼들을 모조리 죽인 후에 어린 낙타를 어미 낙타 보는 앞에서 빠른 속도로 잔인하게 도살하면 그 후 어미 낙타가 그 곳을 정확히 기억한다고 전해진다.
그 어미 낙타가 늙어 죽기 전에 또 같은 시행으로 위치를 보존.
이로써 그의 죽음부터 말한 셈인 바, 그의 묘호(廟號)는 태조(太祖. 元*世祖推諡). 시호는 법천추운종무황제원*무종가시(法天追運終武皇帝元武宗加諡). 몽고말 존호(尊號)는 성길사한(成吉思汗). 이름(名字)은 철목진(鐵木眞).
그의 아버지 예수가이(Yesukai)는 묘호 원세조추시추신원황제(元世祖追諡推神元皇帝). 존호는 몽고뜻의 한자로 파아독아(把阿禿兒). 名字는 야속해(也束該).
*여기에서 '원*(元)'이란 주역 '하늘 건(乾)'괘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첫 글자로서 만물의 시작이요, 봄이요 어짐(仁)을 상징하여 이에 걸맞는다 싶은 아버님 징기스칸, 조부님 '예수가이'에게 추존한 것이며, '쿠빌라이 칸'은 아예 나라 이름을 원(元)이러 고치고 국호를 대원(大元),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대도(大都)라 일컬음.
한편, '징기스칸(AD 1204. 42세)'이란 그가 몽고족을 통일하고, Karakorum을 수도권으로 정하고 통수권을 쥐었다고 확신한 후 '최고 전사(戰士) 황제'란 의미에서 'Genghis(Jenghis) Khan'이라 자칭한 것임.
그의 선군(先軍)정책. 출신을 가리지 말고 기용, 적장을 회유하여 휘하로 몰아 넣고 민첩한 속결전, 정벌에 한 치의 사심(邪心) 없이, 노획물은 사심(私心) 없이 휘하 장졸에게 분배할 事.
그들은 금융회폐 '원보(元寶)' 통화경제.
비단길(실크 로드) 이외로 해상무역을 위해 천주(泉州) 무역항 개항. 작물 목화재배 강력장려,
자금회전 속도 빠른 작물을 우선으로.
수공업제품 다량 생산화, 당국정책에 따르는 농공업자에게 세법상 집중공제(控除) 혜택부여. 정부직영업체.
문화장려, 편찬사업, 문학가 격려.
그는 여진족 거란 금(金)나라 건국 공신 야률아보기 장군의 후손 야율초촌(耶律楚村)의 자문을 받아 몽고인의 약탈 및 잔인한 살륙을 금지시켰고, 역시 그 후 손자 쿠빌라이 칸이 우리 고려를 침공할 때 고려 무장으로 몽고로 투항한 홍복원 장군을. 그리고 아들 홍다구를 일본공략에 기용했음.
그의 맹렬한 군사훈련, 씨름, 특히 말타기, 말밑으로 숨어 적군에게 활을 날리는 전군사에게 기병훈련으로 무장.
그리고 이 혹독한 훈련에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양고기 된장국으로 보양보신.
하룻밤에 여인 셋은 너끈히!
그들의 시력은 5.0/5.0.
미국인의 최고 좋은 시력은 20/20. 한국인은 고작 2.0/2.0. 대개 1.5/1.5 아닌가!
미국식으로 바꾸면 한국인 열살 때의 시력은 2.0/2.0은 20/20, 몽고인은 50/50의 시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