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린 마당에 사실대로 전달할 때 그 내용이 파렴치한, 성직자의 비행이라면 무심 삭제되는가 보다.
이런 역사를 겪어온 우리 민족.
지난 이왕조 유교(종교)이념에 말뚝밖힌 선비들의 탁상공론, 노예제도, 방탕하는 권위주의 탐관오리들이 실사구시의 실학적인 학문을 도입하는 이들을 가차없이 처단, 귀양보낼 뿐만 아니라 행혀 다른 학문에도 진리가 있다고 역설하면 그 날로 정치생명은 끝났다.
그리하여 타성에 젖은 송시열의 정적 '허목'은 물론 이와 같은 숭유(崇儒)사상을 희석하는 박세당, 윤휴, 윤증, 그리고 우리 잘아는 어부사시사 윤선도를 귀양보내고 매장 시켜버린 제제일변도를 으시대는 '사문난적'이라 불렀던 모양. ◐●●●●●●●◑ 그리하여 1세기 전, 지난 1908년까지 공공연하게스리 지켜온 유교옹호율법. 그 '사문(斯文)'은 공자왈 맹자왈하는 유학, '난적(亂賊)'이란 과거시험, 승진시험의 정식 과목으로 채택된(정종正宗)을 훼방하는 원수들. 이는 소동파 말대로 아는 게 병. 그러나 심도있게 공자의 학문을 읽어보면 그의 어록 논어 '자한'편에 자유로운 학문연구를 장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문 난적'이란 사회학 용어가 쓰여졌음을 우린 잘 알고 있음다. 그렇다면 그 매도하는 '사문난적' 이란 처벌관습은 그 옳고 그름, 의로움이나 불의를 떠나 상대편을 밀어내야 그 대신에 내가 그 자리 삶의 터전을 차지하고 내가 살기 위해 약한자 울음소리를 꺽겠다는 치사한 경영학적인 면이 없다 아니할 수 없는 제 2선의 당쟁. 마치 며누리가 보기 싫으니까 옆집 봉순이를 첩으로 안기고자 하는 꼴마다 트집을 잡는 시어머니 마음과 비슷하다고 하겠으나 이 정도가 아니라 미운 그 며누리를 곳간에 가두어 굶겨 죽이거나 물긷는 며누리를 우물 속으로 밀치거나 바깥 사돈 친정으로 쫓아버리는 8거지악, 아들에게 시어머님 맘에 드는 새아가씨 덤주는 축첩권유인 셈.
구설수 많은 아들 봉돌이편만 그렇게 든다면 이 열린마당에서 다른 신앙, 혹은 어느 종교이든 양심을 선언하는 성직자가 없기에 그들의 행위부당, 매우 불쾌한 사회활동상을 보고 그 당해 성직자가 예수님 심볼이 아니라고 지적하는데에도 왜 글이 지워져 섭섭한 마음 가시지 않는다. 내가 잘랐기에 누구를 충고하겠다는 말이 아니고 대저 궁궐을 짓는 그 대목(大木)이란 빳빳한 나무와 꼬부라진 나무를 적재적소에 모두 쓰는 장인을 말하고, 아무리 양고기가 맛있다 하나 백 사람의 입애 맞지 않고, 아름다운 화중왕 모란이라 하드라도 꽃만 컸지 꽃향이 없고, 아무리 귀태나는 백적황 장미일지라도 가시가 있음을 잘 알면서 이 모든 꽃들을 절기 따라, 전례따라 장미일망정 가시있는 체로 꽃병을 장식하는데 왜 속을 태우며 옳은 말하면 향이 없다, 가시있다고 짤라버리느뇨? 꿀떡 삼기느뇨? ∏∏▽▽▽ ● △△△△ 왜 권위를 숭상하는 고정관념을 실천철학 제일주의로 삼느뇨? 어찌 이 열린마당에서 의로운 필진을 왜 옹호할 수 없느뇨? 그 어찌 잔인하게 압실투스Absyrtus를 토막쳐 죽인 메데아Medea 사회상만 재미있고 미다스Midas가 너무 들은게 많다고 당나귀 귀를 붙여준 그 아폴로 이야기만 소개될소냐? 성직자의 사회상은 수천만 동포를 상대하는도다.